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죽음에 연루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책임지고 싶은 사람은 더욱 없습니다.
한 '회사원'의 갑작스러운 죽음.
40대 중반의 한 남성은 24시간인 하루에 거의 24시간을 일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이런 날이 한 달이면 7~8번. 초과 근무는 한 달에 기본 80시간. 많을 땐 120시간까지.
남성은 자신이 그저 건강한 줄 알고 17년을 버텨왔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에 쓰러졌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남겨진 아내와 두 자녀는 아빠의 공백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SBS는 이 회사원의 안타까운 사연을 취재해 방송했습니다.
그런데 우정사업본부로부터 SBS에 불만 섞인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자신들한테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다면서요. 우정사업본부는 회사원의 죽음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회사원은 대체 어떤 일을 했을까요.
그는 주식회사 '코트랜스'에 다녔습니다. 이 회사는 도시에서 도시로, 가령 서울에서 대전, 혹은 부산에서 대전, 이렇게 장거리로 우편물을 나르는 주식회사입니다. 집집마다 편지를 배달하는 집배원 분들이 장거리 코스를 뛰진 않습니다.
집배원(공무원)은 오토바이를 타고 단거리만 뛰지만, 코트랜스 직원들(회사원)은 5톤 이상의 트럭을 몰고 다닙니다.
가령, 전남 광주의 갑돌이가 강릉의 갑순이에게 보낸 러브레터를 생각해볼까요.
광주 한 우체국 집배원이 우체통 속의 편지를 걷어서 광주우편집중국에 갖다 주면, 우편집중국에서 발송 지역 별로 자동 분리된 뒤, 코트랜스 직원이 편지를 밤새 대전의 중앙센터로 보낸 다음에, 강릉에서 일하는 코트랜스 직원이 대전까지 트럭을 몰고 와, 러브레터를 다시 밤새 강릉우편집중국으로 가져가, 그곳 집배원 아저씨가 갑순이에게 사랑의 연서를 전달하게 됩니다.
발송 버튼 한 번 누르면 끝나는 이메일 세상에 통탄할 일이긴 합니다.
이 코트랜스라는 주식회사가 생긴 건 2003년입니다.
원래 1980년부터 우정사업진흥회라는 비영리 재단법인이 우편물의 장거리 운송을 담당했고, 지금도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진흥회가 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가 업무의 일부가 어정쩡하게 민영화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편집중국 안에서도 우편물을 지역별로 나누는 건 국가의 일이지만, 분류한 우편물을 트럭에 싣는 건 민간의 일입니다.
코트랜스 사무실도 국가 건물인 우편집중국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코트랜스 수입은 트럭을 옮길 때마다 나오는 운송료로 충당되는데, 이 운송료는 국가에서 나옵니다.
코트랜스 소속 트럭에는 우체국의 빨간 제비 마크가 그려져 있습니다.
결국, 코트랜스는 껍데기만 주식회사일 뿐, 아직도 나랏일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에 가깝습니다.
코트랜스가 손 놓으면 우리나라 우편 업무는 곧바로 마비됩니다.
이런 데도 우정사업본부는 코트랜스 직원의 돌연사가 남 일이라는 듯 잡아뗍니다.
광주우편집중국도 취재 초반부터 집중국 간판을 절대 찍어선 안 된다며 이미지 관리에만 열을 올렸습니다.
3년 전에도 직원 한 명이 돌연사해 산재 인정까지 받은 곳입니다.
잇따라 쓰러지는 코트랜스 직원들로부터 고개 돌리는 우정사업본부.
SBS를 항의 방문까지 하시겠다는데, 그 시간에 업무 환경 한번 고심해 보심이 어떨는지.
p.s. 우정사업본부의 반론
우정사업본부 측은 오늘(2일) '(주)코트랜스'는 국가의 우편 업무를 민영화한 회사가 아니라 업무를 아웃소싱한 주식회사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방송된 사연이 코트랜스 직원이 아닌 우체국 집배원의 돌연사로 비춰진 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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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세상 구석구석을 훑어보는 짜디 짠 소금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겠다 !" 핸섬한 외모의 박세용 기자는 2005년 SBS 보도국에 입사해 사회부 사건팀을 거쳐 기자들이 만드는 시사고발 프로그램 '뉴스추적'에서 활약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