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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룡 "나는 가을에 핀 꽃…오래갈 거예요"

영화 '7번방의 선물'서 정신지체 연기..흥행 4연타 노려

류승룡 "나는 가을에 핀 꽃…오래갈 거예요"
2011년 '최종병기 활'의 만주군 대장으로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보여주며 700만 관객을 동원한 배우 류승룡(43).

지난해에는 로맨틱코미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마성의 카사노바 '장성기'로 460만 관객을 모으며 사랑받은 데 이어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냉철한 킹메이커 '허균'으로 1천230만 관객을 모으는 데 기여했다.

2년간 도합 2천400만 관객을 모은 배우. 충무로에서 유일하다.

충무로의 캐스팅 1순위로 자리매김한 그가 이제 '주연급 조연'이라는 수식어를 떼고 단독 주연으로 흥행 4연타를 노린다.

새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그가 도전한 역은 여섯 살 지능으로 멈춰버린 정신지체 장애인 '용구'다. 누가 봐도, 누가 해도 어려운 연기. 하지만, 그는 도전했다.

"지금까지 한 캐릭터 중에 가장 어려웠어요"

18일 홍대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첫 마디를 이렇게 열었다.

"1986년부터 연기하면서 저에 대한 고정관념 깨기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만 하면서 안주하고 싶지 않았죠. 달걀을 깨고 나오는 듯한 느낌으로 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내아모'(내 아내의 모든 것)의 '성기'를 받았을 때는 '그래, (기회가) 왔어, 왔어. 두고 보자' 하는 생각으로 소소한 이야기에서 내 캐릭터로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었고, '광해'는 시나리오가 워낙 견고해서 대사도 하나도 안 바꾸고 누르면서 했죠. 그에 비하면 이번 '7번방'은 나를 다 깨부수는 거였어요. 깨는 게 힘들었습니다. 배우도 사람이잖아요."

어려운 선택이란 걸 알면서도 그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이환경 감독의 진심 어린 제안 때문이었다.

"고민이 많았어요. 감독이 왜 나를 선택했을까를 고민했는데, 감독님이 제가 악역으로 나온 영화들을 보고 눈이 강아지같다고 느꼈대요. 저 사람 안에는 천진한 게 있다고. 그 말에 마음이 확 넘어갔어요. 게다가 아주 든든한 우리 배우들이 있잖아요. 이미 오달수 선배와 (박)원상 씨가 캐스팅 결정된 상태였고 (김)정태 씨, (정)만식 씨. 정진영 선배까지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쟁쟁한 배우들이 한 명씩 붙는 게 이걸 더 하고 싶게 만들었죠. 시나리오에도 자칫하면 많이 봐온 신파의 느낌들이 있었지만, 배우들의 열정과 저 자신의 열정으로 해볼 수 있겠다는 치열한 도전의식이 생겼습니다."

특별한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그는 실제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20대 후반의 청년을 여러 차례 만나며 말투와 특징을 연구했다.

"시작할 땐 망망대해에 있는 것 같았어요. 제 짧은 지식이나 경험, 연륜으로 그저 흉내내기만 한다면 그동안 코미디 프로나 드라마에서처럼 과장된 희화화가 될 것 같아서 싫었죠. 정말 리얼리티를 보여줄 수 있는 롤 모델을 찾았어요. 그 친구가 일하는 공장에 네 번 정도 가서 하루 3-4시간씩 옆에 있으면서 어투나 표정을 살폈죠."

항상 웃고 있는 표정이라든지, 문장의 주어와 술어를 바꿔서 말하거나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말하는 표현이 모두 이런 관찰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패턴을 숙지하고서 그는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 대사의 많은 부분을 자연스럽게 다듬었다고 했다.

이런 역할을 연기 인생에서 한 번쯤은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그동안 늘 '뭘 해야지, 뭐가 되야지' 그렇게 해서 이뤄진 건 하나도 없었거든요. 먼 앞일을 고민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열심히 할 뿐이죠. '배우가 돼야지' 해서 된 것도 아니고 연기를 하다보니 재미있어서 여기까지 온 거죠."

그는 '최종병기 활'과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2011년과 2012년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연거푸 거머쥐었다.


"상도 그래요. '최종병기 활'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만주어만 하는 연기로 무슨 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어요. 사실 '내아모'도 코미디 장르에는 상을 잘 안주니까 전혀 생각 못했죠. 언감생심이죠. 그저 제가 운이 좋은 사람인 거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왔기에 '흥행 3연타'란 수식어는 부담스럽다고 했다.

"1천만 타이틀로 인지도까지 높아졌고 운좋게 행보가 이어졌는데, 그전에도 많은 작품을 자양분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을 생각하면 '광해'가 그런 자양분이에요. ('내아모'의) '장성기'가 갑자기 '용구'가 되면 너무 장난치는 느낌인데, '허균'으로 눌러놓고 기대감을 없애고 다시 뭔가를 보여주는 게 완충효과를 주는 것 같아요."

'주연급 조연'이란 꼬리표를 떼고 크레디트에 첫 번째로 이름을 올린 소감이 어떠냐고 묻자, '진짜 배우'다운 답이 돌아왔다.

"그저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큰 봉우리의 7부 능선, 8부 능선에 와있는 게 아니라,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길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지전'처럼 이름이 여섯, 일곱 번째에 있는 작품도 얼마든 다시 할 수 있고, 좋은 작품의 좋은 배역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만 배우들이 주연을 한 번 하면 조연을 안 하려는 풍토가 있는데, 참 이상해요. 저는 오래갈 거예요."

자신을 꽃에 비유한다면, "늦게 핀 꽃"이고 했다.

"저는 가을에 핀 꽃이라고 생각해요. 봄에 피었으면 시들어 말라 죽었을 것 같아요. 부족한 부분이나 성격이 급하고 그랬던 게 많이 빠졌죠. 소금도 간수를 빼잖아요. 그래서 늦게 맛을 보지만, 쓴맛이 안 나는 것처럼 그동안 힘든 과정이었지만 모난 부분을 연기하면서 많이 다듬고 배운 것 같아요. 천만다행이죠.

다음 작품은 '최종병기 활'을 함께 했던 김한민 감독의 새로운 사극 블록버스터 '명량-회오리 바다'다. 최근 양수리 세트장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그가 맡은 역할은 주인공인 이순신 장군(최민식 분)을 위협하는 일본 해적왕이다.

그가 낮게 깔리는 목소리로 읊어준 영화 속 일본어 대사는 '최종병기 활'의 만주어를 능가하는 카리스마를 느끼게 했다.

"'최종병기 활'과 비슷하고 또 김한민 감독님 작품이어서 주변에서 너무 익숙한 이미지가 아니냐고 우려했는데, 저는 반대였어요. 이걸 또 해도 '저건 우리나라에서 류승룡밖에 못해'라는 말이 나오게 하고 싶은, 그런 도전의식이 생기는 거예요(웃음)."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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