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숨어있는 한 국군포로를 SBS 취재진이 어렵게 만났습니다. SBS는 이 국군포로의 목숨을 건 탈북 과정과 북한에서의 생활을 연속 기획으로 보도합니다. 다만, 북한에 두고온 가족들의 안전을 고려해 신원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오늘(21일)은 먼저 51년만에 이뤄진 눈물의 극비 상봉을 중국 현지에서 진송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지난 7일밤, 중국 지린성 옌지시. 취재진은 탈북 국군포로를 만나기 위해 남쪽의 동생과 함께 이곳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중국 공안 당국의 감시 때문에 동생은 직접 나설 수 없는 상황. 취재진이 먼저 중개인과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약속장소를 세 차례나 바꾸고서야 중개인이 나타납니다.
[혹시 한국에서? (네.) OO사장님 부탁으로 왔습니까? (네.)]
시로 30분 넘게 달려 도착한 곳은 시 외곽의 한 건물. 안으로 신호를 보내자 벽으로 위장한 문이 열립니다. 커튼으로 불빛을 가린 거실에 반백의 노인이 서 있습니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취재진이 구석방으로 따라 들어가자 초조한 듯 담배를 피워문 노인은 그제서야 말문을 엽니다.
[이모 씨(71) : 나는 이미 남쪽에서 군대생활 하다가 이쪽(북한)에 붙들려 왔기 때문에 중국에서 살자고 넘어온 것도 아니고 남쪽으로 나갈 사람이란 말입니다.]
지난 51년 동안 북한에 살아온 국군포로입니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함경북도 은덕군의 한 탄광을 탈출해 목숨을 걸고 두만강 국경을 넘었습니다.
[이OO/국군포로 : 두만강 건너는 데 딱 총을 들고 북한군이 지키는 거야. 죽을 뻔 했지.]
은신 생활 석달째. 이씨는 고향에 돌아간다는 희망 하나로 버텼습니다.
[(제일 보고 싶은 분은 누구세요?) 남쪽에? 지금 가족을 내가 다 보고 싶지, 만나야지.]
같은 시각, 동생은 옌지 시내의 한 호텔에서 형을 만나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국군포로 이씨 동생 : 생각하면 한이 없겠죠. 그렇지만 어차피 형님한테 눈물 안보이고 좋은 얼굴로 대하고 싶은 그런 심정이죠.]
다음날 아침.
[(편히 주무셨어요?) 아니, 못잤어. 하나도. 동생을 만나자니까 생각할수록 눈물만 나고 못자겠더란 말입니다.]
국군포로 이씨와 함께 동생을 만나기 위해 은신처를 나섰습니다. 석달만에 처음 나온 옌지 시내. 위험이 여전한 가운데 이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형님, 저 ´도야´입니다. (아니, 누구요. 당신?) OOO인데. (야!) 절 '도야'라고 불러준 사람은...형님이었어요. 살아서 다시 만날 줄이야.]
군대갈 때 헤어져 반세기만에야 노인의 모습으로 다시 만난 형제.
[통일이 될 때까지만 살면 꼭 고향에 간다, 그러고 있었단 말야. 이렇게 만나니 꿈인지 생시인지...]
국군포로 이씨의 51년만의 형제 상봉은 이렇게 멀리 중국 땅에서 극적으로 이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