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난 2023년, 축구장 8개 면적을 잿더미로 만든 서울 인왕산 산불. 산불 통계가 작성된 1987년 이후 서울에서 발생한 가장 큰 산불로 기록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형 산불이 최근 전국에서 더 자주, 더 크게 번지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만 서울 면적의 1.6배에 달하는 숲이 사라졌는데, 더 큰 문제는 복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희 탐사팀이 불탄 산들이 왜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지 그 구조적인 원인을 취재했습니다.
먼저, 노유진 기자입니다.
<노유진 기자>
산중턱에서 시작된 불길이 순식간에 번져 나갑니다.
검은 연기가 치솟고, 주민들은 긴급 대피했습니다.
화마가 덮쳤던 인왕산 기차바위 인근 등산로.
전문가와 함께 직접 올라가 봤습니다.
2억여 원을 들여 불탄 나무를 치우고 소나무와 진달래를 심었다는 곳.
설계대로라면 1제곱미터당 소나무 2그루가 있어야 하지만, 듬성듬성 빈 땅입니다.
1m 나뭇가지로 거리를 재며 확인해 봤습니다.
[홍석환 교수/부산대 조경학과 : 소나무는 1㎡당 한 주도 채 안 들어가 있죠. 많으면 한 주, 적으면 없고 그런 게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거의 식재되지 않았다고 보면 되고요.]
그나마 심어진 묘목들조차 살아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게 막 죽어서 이미 힘 안 줬는데도 막 우수수 떨어져요.]
[서울시 관계자 : 시기가 약간 (나무가) 안 보이는 시기예요. 여름 되어야 좀 잘 보이는데… 죽은 거에 대해서는 하자 (공사)를 한다고 들었어요. 모니터링 용역을 또 별도로 할 거라서….]
하지만 다시 심는다 해도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활엽수 옆에 소나무와 진달래를 심었는데, 잎이 무성해지면 그늘에 가린 묘목은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홍석환/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 (활엽수) 잎이 생기게 되면 하부는 다 그늘이 됩니다. 그늘이 됐을 때 진달래나 소나무는 자랄 수가 없거든요. 여기에 식재된 나무는 거의 100% 2~3년 이내에 다 죽을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복구 과정에서 맨흙이 드러났는데 손으로 밀기만 해도 쓸려 내려가는 상황입니다.
[홍석환 교수/부산대 조경학과 : 비만 오면 여기 전체가 다 쓸려 내려가서 저쪽(등산로)에 토사가 쌓이겠죠. 더 크게 내려가면 이제 계곡을 따라서 큰 산사태로 이어지는 것이고요.]
게다가 불에 탄 목재 폐기물까지 방치돼 있습니다.
해마다 72만 명이 찾는 인왕산, 세금을 들여 복구한 산이 3년이 넘도록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상편집 : 김종태, 디자인 : 황세연, VJ : 김준호)
<앵커>
복구가 끝난 산을 열화상 드론으로 촬영해 봤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숲이 우거져 시원한 빛을 띠어야 할 산이 온통 노란색입니다.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 지표면이 달궈진 건데, 복구를 마친 산이 왜 이런 걸까요. 추적 결과 전국의 산불 현장만 찾아다니며, 유령 회사를 세워 사업권만 따낸 뒤 사라지는 산림법인들이 있었습니다. 업계에선 이들을 '메뚜기'라고 부릅니다.
배여운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배여운 기자>
7년 전 시뻘건 불길이 산을 집어삼켰던 강원도 강릉.
다시 찾아가 봤습니다.
복구를 마쳤는데 산등성이 너머까지 헐벗은 맨땅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어린나무들은 대부분 말라 죽었습니다.
[(나무) 활착률이 어느 정도 된다고 보세요?]
[최병성/기후재난연구소 상임대표 : 99% 실패한 곳이다라고 할 수 있죠. 아마 전국에서 가장 심각한 현장일 것 같아요.]
또 다른 산불 복구 현장.
어린나무들이 잘 자라도록 주변을 정리하는 '사후 관리'까지 모두 끝난 곳인데, 베어낸 마른 가지들이 산더미처럼 비탈을 뒤덮고 있습니다.
[최병성/기후재난연구소 상임대표 : 벌목하고 그냥 나머지들을 쌓아놓고 간 것이죠. 시작된 불이 이 길을 따라 꼭대기까지 그냥 순식간에 타고 올라갑니다.]
산림 복원하랬더니 산불을 키우는 불쏘시개를 만든 셈입니다.
작업 업체는 이미 폐업한 상태.
경위를 물으러 당시 대표 명의의 또 다른 산림 업체로 찾아갔습니다.
[가게 주인 : (여기에 회사가 있었던 적이?) 없어요. 내가 (여기) 18년 됐어요, 19년째예요. 지금. 2층은 우리 집이에요. 주택.]
서류상 주소만 있는 페이퍼컴퍼니였습니다.
산림 복구 사업은 예정가에 근접한 금액을 써낸 업체 중 무작위로 낙찰자를 뽑는 방식이라 유령 법인을 여러 개 만들어 낙찰 확률을 높이는 수법을 쓴 겁니다.
[산림법인 ○○ 대표 : 어차피 입찰은 확률 게임이니까. (법인) 5개, 6개를 갖다 놓고 입찰을 보는 거죠.]
문제의 업체는 강릉에선 문을 닫았지만, 다른 시·도에서 똑같은 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산림법인 ○○ 대표 : 입찰을 보러 이제 주소지를 옮겨놓고.]
이처럼 전국의 산불 현장을 옮겨 다니며 사업을 따낸 뒤 사라지는 업체들이 산림 사업 전반에 뻗어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 : (업계에선) '메뚜기'라고 그럽니다. 이 업체들 가보세요. 거의 페이퍼(서류상 회사)들이에요.]
문제는 사업이 끝난 뒤 업체가 문을 닫으면 복구가 엉망이어도 책임을 물을 곳조차 없다는 겁니다.
[강릉시 산림과 직원 : 폐업 업체가 현실적으로 복구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이런 '메뚜기' 업체, 얼마나 될까요.
최근 6년간 산림청 사업 계약 1만 3천여 건, 1조 7천억 원어치를 전수 분석했습니다.
입찰 참여 업체 3곳 중 한 곳은 이름만 다를 뿐 전화번호는 똑같았습니다.
실체는 하나인데 간판만 바꿔 단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따낸 사업 금액만 3천246억 원입니다.
하나의 전화번호에 무려 18개 법인이 연결된 경우도 확인됐습니다.
시도까지 넘나들며 사업 따낸 업체는 230곳, 이들의 낙찰액은 2천100억 원이 넘었습니다.
메뚜기 업체들이 산불 현장을 훑고 가는 사이 우리 산의 회생 기회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설민환, 영상편집 : 최혜영, PD : 김도균·한승호, XR : 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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