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나 국산 파워팩을 버리고 독일제 파워팩을 선정하는 과정에 방사청이 여러 거짓말을 늘어놓아 'K2 완전 국산화 포기'가 '사건'처럼 회자되고 있습니다. 전력화를 늦추더라도 명실상부 국산 명품 전차가 탄생하기를 고대했는데 국산화 포기 과정이 석연치 않아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방사청의 거짓말들, 확인들어갑니다.
"중대 결함 없는 한 국산 파워팩 쓰겠다?"
방사청은 작년 3월과 12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이하 방추위)를 열어 "국산 파워팩에 중대 결함이 발생하면 즉각 외국제를 쓰겠다", "중대 결함이 없는 한 국산 파워팩을 쓰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중대 결함이란 결함 발생 후 2주일 안에 수리가 불가능할 때, 결함으로 전체 정비기간이 4주를 초과할 때, 지금까지 발생한 주요 결함이 반복될 때 등의 경우에 한정됩니다.
그리고 지난 4월 방추위에서 "국산 파워팩에 중대 결함이 발생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독일제 파워팩 도입이 전격 결정됩니다. 시험평가 도중 국산 파워팩의 엔진 메인 베어링 손상 등의 고장이 일어났는데 치명적인 결함으로 판정된 겁니다.
정말 중대한 결함이었을까요? '국산 파워팩 중대결함' 판정을 내린 것은 방사청 기술검토위입니다. 군 안팎의 전문가들로 꾸려진 위원회인데요, 방사청 기술검토위는 파워팩 중대 결함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위원 13명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결과는 8대 5. 8명이 "중대 결함이 아니다"라고 했고 5명이 "중대 결함이다"라고 했습니다.
13명 중에 8명이 "중대 결함 아니다"라고 했는데 방사청은 "중대 결함이다"로 결론냈습니다. 방사청의 이런 희한한 논리에 대해 방사청은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독일제를 선정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어쨌든 거짓말입니다. 방사청은 중대 결함 없으면 국산 파워팩 쓴다고 했고, 중대 결함이라고 할 수 없는 판정 나왔는데 국산을 버렸습니다.
또 하나 의문은 중대 결함이 아니라고 주장한 측은 민간 엔지니어들이고, 중대 결함이라고 주장한 측은
방사청 직원, 군인이었습니다. 방사청 직원과 군인은 전문가라고 부르기가 좀 그렇습니다. 전문가도 아닌 '관(官)'사람들만 '중대 결함'이라고 목청을 높였으니......
"독일제는 이미 5백 대 양산돼 성능 입증됐다?"
앞뒤 다 자르고 방사청 주장대로 '국산 중대 결함'을 인정한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독일제에는 문제가 없을까요? 방사청은 독일제 파워팩이 이미 5백 대 양산된 제품이라고 소개했습니다. '5백 대 양산'이 독일제 채택의 큰 논리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성능이 입증된 세계적인 제품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독일제 파워팩, 양산된 적 없습니다. 방사청, 거짓말하는 겁니다. 5백 대 양산된 독일제 파워팩은 기계식 점화 방식이고, 우리가 사들일 파워팩은 커먼레일 점화 방식입니다. 엔진 점화 방식이 다릅니다. 기계식보다 커먼 레일 점화시스템은 민감해서 열과 진동에 약합니다. 따라서 열과 진동을 잡아주는 장치가 수두룩 들어갑니다.
독일 파워팩 업체 MTU와 우리 국방과학연구소(ADD)의 문답 (Document was handed over by ADD/MOBIS to during meeting of 08 May 01 Answered by MTU/TST)을 보면 방사청의 거짓말이 드러납니다. 기자가 확보한 MTU와 ADD의 문답 문건에서 ADD가 "기계식 점화 방식 파워팩과 커먼레일 점화 방식 파워팩이 얼마나 많은 부품이 바뀌었습니까?(How many parts are modified in Euro 2 power pack copared with Euro1?)"라고 묻습니다. 이에 대한 MTU의 대답은 "엔진부품 60%가 바뀌었고, 액세서리는 20% 바뀌었다.(The percentage of modified parts(MTU-scope) between EuroPP/MT883/PLN and EurooPP/MT883/CRI are a)Basic engine : 60% of components are modified, b)Accessories(air filter, cooling sys...) : 20% of components are modified )"였습니다. 부품 60% 교체됐는데도 같은 제품이라니요.
