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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찬욱 감독이 밝힌 '스토커' 비하인드 "콜린 퍼스가 했다면…"

[인터뷰] 박찬욱 감독이 밝힌 '스토커' 비하인드 "콜린 퍼스가 했다면…"
할리우드 안에서도 박찬욱 월드는 견고했다. 그는 시스템의 차이에서 오는 혼란 안에 갇히지 않고 꼿꼿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쳐나갔다.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 '스토커'는 18세 생일, 아버지를 잃은 소녀(미아 바시코브스카 분)앞에 존재조차 몰랐던 삼촌(매드 구드 분)이 찾아오고 소녀 주변의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 영화다.

웬트워스 밀러가 쓴 이 영화의 각본은 검증된 것이 아니었다. 베테랑인 박찬욱 감독이 우리에겐 배우로 유명한 밀러가 쓴 각본으로 할리우드에 데뷔한다는 것은 큰 이슈였다. 박찬욱 감독은 "채워넣은 여백이 많아 매력적이었다"며 시나리오를 읽었을 당시의 느낌을 전했다.

여백 많은 각본은 박찬욱 감독의 손에 의해 풍성하게 채워졌다. 이미지는 다양해졌고, 감성은 깊어졌다. 그 결과 '스토커'는 박찬욱의 색깔이 강하게 투영된 매혹적인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지난 22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만난 박찬욱 감독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미국에 이어 국내 언론의 반응도 호평 일색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유로운 자세로 '스토커'의 제작 후기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짧은 시간 나눈 인터뷰지만, 할리우드에 첫발을 내디딘 뒤 얻은 자신감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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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스토커'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교차편집이었다. 일각에서는 할리우드에서는 감독이 편집권을 가지지 못한다고 하던데 어떻게 편집권을 확보할 수 있었나?

A. 미국에서 '스토커' 촬영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다른 감독들이 "미국에서는 감독이 편집에 관여 못 한다면서요?"라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어디서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느냐"고 반문했다. 오히려 반대다. 편집을 시작하고 약 10주 동안 감독 외에는 그 어떤 스태프도 편집실에 못 들어온다. 10주 정도가 지나면 감독이 출입을 허락하는 스태프나 지인 등을 초대할 수 있고 그곳에서 많은 얘기를 나눈다.

이 영화의 형식적 특징인 교차편집은 각본을 고쳐 쓸 때 생각해서 넣은 것들이고 미국의 제작진과 스태프들도 다 좋아했다. 운이 좋았던 건지 다행히도 좋은 편집자를 잘 만났다. 그는 내가 존경했던 감독의 아들이다. 경력으로만 보자면 '울버린'이나 '다이하드' 같은 영화를 했기에 내 영화와는 색깔이 맞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대가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같이 해보자는 이야기를 했고, 결과적으로 최고의 동료가 됐다. 교차편집에 정교한 미학을 더해 극한까지 가게끔 하여준 동료다. 헤어질 때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친해졌다.  

Q. 니콜 키드먼이라는 연기파 배우이자 할리우드 스타가 이 영화에서는 조연으로 출연한다. 그녀가 맡은 '이블린'이라는 역할은 '인디아'와 '찰리' 중심의 이야기에서 어찌 보면 무게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캐릭터다. 그런데도 출연한 것은 감독에 대한 대단한 신뢰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했을 것 같다. 캐스팅 후기를 전한다면?

A. 캐스팅을 확정하기 전 키드먼과 만났다. 일종의 탐색전 같은 시간이었다. 그쪽에서 각본은 이미 읽은 상태였고, 결국 이 각본을 손봐서 연출할 사람을 만나는 자리 정도라고 할 수 있다. 키드먼은 이 만남을 통해 내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보려고 했을 것이고, 협업할 준비가 된 사람인지를 보려고 했을 것이다. 나는 나대로 내가 생각하는 '이블린'과 맞는지를 확인했던 자리였다. 주로 내가 이야기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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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찰리' 역은 애초 콜린 퍼스가 내정돼있다가 막판에 매트 구드로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처음 의도대로 콜린 퍼스가 맡았다면 영화는 어떻게 달라졌을 것 같나?

A. 각본까지 바꿀 정도는 아니더라도 스토리보드는 바뀌었을 것이다. 또 찰리를 연기하는 스타일도 바뀌었을 테고. 콜린 퍼스가 했다면 나이대도 그렇고 이미지도 그렇고 지금의 찰리보다는 아버지상에 더 가까웠을 것 같다. 매트 구드가 찰리를 연기함으로 인해 인디아에게 찰리는 연인이기도 하고, 아버지이기도 한 면을 가지게 됐다.

