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에테 피봇’이라는 용어, 요즘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지난 해 런던올림픽 때부터 리듬체조 관계자들이 손연재 선수의 특기로 꼽았고, 올 시즌에는 리본 프로그램에서 ‘포에테 피봇’으로 호평받아 여러 차례 기사화됐습니다. 들어는 본 것 같은데, 봐도 뭔지 모르겠고 알쏭달쏭한데요. 이 용어는 사실 ‘푸에테’라는 발레 용어와 같은 말입니다. 리듬체조의 상당수 동작과 기술이 발레에서 차용한 것이죠. <즐거워라 발레>(국립발레단 저, 범조사)에는 ‘푸에테’가 다음과 같이 소개돼 있습니다. 두 단락을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푸에테’는 ‘채찍질하다’는 뜻입니다. 발레리나가 한쪽 다리 발끝으로 몸을 지탱하고 다른 쪽 다리로는 마치 말채찍을 휘두르듯이 32회전을 하는 동작을 말하죠. 이는 여성 무용가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테크닉인데, 지금부터 약 100년 전인 1894년 이탈리아 무용가 피에리나 레냐니가 <신데렐라>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고 합니다. 이것을 1년 뒤에 마리우스 프티파가 <백조의 호수>에 도입했고 그 이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죠.
왕자의 신부감을 고르는 무도회 날 도발적이고 매혹적인 모습의 흑조가 나타나는 순간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옵니다. 그것은 왕자를 유혹하려는 그녀의 매혹적인 모습 때문이기도 하지만, 곧 감상하게 될 32바퀴의 화려한 테크닉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 <즐거워라 발레> 중에서
그럼 리듬체조에서는 왜 ‘포에테’라고 부를까요. 불어로는 fouetté니까 푸에테에 조금 더 가깝지만 중간 발음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국내 발레계에서는 푸에테가 표준어처럼 쓰입니다만, 리듬체조 관계자들은 모두 포에테로 발음하고, 대한체조협회에서 번역한 리듬체조 규정집에도 ‘포에테’로 나와 있습니다.
페사로 월드컵에서 생애 첫 은메달을 안겼던 리본 종목의 포에테 피봇을 볼까요? 손연재 선수는 이 대목에서 공식적으로는 [2회전+9회전(다리를 편 채 2회전+굽혔다 펴며 9회전)]합니다. 다리를 굽혔다 폈다 하는 9회전 부분만 보면, 언뜻 보기에도 9회전이 아니고 실제로는 15바퀴를 돕니다. 15바퀴를 도는데 왜 [9회전]이라 할까요. ‘포에테’의 경우 회전 수는 몸을 지탱한 다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셉니다.
발 뒤꿈치를 들며 1~2바퀴를 돌고 다시 뒤꿈치를 댔다가, 다시 발 뒤꿈치를 들며 1~2바퀴를 도는 식인 거죠. 그래서 포에테 피봇 9회전은 선수의 역량에 따라 실제로는 9바퀴가 될 수도 있고 15바퀴, 이론상으로는 20바퀴도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점수를 계산할 때는 실제로 도는 바퀴 회수에 따라 1회전에 0.1점씩 친다는 것이죠.
최근 이 포에테 피봇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논란의 핵심을 요약하면, 포에테는 여러 가지 피봇 동작 가운데 화려하기만 할 뿐 가장 난이도가 낮은 기술이다. 그 시간에 더 난이도 높은 동작을 하는 게 맞지 않느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주장은 절반만 맞다고 생각합니다.
‘포에테’의 난이도가 가장 낮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올 시즌 리듬체조 ‘회전난도표’를 보면 0.1점~0.5점까지 다양한 종류의 기본 회전이 나와 있습니다. 포에테는 0.1점짜리로 기본 점수가 가장 낮습니다. 손연재 선수가 또 많이 사용하는 퐁쉐(발레에서는 흔히 ‘팡셰’라고 합니다)는 0.4점, 발 뒤꿈치를 든 퐁쉐 1회전은 0.5점의 가치를 갖습니다.
포에테 피봇을 할 시간에 다른 동작을 하란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손연재가 올 시즌 리본 프로그램 음악으로 발레음악 ‘백조의 호수’, 그것도 흑조 오딜이 등장하는 부분의 음악을 택했기 때문에, 손연재가 자신 있어하는 ‘포에테’를 선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판단이었습니다. 앞서 <즐거워라 발레> 중에서 발췌한 대목을 읽으셨으니, 흑조의 ‘푸에테’가 얼마나 유명한지 장면인지는 짐작하실 겁니다.(물론 올 시즌 후프에서 똑같이 ‘백조의 호수’를 사용하는 러시아의 티토바 선수는 같은 부분에서 포에테 회전을 하지 않습니다. 이 또한 안무가 또는 선수의 선택입니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이 피봇이 기본 배점은 낮아도 17바퀴를 돌면 1.7점짜리 난도가 됩니다. 리듬체조는 한 종목당 난도를 최대 10점으로 구성합니다. 10점 만점에서 1.7점이면 결코 낮은 점수가 아닙니다. 고난도다 싶은 복합 난도가 보통 1.0점 근처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고 올 시즌 처음 도입된 리드믹 스텝이 개당 0.3점이니, 얼마나 높은 점수일지 알 수 있습니다. 기본 배점이 낮은 기술이라고 단순히 쉬운 기술이라고 말할 수만도 없습니다. 18회전을 하는 도중 몸을 지탱하는 다리가 움직이면, 그 이후에 회전한 것은 점수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죠. 손연재처럼 한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다리를 곧게 편 채 회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역동적이고 화려한 만큼, 관중의 호응이 따르는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난 주말 소피아 월드컵 시리즈에서도 확인한 것처럼, 손연재 선수는 ‘포에테 피봇’을 비롯한 각종 신체난도는 상당히 몸에 익은 상태입니다. 지난 시즌에도 신체난도는 정확하게 수행하기로 정평이 나있었습니다. 다만 수구 조작, 특히 수구를 높이 던진 뒤 받는 동작에서 자꾸 실수가 나옵니다. 실수만 하지 않으면 금메달도 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연습벌레’ 손연재는 더 훈련에 집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