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현지시간 22일 갈등을 빚어온 하버드대의 숨통을 더욱 옥죄고 나섰습니다.
하버드대가 외국인 학생을 받을 수 없도록 관련 자격 전격 박탈에 나선 것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가 반(反) 유대주의 근절을 위해 요구한 학내 정책 변경에 응하지 않고 위법 행위를 하고 있단 점을 이번 조치의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지지율 '누수'를 겪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른바 '마가'(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지지층 결집을 가속화하기 위해 자신이 '진보 엘리트' 딱지를 붙인 하버드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하버드대가 법을 준수하지 않음에 따라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tudent and Exchange Visitor Program·SEVP) 인증을 상실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조치는 외국인 학생들의 하버드대 수학 기회를 사실상 막는 것입니다.
대학들은 SEVP의 인증이 있어야 외국인 학생 등에 유학생 자격증명서(I-20) 등을 발급할 수 있는데, 비자 승인을 위해선 I-20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국토안보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하버드대는 더 이상 외국인 학생을 받을 수 없고, 기존 외국인 재학생은 비자를 유지하려면 학교를 옮겨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일각에선 이번 조치로 하버드대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당장 외국인 학생의 등록금에서 나오는 수입이 끊기는 것은 물론, 조치가 장기화할 경우 전 세계 우수 인재들을 유치하는 세계 최고 명문이라는 하버드의 '브랜드' 역시 일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입니다.
외국인 석·박사생 등이 참여하는 연구 프로그램의 중단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현재 하버드대의 재학생 중 27%에 달하는 약 7천 명이 외국인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뒤 진보 엘리트들이 강요하는 담론을 척결하겠다며 각계를 겨냥해 '문화 전쟁'을 벌여왔습니다.
특히 하버드대를 비롯한 명문대를 진보 사상의 '보루'로 지목하고 반유대주의 근절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학내 DEI(다양성·포용성·형평성) 정책의 폐기 등을 압박해 왔습니다.
지난달 하버드대가 "독립성이나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놓고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개 반기를 든 뒤에는 이 대학이 트럼프 대통령의 집중 표적이 됐습니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촉발한 관세전쟁에 따른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지지율 하락을 겪는 상황에서 국정 동력 유지를 위한 지지층 결집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미국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하버드대를 비롯한 명문대가 극좌 사상과 전복적인 활동의 보루라는 게 마가 지지층의 광범위한 문제제기"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하버드대와의 싸움에서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분명하다"고 짚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하루 전 워싱턴 DC에서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 2명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총격범에게 살해된 사건 뒤 이뤄진 점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심장부'에서 발생한 비극으로 반유대주의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된 상황을 계기로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를 비롯한 명문대에 요구해 온 '개혁'의 명분을 더 부각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입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거센 압박에도 하버드대가 일단은 버틸 여력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학교 재정의 상당 부분이 기부금으로 충당돼 외국인 학생들의 등록금 중단으로 인한 타격이 당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관측입니다.
아울러 하버드대가 이번 조치의 위법성을 다투기 위해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버드대는 앞서 트럼프 행정부의 지원금 중단 조치에도 효력 중지 소송으로 응수했습니다.
하버드대는 성명을 통해 "우리 대학과 미국의 가치를 크게 드높이는 전 세계 140여 개국 출신 외국인 학생과 연구자들을 계속 유치하는 능력을 지키는 데 전적으로 전념하고 있다"며 저항을 예고했습니다.
미국 진보 진영은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민주당 진보코커스 의장을 지낸 프라밀라 자야팔 하원의원은 SNS에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이 "위험하고 불법적"이라며 이는 "사람들을 괴롭혀 침묵하게 하려는 독재자 지망생의 행동에 불과하다"고 일갈했습니다.
미국 비영리단체 '개인의 권리와 표현을 위한 재단'(FIRE)도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는 비미국적인 불법 보복 조치라고 비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