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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다시 찾은 불법 카지노

강남 지역에 불법카지노가 판을 치는 이유는?

지난해 4월, 불법 사설카지노를 취재했었습니다. 장안동과 답십리 일대를 2주 넘게 돌아다녔는데요. 몰래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갔다가 딜러들에게 둘러싸여 곤혹을 겪기도 하고 기자 신분을 들킬 번하기도 하면서 어렵사리 보도를 했었습니다.

1년이 조금 지났군요. 이번엔 강남 일대에 있는 카지노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돌아가는 행태는 작년과 거의 흡사했습니다만, 굳이 동대문 관할의 카지노들과 비교하자면 출입하는 사람들이나, 판돈 면에서 비교가 안되더군요.

6월 중순 쯤부터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작년에 한 번 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막막하던 그 때 보다는 일이 제법 수월했습니다.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는 세 곳 정도였습니다. 밤 시간에 가야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찍을 수 있으니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11년된 엑센트를 세워두고 혼자 자다, VJ 친구랑 같이 자다를 반복하며 촬영을 했습니다.

밤새 카지노에 들어가 이런저런 취재를 하고, 다시 아침에 경찰서로 출근해서 일과를 보내는 일을 근 2주가 넘게 계속해야 했습니다. 3주째에 접어드니.. 거짓말 조금 보태서 입에서 단내가 나더군요. 기사의 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강남 일대에 불법 사설 카지노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2. 이 곳에는 연예인과 유명인들도 꽤 출입을 하고 있다.

3. 일부 경찰들과 유착관계가 있어 단속이 잘 안된다.

적당히 한 군데 가서 찍은 화면 보여주고 다른 곳 위치 정도만 확인해도 기사를 쓸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지노들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신고도 직접 해보고 싶었습니다. 되도록이면 실상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전달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새벽시간, 불법카지노를 경찰에 신고한 후에 지구대 경찰과 통화했던 내용을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 112 신고하셨죠?

= 네.

@ 직접 확인해 보셨나요?

= 네. 지금 하고 있어요.

@ 하고 있다고요 카지노를? 다른 게임이 아니라? 카지노를 한다고요?

= 네. 하고 있어요.

@ 홀덤바 같은 거 아니고요? 거기가 예전에 홀덤바 있는 건 확인했었는데.

= 카지노하고 홀덤하고 다른가요?

@ 그럼요. 홀덤이랑 카지노랑은 틀리죠.

= (경찰이 여기서 얘기하는 '홀덤바'는 요즘 많이 생긴 '트럼프 방'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 거 말고요. 문 잠궈놓고 하는 불법 사설카지노예요.

@ 선생님이 앞으로 오실 수 있어요?

= 네?? 제가 가면 안되죠. 그러다 보복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해요.

@ 오시면 안된다고요? 근데 선생님 말씀만 듣고서 임의대로 딸 수가 없잖아요. 뭔가 확인을 시켜준다거나.. 그게 홀덤바가 불법인지 아닌지를 증거를 잡아야 한단말예요.

= 지금 안에서 사람들이 하고 있다니까요?

@ 아니.. 도박을 오늘만 할 건 아니잖아요. 내일도 할 거 아녜요. 제가 지금 정복입고 단속한다고 하고 들어가면 다 치워버릴 거 아녜요. 나중에 선생님께서 강남서 풍속에다 신고를 하세요. 생활질서계에 풍속반이 있어요. 사복입고 나와가지고 현장 증거를 확보를 해야 단속을 할 수 있단말예요.

= 도박은 지금 하고 있는데 내일 신고를 하라고요?

@ 아니.. 신고하는 절차를 알려드리잖아요. 왔는데 문이 잠겨 있어요.

= 그럼 불법인데 당연히 잠궈놓고 하죠.

@ 그러니까요.. 그래도 선생님 말만 믿고 딸 수는 없잖아요. 강제로 뜯었는데 변상해 달라면 어떻게 할거예요. 책임 질 수는 없잖아요.  내일 낮에 강남서 생질계 알려달라고 해서 번지를 알려주시고.. 선생님이 피해보신 것을 입증을 해 주셔야 돼요. 지금 피해본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 그럼 지금 단속 못하시겠단 얘기에요?

@ 문이 잠겨 있다니까요. 지금 강제로 뜯어달라는 얘기예요? 불법인지를 어떻게 입증하실 거예요? 뭐 일행들이 갇혀 있다거나 하면 신고를 하는데.. 그게 아니니까 지금 절차를 알려드리잖아요. 제가 그럼 여기 서 가지고 사람들 나올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란 얘기에요?

= 알았어요.

글쎄요. 내일 경찰서로 신고를 하라니.신고하는 입장에서 적잖게 당황했습니다. 총 3번에 걸쳐 신고를 했었는데.. 그 때마다 반응은 비슷했고요. 그래서 <엉터리 단속> 뭐 이런 내용으로 기사를 써야하나 고민했습니다.

