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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운을 떼면, 신하들이 답해 지은 '화답시'

<8뉴스>

<앵커>

조선시대 조정은 정치만 논하는 삭막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정조임금이 운을 떼고 신하들이 그에 답해 지은 화답시들이 일반에 첫 공개됐습니다.

김수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녹음이 우거진 창덕궁의 화사한 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옥류천.

1793년, 음력 3월 정조는 규장각 신하 41명을 거느리고 이곳에 꽃놀이를 나왔습니다.

"따스한 기운은 부드럽게 스치는데 술잔은 둥둥 떠 있고 차가운 샘물은 이리저리 흐른다."

왕이 첫 시를 읊으면 신하들이 화답시를 짓는 식이었습니다.

"영천에 잔 띄우고 비는 새로 내리는데 자리 옆의 어린 잎은 늦바람에 살랑이네."

국립문화재연구소 도서관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형태의 이 시집은 분석과 번역작업을 거쳐  지난주부터 일반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8미터가 넘는 두루마리에 정조의 친필시는 물론 당대 최고 문장가인 규장각 관원 50여 명의 화답시가 원문 그대로 담겨있어 보물급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김연수/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장 : 시를 주고받는 형식을 통해서 본인의 학문적인 것도 같이 나누고, 그걸 통해서 관원들과 정치적인 유대감을 공고히 하겠다는…]

형형색색의 색지와 금가루, 운모 가루, 이끼 등이 들어간 조선 후기 왕실에서 사용한 최상급 종이의 모습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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