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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반려견 등록제? 그게 뭔가요?"

[취재파일] "반려견 등록제? 그게 뭔가요?"
제가 지금은 기자로 근무하고 있지만, 대학에서는 수의학 전공한 '수의사'였습니다. 부족한 실력에도 운이 좋아, 미국 수의사들과 함께 근무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듯이, 미국 수의사나 우리나라 수의사나 동물을 치료하는 건 별반 다른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한 가지 독특한 시술이 있었습니다. 주인의 인적사항과 개의 특성이 담긴 작은 칩을 개의 몸 안에 삽입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반려견 등록제'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주인이 쉽게 강아지를 버릴 수 없고, 또 주인이 강아지를 잃어버려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유럽과 미국에선 수십 년 전에 이미 도입됐던 제도였습니다.

먼 나라 얘기로만 알았던 이 ‘반려견 등록제’가 우리나라에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됐습니다. 우리나라의 유기견 문제가 그만큼 심각했기 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발생하는 유기견은 무려 10만 마리에 이릅니다. 지난 2003년 2만 5천여 마리에서 10년 새 무려 4배나 급증한 것이죠. 하지만, 구조되지 않아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개들까지 더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이 증가합니다. 이런 유기견들은 윤리적으로나 공중보건학적으로 우리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유기견, 윤리적·공중보건학적으로 악영향 끼쳐"
우선, 동물과 행복한 공존을 논하는 요즘, 존귀한 생명을 물건처럼 함부로 버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버려진 유기견은 대부분이 길거리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거나,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습니다. 설사, 운 좋게 구조돼 유기견 보호소로 옮겨졌다고 해도, 10일 안에 주인이 찾아가거나 분양되지 않으면 결코 '안락할 수 없는' 안락사를 당하게 됩니다.

유기견이 가지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공중보건학적으로도 매우 위험한데요, 유기견이 제대로 씻지도 않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다양한 질병을 얻게 됩니다. 그 질병들은 다시 다른 유기견으로 옮겨가고, 결국 다시 우리 인간을 위협하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길거리에 유기견을 잡아들이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 사업에만 한해 평균 백억 원에 가까운 혈세가 들어갑니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 정부가 야심 차게 준비한 대안이 바로 이 '반려견 등록제'입니다. 정부는 우선, 지난 2008년부터 지자체별로 시범적으로 시행한 데 이어, 올해부턴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했습니다. 등록 대상은 인구 10만 명 이상의 도시에 있는 반려견 4백만 마리입니다. 등록하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최대 40만 원의 과태료를 내게 됩니다. 하지만, 제도는 과연 제대로 시행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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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나 마나한 '반려견 등록제'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직접 유기동물 보호소를 찾아가봤습니다. 제도가 시행된 지 일주일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많은 유기견이 보호소로 구조돼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유기견을 담당 수의사는 설 연휴 기간에는 무려 2배나 많은 강아지가 보호소에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홍보부족입니다. 일반 시민 10명 중 6명이 '반려견 등록' 자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설사 제도를 안다고 해도, 반려견 주인 가운데 절반이 자신의 개를 등록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설명해 드린 대로 반려견을 키우려면 주인의 인적사항이 담긴 칩을 개의 몸 안에 삽입하거나 인식표를 부착해야 합니다. 하지만, 주인들은 칩 시술에 따른 부작용과 경제적인 부담, 개인정보 유출 등의 이유로 등록을 꺼리는 겁니다. 그렇다 보니, 지난 2009년부터 이제 제도를 시범적으로 시행해온 부산 등 5개 시·도 가운데, 실제로 유기견이 줄어든 곳은 경기도 단 한 곳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모든 문제는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제가 취재과정에서 만났던 상당수의 반려견 주인은 '반려견 등록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개 몸 안에 시술하게 되는 칩은 어떤 재질로 돼 있으며, 어디에 어떻게 주사하는지, 안전성 검사는 어떻게 거쳤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에 대해 모르고 있었습니다. 또, 시술 비용은 얼마이며(2만 원), 칩을 시술하는 대신 다른 방법은 없는지 등에 대해 제대로 들은 적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모두 정부가 '설명의 의무'를 충실히 다하지 않은 데 따른 것입니다. 충분한 정보가 없으니, 굳이 등록할 필요성도 못 느끼는 겁니다.

"동물보호? 표가 안 되잖아!"
그럼, 왜 이렇게 홍보가 부족했을까요? 전 어느 국회의원이 제게 해준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생명존중 문화를 만들어 간다는 취지에선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이런 문화라는 게 건물을 짓고, 다리를 세우고, 등록금을 깎아주고 이런 것처럼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열심히 해봐야 당장 표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예산이나 관심이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농림수산식품부가 배정한 동물보호 관련 예산은 6억 원에 불과합니다. 그 가운데 실제 '반려견 등록제'를 알리는 데 사용하는 예산은 6천만 원에 불과합니다. 포스터를 만들어 동물병원에 붙이는 게 사실상 홍보활동의 전부입니다. 농식품부 측은, 예산을 올렸지만 기획재정부가 심의과정에서 삭감했다고 밝혔습니다. 게다가, 이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농식품부 검역검사본부의 담당자는 고작 3명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다른 업무와 병행하다 보니, 전국에서 걸려오는 민원전화를 받다가 하루가 끝나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국민에게 알릴 예산도 없는데 단속 인력이 있을 리 만무하죠. 서울시의 경우, 서울시 공무원과 25개 자치구 공무원, 명예단속원 등을 모두 포함해야 백 명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서울은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각 구청 등에 근무하는 '수의사 공무원' 한 명이 '기획-홍보-예산-단속-결산'의 업무를 모두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시민이 정말 궁금해 하는 점들(마이크로 칩을 강아지 몸에 삽입해도 안전한지, 정보가 유출되지 않는지 등)에 대해선 제대로 설명해줄 여력이 없는 상황입니다.

'동물보호'-그 사회의 선진화 척도
북유럽 국가의 중고등교 교과서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인간에게는 존재적 욕구와 소유적 욕구가 있다. 존재적 욕구는 사람, 자연, 동물과 더불어 살고 싶은 욕구인 반면, 소유적 욕구는 개인의 이기적 욕심이다. 소유적 욕구를 중시하는 사회는 병적 사회다.' 그 사회가 얼마나 발전한 곳인지는 주변을 돌아보고, 함께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달렸습니다. 그런 점에서 '반려견 등록제'는 단순한 국가사업의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자연, 동물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성숙한 사회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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