Q. 매우 급하게 돌아가는 할리우드 현장에서 끝까지 고수하고자 했던 자신만의 철칙이 있었다면 무엇일까?

A. 할리우드와 충무로의 제작 시스템이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를 생각해보면 결론은 간단하다. 한국은 찍을 때마다 현장에서 편집하면서 배우들과 토론을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했다. 그게 없어야 정해진 촬영 횟수 안에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불안해서 어떻게 찍지?'라는 생각을 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내가 충무로에 데뷔 할 때 그랬었다. 그땐 모니터도 없었고, 현장 편집도 없었다. 감독인 나조차 지금 찍고 있는 화면이 어떤 사이즈인지도 몰랐다. 촬영 감독이 신인 감독에게는 뷰파인더도 안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땐 촬영 회차도 삼십몇 차 밖에 되지 않았다. 그때로 돌아가면 되겠다 싶더라. 할리우드 데뷔작이라는 것의 의미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찍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방금과 같은 의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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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할리우드와 충무로의 영화 제작 시스템의 차이를 간략하게 비교해 말한다면?

A. 각각의 장단점이 있는데 양 측면에서 장점만 노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았다. 감독 입장은 촬영도 오래 하고 편집도 오래 하는 게 좋다. 또 한국처럼 프리 프로덕션도 오래 하면 좋겠지. 근데 그것도 미국에서는 함정이 되는 게 그렇게 하면 일단 돈이 많이 든다. 제작비가 올라가면 그만큼 흥행에 대한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뭐든지 내 마음대로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대사는 어떤 의미에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어야 내 생각이 정교해진다. 황제처럼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누군가 상황을 정리하면서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의 역할도 필요하단 걸 느꼈다. 이상적으로야 100번 찍으면 좋겠지만, 상업적인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항상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는 결국 적당한 것이 중요한 것 같다.

Q. 데뷔작을 웬트워스 밀러의 각본으로 찍었다. 직접 쓴 각본으로 차기작을 만들 계획도 있는가?

A. 내가 영어로 된 각본을 쓰는 것이 금방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또 잘 쓰는 사람이 많아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한국에서 영화를 찍을 때도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박쥐' 등 대부분 원작이 있는 작품을 각색해서 만든 것이었다. 각색을 통해 내 손을 거치는데 이 과정이 직접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실화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각색을 통해 내 색깔을 입히면 그것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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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박찬욱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스토커'에도 무수한 상징이 등장한다. 특히 '인디아'의 생일마다 배달되는 신발의 의미가 궁금하다.

A. 원래 밀러의 각본에 '인디아'는 새들 슈즈(Saddle shoes : 안장 모양 장식이 있는 구두)만 즐겨 신고, 엄마 '이블린'은 그런 딸의 모습을 꼴보기 싫어한다'고 돼 있었다. 새들 슈즈가 뭔가하고 찾아봤더니 영화에 나온 그런 디자인의 신발을 말하는 거더라. 각본을 보면서 '인디아' 는 왜 새들 슈즈에 집착할까 생각하면서 이 신발을 누군가에게 선물 받는 설정으로 가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인디아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를 아버지가 아닐까 막연히 상상한다. 그러다가 아빠가 죽었고, 올해 생일에는 선물이 없을 것이로 생각했는데 빈 상자가 배달됐다.

그때쯤 삼촌이 나타났다. 이 영화가 소녀의 성장 드라마라고 봤을 때 18세 인디아의 생일 선물은 질적인 어떤 도약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삼촌이 새들 슈즈가 아닌 하이힐을 선물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 하이힐의 디자인도 원래는 표범무늬로 하고 싶었다. 삼촌과 인디아가 맹수라는 비유가 등장하는데 그걸 좀 더 뚜렷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표범무늬 하이힐이 좀 싸구려 같아 보이는 느낌이 들더라. 근데 고상한 디자인의 구두를 잘 못 찾겠더라. 고심 끝에 포식자의 이미지가 있는 악어가죽 하이힐이었다.

Q. 100% 만족스럽지 못한 환경이었지만, 할리우드에서 데뷔작을 완성하고 난 뒤 얻은 자신감이 있다면 무엇일까?

A. 한국에 내가 아끼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있는 것처럼 이제 할리우드에도 그런 동지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처음엔 낯선 사람들이어서 겁도 나기도 했는데 이제는 가족같이 친해졌다. 이게 자신감일지 모르겠지만 내게 큰 재산이 됐다. 

ebada@sbs.co.kr

<사진 = 올댓시네마 제공, 영화 스틸컷>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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