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는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도시다. 오래전부터 수많은 예술가들이 파리를 근거지로 활동했을 만큼 도시 전체가 영감 덩어리기도 하다.
이 때문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우디 앨런 감독이 파리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른 '미드나잇 인 파리'를 통해 수많은 영화 팬들을 매료시킨 기억을 떠올려보라. 영화 속 파리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오는 25일, 파리를 배경으로 한 두 편의 영화가 나란히 개봉한다. 프랑스 영화 '파리 5구의 여인'(감독 파벨 포리코브스키)과 일본 영화 '새 구두를 사야해'(감독 기타가와 에리코)가 그 주인공. 두 작품은 같은 도시를 배경으로 하지만 상반된 묘사로 관객의 흥미를 돋운다.
◆ 우리가 몰랐던 어둠의 파리…고독과 상처의 뒷골목
영국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파리 5구의 여인'은 파리의 어두운 뒷골목을 영화 전면에 내세운다.
소설가이자 대학교수인 '톰 릭스'(에단 호크 분)은 제자와의 스캔들로 학교에서 추방당하고 아내와 딸마저 등을 돌린다.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톰은 딸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파리를 찾는다.
그러나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돈과 소지품을 도둑맞고 불법이민자들이 사는 누추한 호텔에서 생활하게 된다. 호텔 주인의 도움으로 미스터리한 야간 경비 일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의문을 갖게 된다. 더불어 예술가들이 모인 파티에서 관능적이면서 지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여인 '마르짓'(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분)을 만나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파리 5구의 여인' 속 파리는 황폐하고 메마르다. 사건이 벌어지는 주요 공간이 범죄와 폭력이 난무하는 뒷골목이고, 영화 속 주요 인물이 타국에서 온 이민자들인 탓이다.
미국에서 온 소설가 '톰', 헝가리에서 온 번역가 '마르짓', 그리고 폴란드에서 온 호텔 여주인 '아니아'는 불안정한 상황 때문에 파리의 화려한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어둠과 불안이 깃들여있다.
영화는 이민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살기에 척박한 파리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며 멜로와 서스펜스를 넘나드는 전개를 보여준다. 여기에 인간 내면의 고독과 상처를 섬세한 연출로 표현해내 관객으로 하여금 삶과 사랑에 대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는 점이 인상적이다.
◆ 사랑을 부르는 도시…그곳에서 만난 달콤한 우연
일본 영화 '새 구두를 사야해'는 대부분의 사람이 상상하는 파리의 로맨틱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파리라는 도시가 연상시키는 사랑의 이미지를 극대화 시켜 여성 관객들의 마음을 공략하고 있다.
여동생과 함께 파리에 여행을 왔다가 홀로 남겨진 사진작가 센(무카이 오사무 분). 여권을 계기로 우연히 만난 연상의 에디터 아오이(나카야마 미호 분)와 동행한다. 도시 곳곳을 함께 돌아다니며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이내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다.
영화는 도시 투어에 나선 두 사람의 뒤를 쫓으며 에펠탑,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 등 파리의 유명 명소들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수채화를 연상케 하는 은은한 연상과 로맨틱한 샹송은 두 사람의 핑크빛 무드를 한껏 살린다.
이 작품은 파리라는 로맨틱한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러브 스토리를 최대한 아름답게 포장한다. 우연한 만남, 운명 같은 끌림, 애달픈 이별까지 짧은 시간 사랑의 전 과정을 보여주며 현실보다는 환타지에 방점을 찍었다.
센과 아오이는 서로 사랑의 감정을 키워가는 가운데 삶에서 경험한 상처를 꺼내놓으며 현실에 닿아있는 고민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달콤한 감성 때문에 후자의 이야기는 관객을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한다. 이 영화 속 파리는 판타지의 분출구로서의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다.
'새 구두를 사야해'는 '러브레터'의 감독으로 유명한 이와이 순지가 제작해 특유의 감성을 쏟아부었다. 또 그의 뮤즈라 할 수 있는 나카야마 미호가 미모의 프리랜서 '아오이'로 분해 성숙한 매력을 뽐내고, 일본의 떠오르는 청춘스타 무카이 오사무가 순수하고 열정적인 청년 '센'으로 분해 여심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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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