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는 마지막 코너에서 정말 강했습니다. 곡선 구간에서 공포감을 느끼는(panic) 선수들이 많은데, 결점 없는 완벽한 레이스를 펼쳤습니다.”
크로켓 감독은 굳이 ‘panic’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요, 실제로 이 마지막 코너는 스피드 스케이팅 단거리 선수들에게 이른바 ‘공포의 구간’으로 통합니다.
500m 레이스에서 선수들은 트랙의 양쪽 코너를 한 차례씩 거쳐갑니다. 보통 1-2코너, 그리고 3-4코너라고 부릅니다. 크로켓 감독이 말한 마지막 코너가 3-4코너죠. 선수들이 두려움을 느낄 만한 것이 이 구간에 진입할 때 여자 선수 기준 평균 속력이 시속 50킬로미터를 넘기 때문입니다. 제갈성렬 전 감독에 따르면 선수의 ‘체감 속도’는 그 두 배쯤 된다고 하니, 어떤 느낌일지 짐작이 갈 겁니다.(참고로 제갈 전 감독은 이 구간에서 복사뼈가 부러진 적도 있다고 합니다.) 0.01초에도 승부가 갈리는 500미터 종목에서, 직선 구간에서의 속도는 물론, 이 곡선 주로를 어떻게 도느냐에 따라 기록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강한 정신력에서는 이상화 선수를 따라올 자가 없겠죠. 대범하고 털털한 성격에 근성까지 두루 갖췄습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500미터 금메달을 목에 건 뒤 각종 인터뷰에서 보여준 재미있는 말들은 한동안 회자됐습니다. “제가 꿀벅지다, 금벅지다 하는데, 원래부터 꿀벅지 맞았고요.” 등등 자신감 넘치는 신세대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때로 피겨 김연아 선수와 비교하는 질문에도 “나만의 매력이 있다”며 쿨하게 받아 칠 줄 압니다.
자기 관리 역시 엄청나게 철저한 선수입니다. 세계신기록을 쓴 뒤, 전화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지만 어느 곳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대회가 끝난 뒤 중계를 통해 짧게 “올 시즌에 열심히 했는데, 내년 소치 올림픽까지 쭉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을 뿐입니다. 이번 주말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리는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에서 다시 한 번 대기록에 도전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다잡은 겁니다. (완벽하게 시차 적응을 하는 데 보통 열흘이 걸린다고 하는데, 상화 선수는 캘거리에 도착한 지 1주일 만에 출전해 세계신기록을 작성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주말에는 더 완벽한 컨디션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아울러 솔트레이크시티는 캘거리와 더불어 세계신기록의 산실이기 때문에, 한 주 만에 자신의 세계기록을 깨는 건 아닌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겁니다.)
내년 소치에서 올림픽 2회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기대해볼 만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상화 선수는 재작년 스케이트 부츠를 바꿨고, 가장 중요한 날은 지난해 교체했습니다. 장거리 간판 이승훈 선수의 지난 시즌 부진, 이번 시즌 모태범 선수의 부진, 모두 장비 교체 과정에서 벌어진 일인데, 이상화 선수는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지 않고 완벽하게 적응한 겁니다. 올림픽 시즌에 대비한 새 장비 교체까지 순조롭게 마친 이상화가 소치에서 ‘금빛 레이스’를 다시 한 번 보여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