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60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시켰다는 이유로 당시 10대 여성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형법학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정당방위를 다툰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힙니다. 그 여성이 대법원 결정으로 법원에서 재심을 받을 길이 열렸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하정연 기자가 전하겠습니다.
<기자>
1964년 5월, 당시 18살이던 최말자 씨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20대 남성에게 저항하다 되려 가해자로 몰렸습니다.
남성의 혀를 깨물어 성폭행 피해에서는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수사기관은 최 씨의 성폭력 피해 보단 가해 남성의 혀가 1.5cm 잘렸단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최말자 : (검사와 경찰이) 실실 비웃으면서 남자를 불구로 만들어 놓았으면 네가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니냐.]
결국 검찰은 최 씨를 '중상해' 혐의로 재판에 넘겼고, 법원은 "혀를 끊어버려 말 못 하는 불구의 몸이 되게 한 건 정당방위 정도를 지나쳤다"며 최 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정작 가해남성 노 모 씨에겐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최 씨보다 낮은 형량이 선고됐습니다.
후에 이 사건은 정당방위를 다툰 대표적 사례로 형법학 교과서에도 실립니다.
수십 년 숨죽여 살던 최 씨는 사건 이후 56년 만인 지난 2020년 용기를 내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수사 당시 검사가 조사받으러 온 최 씨를 영장 없이 구속하고 자백을 강요했다는 이유에서였는데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3년 넘는 심리 끝에 재심 청구를 기각한 원심 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불법구금에 대한 최 씨의 일관된 진술 내용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며 법원이 사실 관계를 따져봐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78살이 된 최말자 씨가 60년 만에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영상취재 : 정경문, 영상편집 : 신세은, 디자인 : 조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