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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화된 뉴스는 이제 그만, 이슈의 맥락을 읽는 재미를 담았습니다.
'원숭이 B바이러스'라는 용어를 처음 들은 건 비상계엄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혼란에 빠져있던 지난해 12월 초였습니다. 실험용 동물에 관한 취재를 하던 중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이는 원숭이 수백 마리가 몇 년 전 우리나라에 반입된 의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취재를 시작하기도 전이었지만 '사실이라면 큰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었던 탓인지, 동물에서 시작된 낯선 바이러스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 달 남짓한 취재 과정을 거치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원숭이도, 바이러스도 잘못이 없다. 잘못은 사람에게 있다.'

"매우 드물지만 걸리면 치명적인" 원숭이 B바이러스, 정체는?
'입병'이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고, 이렇다 할 치료 없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발현할 수 있는 '만성적' 특성을 가진 것처럼 원숭이 B바이러스도 비슷합니다. 원숭이 10마리 중 6마리 이상이 보유할 정도로 원숭이에겐 흔한 바이러스입니다. 올록볼록 수포가 올라오는 임상적 특성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다고 해서 원숭이가 크게 아프거나 죽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흔해 보이는 바이러스가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점입니다. B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에게 물리거나, 이 원숭이의 체액, 타액, 분변이 사람의 눈, 코, 입을 통해 체내로 들어갈 경우 사람도 감염이 될 수 있습니다.
원숭이는 걸려도 별문제가 없는데, 사람이 걸리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초기에는 발열 등 독감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지만 제때 치료를 하지 않으면 뇌염, 척수염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 있습니다. 전체 감염자 수 대비 사망자 수의 비율을 의미하는 '치사율'이 70% 이상인 것으로 보고돼 있고, 생물안전등급 중 가장 위험도가 높은 4등급에 속해 있습니다. 이 4등급에는 우리가 잘 아는 에볼라 바이러스도 있습니다.
원숭이 B바이러스는 치료제는 있지만 백신은 없습니다. 즉, 예방은 불가능하고 걸리면 치료는 가능하단 이야기입니다. 치료제가 있는데도 치사율이 높은 이유는 왜일까요. 이 원숭이 B바이러스는 '급성'이 아닌 '만성'입니다. 쉽게 말하면, 걸린다고 바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감염이 됐는지를 바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감염이 된 줄 모르고 있다가 증상이 한참 악화된 후에야 알아차릴 위험이 높다는 뜻입니다.
실제 2021년 중국에서 B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를 해부하다가 분변에 의해 감염된 수의사는 이 원숭이와 접촉한 지 두 달여 후에 사망했습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원숭이 B바이러스를 "매우 드물지만 심각하고 치명적일 수 있다(B virus infection is extremely rare but can be serious and even deadly)"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B바이러스 감염 의심 원숭이가 국내에 들어온 이유
정부 출연연구기관인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전북 정읍에 영장류자원지원센터를 두고 있습니다. 이곳은 영장류, 즉 원숭이를 보관·사육하며 국내 기관이나 대학 연구소 등에서 실험이나 연구 목적으로 원숭이가 필요할 때 제공해 주는 곳입니다. 현재 1천 마리 정도의 원숭이를 보유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해외에서 수입을 해왔고, 수입을 해온 개체에서 태어난 새끼들도 있습니다.
영장류자원지원센터는 2020년 9월 국내 한 실험동물 공급업체와 계약을 맺고 캄보디아에서 실험용 게잡이원숭이 340마리를 들여왔습니다. 원숭이를 수입해 들여올 경우 해당 국가에서 30일, 우리나라에서 30일 검역을 거쳐야 합니다. 이 원숭이들은 캄보디아 검역을 통과해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전북 정읍과 충북 오창으로 각각 300마리와 40마리씩 나뉘어 이동해 30일간 검역을 거쳤습니다.
야생 원숭이는 수입할 때 환경부에서 검사를 하지만 실험용 원숭이는 검사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이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전북 정읍과 충북 오창, 즉 자체 센터에서 30일간 자체 검역을 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선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국내에 반입된 후 자체 검사 과정에서 원숭이 B바이러스 항체가 검출됩니다. 340마리 중 202마리에서 검출이 됐습니다.
항체가 검출됐다는 건 지금 해당 바이러스에 감염이 돼 있거나 아니면 과거에 감염된 이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이러스에 감염이 돼 있는지 정확히 알려면 PCR 등 추가 항원검사를 거쳐야 하지만 연구원은 추가 검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추가 검사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업체와 맺은 계약서에 <항체검사 결과 음성인 원숭이를 구매한다>고 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어차피 계약 사항에 맞지 않으니 구매하지 않고 반품을 하기로 한 상황에서 굳이 검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게 연구원 관계자가 취재진에게 한 말입니다.
