<앵커>
일본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수요집회가 오늘(14일)로 1천 87회를 맞았습니다. 3천 명 넘는 시민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누군가 일본 전범기를 뿌렸습니다.
김종원 기자의 생생 리포트입니다.
<기자>
[故 김학순 할머니/위안부 만행 최초 증언 : 나는 일본 군대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던 김학순입니다. 결심을 단단하게 했어요. 아니다, 이거는 이거는 바로 잡아야 한단 말이야.]
1991년 8월 14일 수요일.
김학순 할머니가 이 증언을 하기 전까지 일본군 위안부 실태는 학자들조차 쉬쉬하던 치부였습니다.
하지만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22년째인 오늘(14일) 1천 87번째 수요 집회에 30도 넘는 불볕더위에도 3천 명 넘는 시민이 모였습니다.
지금 무대에서 부르고 있는 노래가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제 강점기, 전쟁터에 끌려가서 위안 삼아 불렀던 노래라고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처음 나온 어린 중고등학생들은 책에서만 보던 위안부 할머니의 실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강한솔/울진고등학교 3학년 : 노래가 들렸는데, 노래를 들으니까 마음이 벅차 오면서 '드디어 내가 이곳에
참석하게 됐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들에게도 젊은이들의 관심은 큰 힘이 됐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 (할머니 오늘 어떠세요, 기분?) 기분 좋아요.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협력해 주니까 좋다고.]
하지만 이 자리에서조차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행사 직전 일본 극우파로 보이는 한 일본 남성이 위안부 할머니를 모욕하는 피켓을 들고 난동을 부려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일본 극우파 추정 남성 : 여긴 일본 대사관 앞이야! 데모는 하면 안 돼! 이런 집회 용서할 수 없어! 이런 쓸모없는 집회를 왜 계속하지?]
[경찰 : (일본) 극우단체인가봐. 빨리 알아봐!]
그런가 하면 행사 도중 누군가 일본 전범기를 바닥에 뿌려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한 세기 넘도록 사과 한마디 못 받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
얼마 전 이용녀 할머니가 끝내 눈을 감으면서 이제 위안부 할머니는 57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故 김학순 할머니/위안부 만행 최초 증언 : 절대 이것은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 하고,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까.]
(영상취재 : 최준식, 영상편집 : 정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