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거예요. 이제 곧 경주가 시작 된다는 것을."
직전 경기까지 95전 95패.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포기를 못했나 봅니다. 경주마로는 환갑에 가까운 8살. 현역 경주마 가운데 최다 출전이자, 최다 연패(연속 패배) 기록을 보유한 한 '똥말' 얘기 좀 하겠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차밍걸'입니다. 보드라운 털에 똘망똘망해 보이는 눈망울까지, 외모만큼은 정말 '차밍'했습니다. 그런데 경마팬들은 그녀를 왜 '똥말'이라고 부를까요?
하지만 차밍걸은 스스로 뿐 아니라 마주와 조교사, 기수들까지 어느 누구도 빨리 포기하는게 좋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96연속 패배라는 1922년 조선경마구락부가 생긴 이래 최다 연패 신기록을 세울 때까지 그녀는 열심히 뛰었습니다.
꾀를 부릴 줄 몰랐습니다. 잔병치레도 없었습니다. 다른 말들은 한 번 경기를 뛰면 한 달 이상 쉬는 편인데, 차밍걸은 한 달에 두번 씩 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독히 건강하고, 아프지도 못하는 이 시대의 평범한, 잘 나가지 못하는 아버지들을 닮았다고 하면 오바하는 걸까요.
베팅을 하는 경마팬 입장에선 당연히 관심 밖의 말일텐데, 차밍걸은 팬이 오히려 자꾸 늘고 있습니다. 묵묵히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차밍걸의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럽답니다. 수원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아저씨 팬은 차밍걸이 경주에 나서는 날이면 가족들과 함께 경마장을 찾습니다. 1등은 한 번도 못하고, 소위 '갑'은 커녕 '을'도 못 되는 말이지만, 그렇게 열심히 뛰는 차밍걸에게서 본인 같은 소시민 다움을 느껴서라고 합니다.
차밍걸은 지난 일요일에도 졌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끝에서 3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저도 더 열심히 살면서 차밍걸의 100번째 도전을 기대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