뭐 녹취도 있고, 촬영도 했으니 기사를 쓰려고 마음 먹으면 쓸 수야 있었지만, 조금 고민이 됐습니다. 왜냐구요? 단순히 지적을 위한 지적은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무슨 말이냐면요. 아무리 규정상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규정을 지키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면 지적을 당하는 입장에선 '이 바닥도 잘 모르면서..' 하는 핀잔을 들을 게 뻔하겠죠.

업계용어로 '아픈 기사'를 쓰고 싶었습니다. 비판을 당하는 사람들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그런 기사를 말이죠. 그래서 지구대 경찰의 대응이 정말로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감금됐다거나, 살인, 강도, 강간 같은 강력사건 신고를 받고 이런 식으로 대응을 했다면 두 말할 필요가 없지요. 하지만 강력사건으로 보기는 힘든 불법 사설카지노는 현장 증거를 확보한 뒤에 단속을 하는 것이 맞아 보였습니다. 지구대 직원 두명에게 철옹성 같은 불법카지노의 소탕을 기대할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내일 아침에 직접 신고하라"는 식의 대응에는 문제가 있었죠.

지구대 차원에서 처리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 자기들이 일단 어떤 식으로든 처리를 한 뒤에 상부(생활질서계)에 서면이든, 유선이든 보고를 하고 단속이 되도록 하는 게 순리상 맞는 일이 아니었을까요.

경찰 조직을 잘 알고 있는 저 같은 사람은 이 지구대 경찰분의 말씀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만, 일반 시민들에게겐 상당히 불쾌하고 무책임할 수 있는 반응이죠.(실제로 취재 도중 만난 많은 분들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물론 경찰 대응에 문제는 있었지만, 길어야 2분이 채 안되는 뉴스 리포트에서 이 모든 것들을 지적할 수는 없는 것도 현실인지라 좀 더 문제가 되는 내용을 찾아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기사 쓰기가 조금 어려워 진다 하더라도, 조금 더 명확하게 기사를 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꼬깃꼬깃 팍팍한 엑센트 새우잠은 그래서 시작된 거죠.

그리고 그렇게 맨바닥을 기어 다니길 3주쯤 한 결과 경찰이 연루된 내용들을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관련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적을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만, 취재 시작 한 달만에 보도에 필요한 내용들을 전부 모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2꼭지를 생각하고 취재를 했던터라.. 쓸 그림은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보도 하루 전 카지노 한 곳을 검찰이 급습했고 핵심 업주 2명이 달아나긴 했지만, 딜러와 손님 28명이 체포됐습니다. (최근 업주 1명이 검거돼 구속됐고.. 나머지 1명은 도망다니고 있죠.)

검찰 단속이 있은 다음 날, 관할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경찰서 담당부서와 해당 지구대 등을 찾아 다니며 확인을 했죠. 취재사실이 알려지자 관할서는 아침부터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했습니다. 회사에 들어와서 기사 두개를 작성해서 올리고 그동안 촬영한 화면들을 편집기자와 상의해 편집을 했습니다.

부산한 와중에 많은 경찰 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점잖게 다른 이야기를 하시며 에두르시는 분들부터 이래저래 읍소를 하시는 분들까지.. 반응이 다양했습니다. 걸려오는 전화에 최대한 정중히 응대 했습니다. 야비하게 기사 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 했으니까요.

다만 한 가지, 돈을 받고, 뒤를 봐주고 한 일부 사람 때문에 성실하게 일하시는 분들까지 모두 싸잡아 비난을 당하고 감찰 조사를 받게 될 거란 사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렇게 8시뉴스 보도가 나가고 난 뒤, 관할서 담당부서와 관할 지구대 직원들은 한밤 중에 불려나와 조사를 받았습니다.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의 수많은 경찰 분들의 원성을 샀으리가 생각합니다.

17일 8시뉴스가 나간 이후 애송이 기자 하나가 쓴 소설에 죄없는 경찰들만 피해를 봤다는 얘기부터 다른 심보가 있어 경찰서를 공격한 야비한 놈이란 얘기까지 여러 말들을 듣고 있습니다. 억울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묵묵히 입을 닫고 있습니다. 업주들에게 돈을 받았던, 뒤가 구린 분들만 속으로 뜨끔하실테니까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니 진실이 어느 것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가려질 거라고 믿습니다. 사건은 계속 진행 중입니다. 조금 더 지나 전말이 드러나면 그 때 계속해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고생해 준 영상 기자들과, 비좁은 엑센트에서 숨막히는 순간을 같이 보낸 VJ 현우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 카지노 단속? "경찰이 뒤 봐주는데 무슨 재주로"

◆ 서울경찰청, 사설 카지노 관할서 '밤샘 감찰'

  [편집자주] '겸손과 존중'이 취재의 좌우명이라는 김요한 기자는 2006년 SBS 보도국에 입사해 사회2부 사건팀에서 활약 중입니다. 섬세하고 끈질긴 취재력과 함께 수준급 실력의 '드럼' 연주까지 보도국의 팔방미인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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