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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수급 초조한 한 달…카타르 '불가항력'의 파장 [이브닝 브리핑]

에너지 시설 피해로 글로벌 후유증 예상

원유 수급 초조한 한 달…카타르 '불가항력'의 파장 [이브닝 브리핑]
세계는 미국과 이란의 휴전 또는 종전 시점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설마 했던 에너지 공급 부족 상황이 거의 한 달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공습의 연기 속에 가려졌던 중동국가들의 에너지 시설 피해는 또 다른 국면을 예고한다. '파티 비롤' IEA(국제에너지기구) 사무총장은 이번 충격이 "1970년대 두 번의 오일쇼크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가스공급 충격을 모두 합친 수준"이라고 말했다. 중동 지역 9개 산유국에서 최고 40곳의 에너지 시설이 심각하게 파괴됐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LNG 생산의 핵심시설에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카타르는 한국과 이탈리아, 중국 벨기에 등과의 장기 공급계약에 대해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 상황이 생기면 공급 계약을 불이행해도 책임을 면해주는 장치이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호르무즈 해협이 뚫리더라도 글로벌 원유와 가스 시장은 최소 4개월 동안 공급부족 상태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량을 구하지 못한 수요자들이 현물 시장으로 몰리며 가격이 좀처럼 안정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카타르 라스라판 가스 생산 시설

'4월 위기'는 아니라지만 불투명한 5월

우리 정부의 상황 인식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은 정부 차원의 비상대응체계를 선제적으로 가동할 것을 주문했다. 정부는 일단 일각에서 제기된 '4월 위기'는 사실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정유사 등 민간 보유 물량을 먼저 배출하고, 다음 정부 비축유를 방출하면 4월 말까지는 수급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정부와 민간 보유량을 합치면 1억9천만 배럴, IEA 기준으론 200일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거론되지만, 실제 국내 하루 소비량인 280만 배럴을 기준으로 하면 실질적인 기한은 70일 안팎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UAE에서 추가 물량 2천400만 배럴을 확보했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마지막 유조선이 지난 20일 한국에 입항한 이후, 이 원유를 가져올 수 있을지도 아직은 불투명하다. 사실상 페르시아 만과 홍해 전역이 이란 공격의 사정권인 데다, 현지 생산 시설의 손상이 속속 드러나는 상황 때문이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지만 4월 내 휴전이나 정전에 이은 호르무즈의 정상화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내 비축 원유 소진에 따라 비축 물량이 줄어들수록 적지 않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절약'의 한계..근본 대책은 공급 확보

공공부문 '승용차 5부제'는 시행 첫 날인 오늘(25일) 비교적 혼선 없이 시행되는 모습이다. 공공기관들은 이미 5부제를 시행하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행 여부를 점검해 반복 위반의 경우에 징계한다는 방침이다. 인구 30만 명 이상 50만 명 미만 시군 내 공공기관의 경우 '대중교통 접근성이 열악한 지역과 장거리 출퇴근 임직원 차량'도 예외가 적용된다.

다만, 원유 자원안보위기 경보 단계가 '경계'로 격상되면 민간에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전기·수소차와 생계형·장애인 차량을 제외하면 2천370만대가 적용대상이 돼 효과는 커진다. 5대 금융지주사와 대기업들도 동참하고 있다. 민간까지 확대된다면 1991년 걸프전쟁 이후 35년 만에 강제 시행이 된다. 공공부문만 시행하는 현재 시점에선 적용 차량은 약 150만 대로, 절약할 수 있는 석유는 하루 3천 배럴 정도이다. 국내 하루 소비량의 0.1% 수준으로 미미하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정부의 고육책으로 볼 수 있다.
3월25일 박진호 위원 이브닝브리핑용
호르무즈 해협의 혼돈은 쉽게 예상하기 힘든 악재인 만큼, 대응책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다만 이제부터는 큰 틀의 정책조율로 효과를 극대화하는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당장 석유 최고가격제와 승용차 5부제는 엇갈리는 정책이라는 반응도 나오는데, 에너지 소매가격을 인위적으로 안정시키는 대책은 소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어, 반대로 수요를 억제하는 5부제와 충돌이 있을 수 있다. 최고 가격제는 정유사들의 폭리와 상대적 취약계층의 생계형 비용을 감안한 조치지만, 새로 적용하는 대책들과 전체적인 조율이 필요해 보인다. 결국 중동의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정부의 역량은 원유 물량과 공급선의 확보에 투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들도 총체적으로 정부 대책에 협조해야 한다.

"결국 물가로 전이"..고환율 중복악재

현지시간 23일, 미국 휴스턴에선 세계 석유회사 대표들이 참석하는 '세라위크' 에너지 컨퍼런스가 열렸다. 걱정되는 것은 "호르무즈 마비로 인한 에너지 시장의 공급 부족이 아직도 선물 원유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미국 쉐브런의 CEO, '마이크 워스'의 우려였다. 국내 거시 경제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유가 급등의 여파로 나타날 물가 상승 압력이다. 관세청의 '3월 1~20일 수출입 현황' 잠정집계에 따르면 이 기간 수입액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19.7% 늘었는데, 특히 원유수입액수는 27.8%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동 상황 악화로 인한 고유가 지속 기간이 늘어날수록 수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겹쳐진 악재는 고환율이다. 원유의 대체 공급원을 가진 중국이나,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원유 공급 감소의 직접 피해를 피해갈 수 있지만, 중동 의존도가 특히 높은 아시아 국가들, 특히 수입 규모가 큰 한국은 통화가치에서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국제유가의 상승은 주요 결제 통화인 달러화의 강세로 동조화하는 성격이 강한 데다, 지정학적 악재로 인한 안전자산 쏠림 심리가 원화의 약세를 더 강화하는 모습이다. 시장에선 사실상 달러당 1천500원 선이 무너진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고유가와 고환율은 1개월 안에 수입 물가를 통해 생산자물가에 영향을 주고, 결국 소비자물가로 전이될 것으로 우려된다. 전쟁이 지금 끝나더라도 중동 지역의 손상된 에너지 시설의 복구를 감안하면 3,4개월 동안 고유가 흐름이 지속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을 시작으로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 한국은행도 금리 인상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선 가장 부담스러운 시나리오이다.
3월25일 박진호 위원 이브닝브리핑용

유연한 정책으로 중동 의존 벗어나야

주목되는 것은 원유 공급 대체선 확보 여부이다. 이번 상황은 중동에 편중된 원유 공급선이 국가 경제에 큰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전문가들은 우선 중동산 중질유 정제에 특화된 국내 정유공장의 설비에 대한 전환 작업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미국산 경질유를 중동산과 혼합해 정제하는 방식을 병행하면서, 다른 지역의 경질유 도입에 필요한 시설투자를 정부 주도로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가 생존을 위한 에너지원 확보는 자주권의 차원에서 접근해 운송과 정제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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