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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정조사에서 노무현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

[취재파일] 국정조사에서 노무현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지구로 귀환한 뒤 남긴 말은 "신은 없었다"였다. 하지만 얼마 뒤 우주에 다녀온 미국의 한 우주비행사는 "하느님의 나라는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같은 지구를 봤지만 무신론자인 구 소련의 우주비행사와 기독교 신자인 미국 우주비행사의 감상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2천 년 전 카이사르가 말했던 것처럼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 본다. 특히나 이념적 판단이 개입되기 쉬운 정치적 사안은 더욱 그렇다. 지난 대선 이후로 우리 정치판을 떠돌고 있는 'NLL 포기 발언 논란'도 바로 그런 예에 해당한다.


◈ 여야, 같은 말 다른 해석

지난 5일 우여곡절 끝에 국가정보원에 대한 사상 첫 국정조사가 진행됐다. 기관보고에 앞서 남재준 국정원장과 여야 의원들의 기조발언 이후 모든 게 비공개로 진행됐다. 언론사들은 오후 7시가 조금 넘어서야 여야 간사의 브리핑을 들을 수 있었다.

큰 골자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담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관련 발언이 NLL 포기인지 아닌지, 그리고 국정원이 댓글 작업 등을 통해 대선과 정치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는지 아닌지,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인권 침해가 있었는지 등이었다.

주제는 같았지만 설명은 정반대였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자신들의 관점에 맞는 말만 늘어놨다. 먼저 NLL 포기 논란에 대해, 새누리당은 남재준 원장이 NLL을 없애자는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동조한 만큼 포기라고 본다고 말했지만, 민주당은 남 원장이 NLL 대화록에 '포기'라는 단어는 없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새누리당은 남 원장이 국정원 댓글 활동은 정상적인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었으며 댓글 의혹 사건의 본질은 국정원 전직 직원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정상적인 국정원 대북 심리직원의 활동을 대선개입 행위로 호도한 정치공작이라고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국정원이 지난 대선에 개입하고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등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박근혜 정부의 검찰 공소 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남 원장이 "부인도, 시인도 안 한다"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 '댓글 의혹 국정조사'…NLL 공방만 남아

국가정보원에 대한 사상 첫 국정조사 다음 날, 언론을 장식한 제목은 '남재준 "盧, NLL 포기로 본다"… "'포기' 단어 없었다"'였다. 거의 대부분이 그랬다.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였지만 댓글 의혹 사건에 대한 내용은 간 데 없고 NLL 포기 발언 논란이 또 다시 1면을 장식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NLL 포기 발언 논란은 객관적 진실을 찾아내기 어려운 사안이다. 실제로 국정원이 NLL 대화록 전문을 공개한 뒤 진실이 규명되기는 커녕 오히려 논란만 커졌다. 같은 대화록을 보고도 'NLL포기 발언이 입증됐다', '노무현이 그렸던 큰 꿈에 눈물이 난다' 등등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이번 국정조사의 제목은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이다. 정치권이 말하는 것처럼 역대 정권에서 거듭된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차단하고 개혁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국정원의 대선 개입 여부'에 모든 초점이 맞춰졌어야 했다.

노무현 검찰 출석


◈ 국정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

현직인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나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NLL포기로 보는지 아닌지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여야가 같은 발언을 놓고 이미 극명한 입장차를 보인 상황에서 남 원장의 발언 하나가 정국의 큰 변수가 될 것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국민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사안을 누가 뭐라고 했다 해서 정답이 될 수 없다. 입만 아플 뿐이다. 오히려 국정조사의 본질인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여부를 철저히 따져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여야 모두 지난 대선 과정에서 자신들이 주장한 이야기가 맞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미 대화록 원본 열람으로 사초 실종 논란까지 빚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정보원 국정조사에 까지 이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정치권 스스로 물타기를 하는 것이다. 이번 국가정보원 국정조사장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가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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