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사람들의 삶을 이렇게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이번 산불은 우리 산불 대응 체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SBS는 오늘(31일)부터 갈수록 더 무서워지고 잦아지는 산불을 앞으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짚어보려 하는데요. 그 첫 순서로 특히 고령층에게 별 도움이 되지를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우리 재난문자 시스템을 짚어봤습니다.
민경호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25일 저녁 경북 청송의 왕복 2차선 도로.
컴컴한 도로에 매캐한 연기가 가득하고 파도가 방파제를 덮치듯 붉은 화염이 도로 안까지 위협합니다.
차량 운전자는 산불을 피해 처음에는 남쪽으로, 이후 서쪽,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가며 청송과 안동을 헤맸습니다.
[A 씨/산불 피해 시민 : 당시에 인터넷이나 뭐 그런 정보가 없어가지고 그냥 불길이 좀 없는 쪽으로 가고 싶어서….]
청송군과 안동시로부터 잇따라 재난문자들이 왔지만 도움이 안 됐습니다.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형식적 내용만 있을 뿐 어디로 대피하라는 핵심 내용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산불 희생자 대부분이 고령층인데,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긴급재난문자는 대피의 시작조차 되지 못했던 걸로 보입니다.
상당수 고령 피해자는 집 안이나 마을을 벗어나지 못한 채 갑자기 닥친 화마에 변을 당했습니다.
[산불 피해 시민 : 시골 노인분들은 (재난문자) 그런 거 전혀… 보내주는 문자도 못 보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다 옆집에서 가자 그래서 나가고 아니면 이장님이 막 가자고 하고 (그래야 대피해요.)]
긴급재난문자와는 별도로 디지털 취약계층에게는 공동체 단위의 재난 대피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채희문/강원대 산림환경과학대학장 : 소규모로 마을 단위를 묶어서 책임제를 두고 하는 게 제일 효과적이에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이런 식으로 해요.]
현재 기술로도 읍면동 같은 행정구역 기준보다 더 세밀하게 구역을 설정해 정보를 전달하고 연령 등에 따른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합니다.
[장석진/서울시립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 외국 같은 경우에는 (먼저) 여러 명에게 보내서 사람들한테 경각심을 일단 일깨워주고, 그다음에 특정 지역에 있는 분들한테는 계속 자세한 정보를 여러 번에 걸쳐서 보내는 시나리오로 (운영합니다.)]
안타까운 희생을 막기 위해 긴급재난문자를 비롯한 재난 대처의 시작부터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시급해 보입니다.
(영상취재 : 설민환, 영상편집 : 최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