만약 이 원숭이가 일반 물건이었다면, 또 사람에게도 전염이 가능한 바이러스를 품고 있지 않았다면 연구원의 이 '해명'은 상식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걸렸을 수도 있는, 살아있는 원숭이를 '반품'하는 건 일반적인 물건 반품과는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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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한 반품은 결국 '신고하지 않고 옮기기'였다
영장류자원지원센터가 그들의 표현대로 감염 의심 원숭이를 '반품'하려고 했던 이유는 B바이러스 항체가 검출됐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양도 양수 신고서에 적은 사유는 '연구 장소 변경'이었습니다. 진짜 이유는 적지 않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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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생물법 16조는 '질병 등으로 동물을 더 이상 사육할 수 없을 경우 환경청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연구원은 항체검사 결과 양성이 나온 사실을 신고서에 적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항체검사가 양성이라는 것만으로 바이러스에 걸렸다고 확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바이러스 여부를 알 수 있는 PCR 같은 검사가 충분히 가능했지만 스스로 하지 않았으면서, 바이러스 감염 여부가 확정되지 않아 신고하지 않았다는, 아이러니한 답을 내놓은 겁니다.
결국 환경청은 '연구 장소 변경'이라는 이유만 적힌 '이동 신고'를 승인해 줍니다. 그 결과 B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되는 원숭이들이 전북 정읍, 충북 오창에서 경기도 성남으로 7개월에 걸쳐 이동했습니다. 국내에 반입이 되지 않았어야 할 감염 의심 원숭이들이 인천을 통해 국내로 반입됐고, 검역을 이유로 전북과 충북으로 옮겨졌고, 항체검사 사실을 환경청에 알리지 않아 다시 경기도 성남으로 이동한 겁니다.
생명공학연구원은 SBS 보도 이후 낸 입장문에서 "전국 곳곳으로 옮겨 다녔다는 말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2020년 10월부터 2021년 7월까지 7개월여에 걸쳐 인천 → 전북 정읍 → 충북 오창 → 경기 성남으로 이동한 것이 '곳곳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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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업체에서 또... 생명연-업체 '이상한 거래'
이번에도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업체로 반품을 시키기 위해 환경청에 '이동 장소를 옮긴다'고 신고했습니다. 그런데 환경청이 제동을 겁니다. 양도 양수 신고서에 적은 이 원숭이들의 수입 허가 용도를 입증할 서류를 내라고 두 차례나 요구했는데 센터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 겁니다. 결국 환경청은 서류 미비를 이유로 이동 신고를 반려했습니다. 결국 57마리는 전북 정읍, 영장류자원지원센터에서 안락사 처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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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과 2021년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입니다.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불안이 컸던 때고, 감염병 예방과 관리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강조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영장류자원지원센터가 2년에 걸쳐 680마리의 원숭이를 들여오려고 했던 이유도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연구에 쓰일 원숭이들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과정에서의 '감염병 관리'는 빈틈이 많았습니다.
업체가 두 차례나 감염 의심 원숭이를 납품했으면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 등의 이유로 책임을 묻는 것이 보통이지만 생명공학연구원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업체와도 이후에도 거래를 이어갔는데, 2023년 원숭이 45마리를 내자구매(해외에서 사 오는 게 아니라 업체가 국내에서 보유하고 있던 원숭이를 사 오는 것) 하는 과정에서 2020년 업체로 반품시켰던 원숭이 18마리가 재판매되는 일까지 발생합니다. 그사이 원숭이의 몸값이 뛰면서 돈도 3배나 더 내게 됐는데도, 연구원은 최근까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업체는 "실수였다"고 해명했는데, 연구원은 보도가 나간 이후에야 해당 업체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한다고 밝혔습니다.
메르스 때도 우리 검역 체계엔 '메르스'가 없었다
문제는 병리학적으로는 같은 바이러스인데 법마다 이를 달리 규정한다는 겁니다. 원숭이 B바이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병관리청은 위험한 바이러스나 세균을 고위험병원체로 지정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원숭이 B바이러스는 그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동물을 수입할 때 검역의 근거가 되는 가축전염병법이 규정하는 전염병엔 포함되지 않고, 야생생물법이 규정하는 질병의 목록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병리학적인 정의, 치사율 70%에 달한다는 바이러스의 특성은 바뀐 게 없는데 법마다 위중도를 달리 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법 공백은 또 있습니다. 앞서 질병관리청이 원숭이 B바이러스를 '고위험병원체'로 지정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고위험병원체는 국내에 반입하거나 발견되면 무조건 질병관리청에 사전 신고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신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질병관리청은 '분리된 바이러스'만 취급합니다. 즉, 원숭이 B바이러스 자체는 질병관리청 관리 대상이지만,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체(동물)은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가축전염병법, 야생생물법에선 B바이러스가 아예 전염병도 아니니 감염된 동물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이를 걸러낼 제도가 현재로선 없는 셈입니다.
2015년 국내에 메르스가 퍼졌을 때 공항 검역에서 메르스 감염 환자를 걸러내지 못하는 일이 초기에 문제가 됐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우리 검역 체계에서 걸러내는 바이러스 중 메르스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검역 행정이 여전히 소극적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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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원숭이 B바이러스는 흔한 바이러스는 아닌 만큼 미국, 일본, 영국 등도 검역에서 걸러내야 할 질병으로 분류하진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SBS 탐사보도부는 미국 CDC에 직접 이메일을 보내 관련 내용을 문의했는데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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