방사청은 그런데도 "점화장치만 다른 것으로 꽂았을 뿐 같은 제품이다. 그래서 5백 대 양산된 거 맞다"라고 주장합니다. MTU와 ADD의 문답을 확인해보라니까 "그건 모르겠다"라고 방사청은 답했습니다. 확인 좀 해보라니까요!
독일제를 위한 편파 판정
무기를 개발하거나 들여오려면 대단히 까다로운 시험평가를 실시합니다. 그러나 독일제 파워팩은 예외였습니다. 가장 엄격한 시험평가 항목인 1백km 연속주행 시험과 엔진 8시간 연속 가동 시험을 하지 않았습니다. 파워팩을 전차에 탑재하지 않고 엔진과 변속기 단품에 대한 시험도 "양산됐다"는 이유로 하지 않았습니다.
방사청은 독일제 파워팩이 DT(개발시험평가)라는 시험평가를 2007년 2월부터 2007년 9월까지 32주간 받아서 '기준충족'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독일제 파워팩은 DT 113개 항목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구도 평가를 2007년 6월부터 2008년 4월까지 48주간 받았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DT 기간은 80주입니다. 방사청은 32주만 공개했지 48주 평가는 기자가 캐묻기 전엔 일언반구 없었습니다. 이를 따지자 "DT와 내구도 평가는 분리해서 하는 것이 관례"라고 방사청은 해명했습니다.
방사청의 해명을 100% 받아들인다고 해도 의문은 남습니다. DT의 가장 중요한 내구도 검사를 하지도 않고 '기준충족' 판정을 내린 것은 성급합니다. 이것도 관례일까요? 국산 파워팩은 내구도 평가를 제외한 DT 평가를 마치고 'OT(운용시험평가) 전환 가능'이란 판정을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같은 단계에서 국산 파워팩에게는 '제한적 합격', 독일제에게는 '완전 합격' 판정을 내린 겁니다.
방사청은 국산 파워팩을 완전히 개발해서 K2 흑표를 전력화하기엔 전력 공백이 심각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하루 빨리 K2가 휴전선에 배치되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뜻입니다. 진짜 그럴까요? 전력 공백이 이토록 심각하다면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육군 지휘관들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전차 전력 공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징계 받은 장군 없습니다. 즉 '전력 공백' 없다는 겁니다.
아픈 지적 하나 더. 군인들 툭하면 "전력 공백 심각하다"며 정부에 무기 살 돈 달라고 졸라대는데 제발 '전력 공백' 노래 자제해주세요. 전차만 하더라도 6.25 전쟁 이후 실전에서 사용해본 적 있습니까? 실전 비슷한데 쓴 거라곤 쿠데타와 80년 광주 뿐입니다. 천천히 개발해도 됩니다.
올해 내내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있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전력 공백' 외치는데 2011년 11월 연평도에 북한이 포격도발했을 때 우리 공군 전투기 뭐했습니까? 해병대 장병들 휴가가려고 선착장에까지 갔다가 뛰어서 부대 복귀하고, 배타고 나가다가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쳐 부대 복귀해서 싸우다 숨져갈 때 공군 전투기 뭐했습니까? 어차피 격납고에 묵혀둘 전투기, 뭐 그리 성급하게 사려고 하시나요? 천천히 면밀히 평가해서 사세요. '전력 공백' 방치한 공군 지휘관들 징계도 안 했잖습니까.
감사원 감사 결과를 기다리며
감사원이 K2 흑표 전차의 파워팩에 대해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감사원이 국산과 독일제 파워팩을 비교평가도 했고, 선정 과정의 불공정에 대해서도 면밀히 들여다봤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방사청 핵심 관계자 3명에 대해 '조사개시통보'란 것도 했습니다. 관련자에 대한 징계 여부를 따지기 위한 마지막 절차입니다. 결론이 거의 나와갑니다.
"감사원이 방사청에 분노했다", "냉각팬, 속도제어 등 중요 성능에서 국산이 독일제보다 우수한 걸로 나타났다" 등등의 얘기가 들리고 있습니다. 감사원의 엄정한 판정 기대하겠습니다. 왜 독일제를 선정했는지 꼭 좀 밝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