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상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쌀과 소고기 시장을 지키기로 하면서 우리 농업계는 일단 한숨을 돌린 모양새입니다.
통상 당국은 한미 관세 협상 시한인 다음 달 1일을 하루 앞두고 압박이 심한 미국과의 협상 타결을 위해 애초 반드시 지켜야 할 '레드 라인'으로 설정한 쌀·소고기 시장 개방까지 '협상 카드' 중 하나로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이 시장을 추가로 열지 않기로 했습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오늘(31일) 브리핑에서 "식량 안보와 우리 농업의 민감성을 감안해 국내 쌀과 쇠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은 줄곧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제한과 쌀 시장 개방 등을 우리 측에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는 지금껏 다른 국가와 통상협상에서 농산물을 주요 카드로 써 왔던 것과 정치적 민감성 등을 고려해 일단 이번 협상에서 이 시장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또 앞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우리 농업 분야의 99.7%가 이미 개방돼 있고 나머지 0.3%인 10개 내외 조항에 대해서만 유보된 만큼 한미 통상 협상에서 농업 시장 추가 개방 없이 협상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미국의 5대 농산물 수입국이고, 작년 우리나라의 대미 농축산물 무역적자는 약 80억 달러(약 11조 원)에 달합니다.
앞서 우리 정부는 농가에 미치는 영향과 민감도를 고려해 쌀과 소고기를 '레드 라인'으로 두고 협상에 올리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우고 대신 만약 농산물 시장 개방을 통상 카드로 써야 할 경우 '연료용 농산물' 수입 확대 카드를 고려했습니다.
바이오에탄올용 옥수수 같은 경우 현재도 수입이 가능하고, 옥수수의 경우 자급률이 0.7%에 불과해 우리 농가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서 일본이 미국과 통상협상에서 농산물 시장을 확대하기로 한 데다, 미국으로부터 지난 24일 '2+2 통상 협의' 취소 통보를 받는 등 협상을 앞두고 압박이 심해지자 우리도 시장을 추가 개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았습니다.
결국 정부가 추가 개방을 막는데 주안점을 두고 협상을 타결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쌀과 소고기 추가 개방은 우리 측에선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미국 입장에서도 실익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카드 중 하나로 꼽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특히 쌀과 소고기 수입 확대는 다른 국가와도 엮인 문제여서 우리 측에서 추가 시장 개방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각국에 저율관세할당물량(TRQ)을 할당하지 않아, 다른 국가의 동의 없이도 미국의 쌀 비중을 확대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미국 등 5개국에 TRQ를 각각 적용하고 있어 세계무역기구(WTO)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소고기는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이를 검역 규제를 해제할 경우 유럽연합(EU)을 비롯한 다른 나라와 통상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통상 협상과 별개로 앞서 미국이 우리 측에 요구해온 사과와 유전자변형작물(LMO) 감자 수입 허용 등은 이미 시장이 개방돼있어 과학적 평가와 절차를 거치면 수입이 가능합니다.
농산물 검역 협상의 경우 병해충 유입 위험성을 평가하고 이에 대한 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절차를 거치면 됩니다.
다만, 이번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 과정에서 구체적인 품목별 논의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여서 정부와 농업인단체 모두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앞서 농산물 시장을 추가로 개방하면 대정부 투쟁에 나설 움직임을 보여온 농업인단체들은 정부가 쌀·소고기 시장 추가 개방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습니다.
다만 이들 단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은) 농산물 등을 포함한 미국산 제품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것을 고려해 세부 내용을 더 파악해보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한 농업인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농산물 시장을 사수하겠다는 완강한 의지를 밝힌 것에 대해서는 환영한다"며 "진행한 내용에 대해 세부 내용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