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 해서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그곳에서도 전깃줄에 앉아있는 제비를 봤습니다. 해질 녘, 노을을 배경으로 전깃줄에 한줄로 앙증맞게 앉아있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곳곳에서 제비를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제비가 눈에 안보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안 보이고, 다른 동네도 마찬가집니다. 봄이 되면 강남 갔다가 복을 물고 돌아온다던 제비인데, 다 어디로 간 걸까요?
서울 청량리 시장에 제비가 나타났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긴가민가 하면서 제비가 나타난다는 시장 골목에 갔습니다. 정말 제비가 있었습니다. 두 마리를 봤는데 제비가 남긴 배설물 흔적으로 봐서는 근처에 더 많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촬영에는 실패했습니다. 상인들 말이 평소에는 가게 천막 위에 얌전히 앉아있는다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제가 간 날엔 이상하게 앉지도 않고 하늘만 빠르게 빙빙 돌더군요.
생명의 소중함이랄까요. 그런 게 느껴졌습니다. 오랫만에 만난 녀석들이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제비가 아주 예쁘고 우아하게 생겼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이렇게 제 눈으로 똑똑히 제비를 봤는데, 이상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본 제비는 있어도 없는 제비라고 하네요. 이게 무슨 소린가 했더니, 서울 제비는 송월동에 있는 서울기상관측소에서 관측돼야만 공식적으로 인정된다고 합니다. 1920년대부터 관측소에서 전문가들이 육안으로 제비 비행을 확인하는데, 2007년 10월 이후에는 한 번도 제비가 관측이 안 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서울에는 4년 전부터 제비가 없는 겁니다.
말도 안 된다 싶어, 관측소에 물어봤습니다. "거기서 안 보인다고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런 답을 들었습니다. "기상자료의 연속성 측면에서 오래 전부터 관측을 해온 위치에서 관측을 해오고 있습니다." 알고 봤더니 '서울에 첫눈이 내린 날', '서울에 개나리가 핀 날'도 서울기상관측소에서 관측된 날짜를 기준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얼핏 '아, 그런 거구나' 싶었는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관측소에 있는 개나리에 병충해가 들어서 꽃이 늦게 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강남에는 눈이 내렸는데 관측소가 있는 강북에 눈이 안내리면 서울에 눈이 안 온 게 되나?'
서울만 해도 너무 넓어서, 모든 지역을 일일이 관측할 수는 없습니다. 관측을 위해서는 분명히 기준점이 필요하고, 오래 전부터 자료를 기록해 온 지금 위치가 기준점이 되는 게 가장 합리적이겠죠.
전래동화에도 등장할 만큼, 제비는 우리에게 참 친숙한 새입니다.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살다보니, 어르신들에게는 이런저런 추억이 많은 새죠. 이번 참에 서울에 돌아온 반가운 제비들을 공식적인 서울 제비로 인정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