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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똑같이 먹어도 더 찌는 사람, 세균 의심해봐야

세균이야기 2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말이 있습니다. 적은 음식을 먹었는데도, 남들보다 더 살이찌는 사람들이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빗대서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현대 의학은 그들의 억울함을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적은 양이라도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며, 남들보다 칼로리를 소모하는 운동을 적게 한 탓이라고만 말했습니다.

그런데 2006년 네이처지에 한 논문이 실렸습니다. 미국 워싱턴 의과대학이 뚱뚱한 쥐와 마른 쥐의 장 안에 사는 균의 분포를 조사해봤더니 달랐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도 그런지 확인해봤더니, 비만인 사람과 정상 체중인 사람의 장 세균 분포가 달랐습니다. 정상 체중인 사람은 장 속에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라는 균의 비중이 높았는데, 비만인 사람은 피르미쿠테스(Firmicutes)균의 분포가 더 높았습니다. 이런 균 분포의 차이가 어떻게 사람의 비만도에 영향을 주는 걸까요?

생존에 꼭 필요했던 균이 비만균으로

연구팀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장 세균은 사람이 섭취한 음식물에서 에너지를 뽑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음식물 중에는 입안에서 씹는 과정을 거치고, 위장에서 여러 소화 효소로 분해 되고도 여전히 복잡하고 질긴 구조로 남아 있는 게  있는데, 이걸 장 세균이 에너지로 뽑아내기 쉽게 가공합니다. 그리고 이때 만들어진 에너지로 장 세균도 생존하고, 사람도 힘을 얻는 겁니다. 이런 이유때문에 장 세균은 인간에 기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공생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피리미쿠테스균은 음식물을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일을 다른 균보다 월등히 잘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100g의 빵을 먹는다면 일반균이 50g 정도만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반면, 피르미쿠테스균은 100g 모두를 에너지로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식량이 절대 부족했던 인류에게 이 피르미쿠테스균은 생존의 조건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피르미쿠테스균이 많은 사람만이 적자생존되어 세대유전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지구 전체로 부면 아직 식량이 부족하기에, 이 균을 비만균으로 부르는 것은 틀린 말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는 게 문제가 되는 사회에서 이 균은 비만균으로 불릴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 연구가 발표된 이후, 세계 유명 대학이 앞다퉈 후속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미국 뉴욕대학, 메이요 대학,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 등에서 같은 사실이 확인됐고, 지금은 피르미쿠테스균이 있으면 얼마나 살이 찌게 되는지도 계산됐습니다. 한 그룹의 쥐에게는 장에 피르미쿠테스균을 주입하고, 또 다른 그룹의 쥐에게는 반대로 장에 사는 균을 없앴습니다. 그리고 같은 양의 음식을 먹여봤더니, 피르미쿠테스균이 주입된 쥐는 다른 쥐보다 체중이 54%나 더 늘었습니다. 또 피르미쿠테스균이 주입된 쥐는 체지방이 60%나 더 많이 쌓였습니다. 최근엔 피르미쿠테스균의 장 분표율이 높아지는 데는 유전적인 요소가 관여한다는 것도 밝혀지고 있습니다.

세균, 비만·당뇨에 암까지

비만인 사람은 인슐린이 잘 작동되지 않습니다. 이를 인슐린의 저항성이 증가한다고 하는데, 이때문에 비만은 그 자체가 당뇨의 한 원인이 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 피르미쿠테스균이 직접 관여한다는 연구 결과가 여러 곳에서 발표됐습니다. 장에 피르미쿠테스균이 많은 사람은 살이 찌기 전부터 인슐린의 작동이 고장나는데, 이 때문에 당뇨병이 다른 사람보다 더 어린 나이에 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근거를 들어 '비만과 당뇨가 감염병'이라고 말하는 급진적인 학자도 있습니다. 그리고 비만과 당뇨를 운동이나 다이어트, 그리고 혈당 강하제로만 치료하는 것은 병의 원인은 치료하지 않고 증상만을 치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감기를 해열제로만 치료하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다소 위험하고 극단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개념인 것만은 맞는 것 같습니다.

                     



세균이 암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들도 속속 발표 되고 있습니다. 위장에 사는 헬리코박터가 위암을 일으킨다는 건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구강암과 췌장암도 세균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왔습니다.  미국 메모리얼 슬로언 캐터링 병원에서 구강암에 걸린 사람의 구강내 세균을 조사했더니 정상인과 달랐다는 겁니다. 담배를 피우면 구강에서 나쁜세균의 분포가 높아지는데 이 나쁜 세균들이 독성을 내뿜고, 그 독성에 시달리면서 만성 염증을 앓아온 구강 상피세포가 암세포로 바뀌는 것이라는 가설을 내세웠습니다. 지금까지는 담배연기가 구강 상피세포를 직접 괴롭히는 것으로만 알려져있는데, 그 중간에 구강 속 세균 변화가 선행된다는 걸 새로 밝혀낸 겁니다. 또 미국 UCLA 의과대학에서는 췌장염이나 췌장암 환자도 구강내 세균 분포가 일반인과 다른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요인에서 췌장염이나 췌장암이 생기는지는 잘 모르지만, 췌장염이나 췌장암이 생기기 전에 입안의 세균 분포의 변화가 먼저 일어난다는 겁니다.

세균은 감염성 질환의 원인입니다. 상처 부위를 썩게 하거나, 장염을 일으키고, 중이염이나 폐렴, 뇌수막염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지금은 비만, 당뇨 그리고 심지어 암도 세균이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제발 이런 연구 결과들이 그동안 치료가 어려원던 이들 질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결실로 까지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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