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방과 레시피, 와인 등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 스프에서 맛깔나게 정리해드립니다.
피자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지만, 전 세계에 피자를 널리 알린 건 미국이다. 미국의 여느 길거리에서도 피자가게는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미국인들은 피자에 환호한다. 잘 반죽한 도우 위에 치즈와 다양한 토핑을 올려 먹는 단순한 요리는 어떻게 미국에서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을까?
미국에서 피자의 기원은 이탈리안 이민자들로부터 시작된다. 공식적으로는 1905년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의 이민자 젠나로 롬바르디(Gennaro Lombardi)가 문을 연 'Lombardi's'' 피자가게가 미국 최초의 피자가게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고국의 맛을 그리워했고, 주머니 사정 가벼운 이민자들에게 피자는 맛있고 가성비 좋은 음식이었다. 미국 산업화 시기에 맞물려 패스트푸드의 수요는 폭발했고, 사업가들의 눈에 피자는 매력적인 상품이었다. 1950년대부터 '도미노', '피자헛', '리틀 시저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피자 체인이 생겨나며 미국 전역으로 확산한다.
비슷해 보이지만, 미국의 피자는 동네별로 제각기 맛과 모양이 다르다. 뉴욕에서 맛보는 피자는 얇고 별다른 토핑이 올라가 있지 않지만, 시카고에서는 포크로 먹어야 할 만큼 많은 양이 들어 있는 '딥 디쉬' 피자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지역별로 다른 피자가 탄생했을까? 다양한 이민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피자를 해석했고, 그 결과 새로운 스타일의 피자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이었다.
뉴욕 – 이탈리아 '나폴리' 스타일의 시작점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도시답게 정통 이탈리안 피자를 선호한다. 뉴욕의 피자는 얇고 큼직한데 토마토소스와 치즈만 달랑 올라간 것이 특징이다. 뉴욕 사람들은 얇은 피자를 반으로 접어서 먹곤 하는데, 빠르게 걸어 다니며 이동해야 하는 지역 특성상 많은 토핑을 올리는 것보다는 단순하게 만든 것을 선호했다. 이러한 이유로 뉴욕 사람들은 여전히 피자는 손으로 먹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데, 2014년 빌 드 블라시오 당시 뉴욕 시장이 피자를 포크와 나이프로 먹는 모습이 공개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결국 그가 사과하며 손으로 피자를 먹는 모습을 다시 보여주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시카고 – 파이처럼 먹는 '딥 디쉬 피자'

시카고 피자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이게 정말 피자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라게 된다. 일반적으로 피자라고 하면 얇은 도우 위에 치즈와 토핑을 올려낸 것을 떠올리지만, 시카고 피자는 커다란 파이 도우 안에 치즈와 토핑, 소스를 몽땅 채워 넣은 음식이다. 이것이 바로 '딥 디쉬 피자(Deep-dish Pizza)'다. 이는 미국 중서부 지역의 추운 날씨와 관련되어 있는데, 얇고 가벼운 피자보다 식사용으로 충분히 무게감 있는 것이 잘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시카고 피자의 기원은 1943년 시카고의 'Uno Pizzeria & Grill'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인장인 아이크 세웰과 릭 리카르도는 좀 더 미국인의 입맛에 맞는 피자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들은 파이 팬에 두꺼운 도우를 넣고 치즈, 토핑, 소스 순으로 재료를 쌓아 올렸는데, 일반적인 피자와는 반대로 소스를 맨 위에 얹는 독특한 순서 때문에 피자 안의 치즈가 장시간 따뜻하게 유지된다는 특별함이 있었다. 단, 손으로 먹기는 어렵기 때문에 시카고 피자를 먹을 때 포크와 나이프는 필수다.
디트로이트 피자 – 사각 팬에 담긴 사각형 피자

피자라고 하면 동그란 모양을 떠올리지만 디트로이트 피자에서는 다른 이야기다. 사각형 모양에 두꺼운 도우, 바삭한 치즈가 담겨있는 피자가 바로 디트로이트 피자다. 이 사각 피자는 흥미롭게도 자동차 공장에서 시작되었다. 1946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구스 구에라(Gus Guerra)는 아내와 'Buddy's Rendezvous'를 운영 중이었다.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던 디트로이트에는 자동차 부품을 담는 사각형 강철 팬이 흔했는데, 그는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피자를 구워보았다. 동그랗지는 않았지만, 사각 틀에서 구워진 피자는 포카치아 빵처럼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맛을 냈다. 특히 팬의 가장자리에 치즈를 가득 뿌려 구워냈기 때문에 바삭하게 구워진 치즈 향이 일품이었다. 여기에 시카고 피자와 마찬가지로 소스를 마지막에 올려내는 방식이었기에 추운 날씨에도 치즈가 장시간 따뜻하게 보관될 수 있었다.
'소스는 가장 마지막에 얹는다.'
"The sauce is added on top at the very end."
디트로이트 피자 스타일
"The sauce is added on top at the very end."
디트로이트 피자 스타일
코네티컷 – 조개를 듬뿍 얹은 피자

이탈리아 사람들이 만든 피자 중 정통과 지역 색을 가장 잘 담아낸 피자가 바로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의 '화이트 클램 피자(White Clam Pizza)'다. 이 피자는 인근 바닷가에서 채취한 신선한 조개와 마늘, 올리브 오일, 파슬리를 올려서 굽는데 '피자답지 않은 피자'로 유명해졌다.
1925년부터 피자가게를 운영 중이었던 프랭크 페페는 1960년대에 조개 피자를 만들어 낸다. 그는 어느 날 '코네티컷주를 마주하는 바닷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리틀넥 조개를 피자에 올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피자에 육류를 올리는 것을 선호했고 조개는 단가도 비쌌지만, 그의 가게에서 사용하는 고온의 숯불 화덕을 활용하면 괜찮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고, 조개 피자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하며 바다향이 가득 담긴 아주 특별한 피자로 탄생했다.
세인트루이스 – 크래커처럼 바삭한 피자
독일계 이민자와 이탈리안 이민자들이 많이 살던 세인트루이스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피자 대신 바(Bar)나 술집(Tavern)에서 맥주 안주로 곁들일 무언가가 필요했다. 세인트루이스 피자는 아주 얇은 도우 위에 프로벨(Provel) 치즈라는 특별한 지역의 치즈를 사용한다. 프로벨 치즈는 프로볼론 치즈, 체다 치즈, 스위스 치즈가 혼합된 결과물인데 특유의 훈연 향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세인트루이스 피자는 피자를 정사각형, 16피스 정도로 썰어내는 것이 특징인데 이를 '파티컷(Party cut)'이라 부른다. 맥주와 즐기기에도 적합하며, 파티를 할 때 부담 없이 한 조각씩 즐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