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헌법 가치 체득한 정치 리더 등장해야"

-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인터뷰

박종희 1

SDF는 우리 사회 복합위기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 저명한 국내외 정치학자의 통찰을 들어보려 합니다. 댄 슬레이터 교수(미시간 대학교)얀 베르너 뮐러 교수(프린스턴 대학교), 강원택 서울대 교수에 이은 네 번째 순서는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인터뷰입니다.

박종희 교수는 2007년 워싱턴대학교(세인트루이스)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시카고대학에서 정치학과 조교수(2007-2012)를 거쳐 2012년부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에서 국제정치경제와 방법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미국정치학회로부터 최우수 방법론 논문상(2010년)과 최우수 소프트웨어 개발상(2013년)을 수상한 바 있으며 앤드류 마틴 (Andrew D. Martin), 케빈 퀸 (Kevin M. Quinn) 교수와 공동개발한 MCMCpack은 가장 대중적인 베이지안 오픈소스 통계 패키지 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힘과 규칙: 국제질서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사회과학자를 위한 데이터 과학』, 『정치학 방법론 핸드북』(편), 『개발협력의 세계정치』(편)이 있습니다. 박종희 교수는 현재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 경제안보클러스터 연구책임자와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의 국제정치데이터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SDF1
SDF
지난달 16일, SBS 목동 사옥에서 박종희 교수와 인터뷰 중인 류란 SBS 기자

Q. 교수님도 참여하신 한 언론사의 신년 맞이 기획이었는데요. 국내 대표적 정치학자 스무 명에게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서 당장 고민해야 할 의제'를 물었더니, 90%인 18명이 '개헌 등을 통한 대통령의 권한 분산'이라고 답했습니다.[1] 지난해 계엄 사태 이후 1987년 체제의 한계와 함께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읽힙니다.

개인적으로 1987년 체제 대신 '6공화국 헌법' 표현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저는 헌법 자체의 불완전성 혹은 결함이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물론 6공화국 헌법은 선거제도의 비례성이 부족하고, 비례대표 의석의 본래 기능이 왜곡되고 대통령의 과도한 임명권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본질은 대통령이 헌법이 정한 안전장치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위헌적인 비상계엄을 단행한 데에 있습니다. 헌법대로 했다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포고령 제1조에 명시된 것처럼 대통령은 국회의원 및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위헌적인 계엄을 진행했습니다. 이는 마치 제대로 작동해야 할 화재경보 시스템을 고의로 고장내서 화재를 일으킨 후, 화재 원인을 경보 시스템 문제로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현행 헌법의 문제점과 개혁 논의는 비상계엄과 별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헌법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 즉 대통령의 권한 남용 문제나 선거제도의 불완전성에 대한 논의는 분명 중장기적으로 진행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모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번 비상계엄과 같이 구체적인 위헌 행위가 발생한 상황에서 이를 6공화국 헌법의 결함과 동일시하는 것은 논점 흐리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정부와 여야 간의 격돌, 대통령의 25번의 거부권 행사, 민주당과 야권의 29번의 탄핵소추안 발의 등 여러 정치적 대립 상황이 헌법 개혁의 필요성을 부각시킬 수는 있으나, 지금 당장의 문제는 대통령이 헌법의 안전장치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위헌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국민들이 직선제 등 현행 대통령제에 대해 갖고 있는 효능감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민주화 이후 국민들은 총 4번의 정권 교체를 통해 대통령이 문제 있을 때 투표로 처벌하는 제도적 장치에 상당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국민들이 직선제를 포기할 준비가 되었다고 아직 판단하지 않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표현에 대해선 학술적으로 명확한 실체보다는 전통적으로 야당이 정치적 비난의 도구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봅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더라도, 운영 방식에서 제왕적 행태를 보일 수 있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사면권은 국민 통합과 국력 신장을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되도록 설정되어 있으나,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남용한다면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합니다. 제도의 원칙과 제도의 운영상의 차이를 구분해야 합니다. 과거 강력한 대통령제가 군사 독재를 종식시키고 문민정부로 전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IMF 위기와 외환위기 이후 재벌 개혁을 이끌어내는 데도 기여한 바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감안할 때, 현행 대통령제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보다는 부분적인 권한 조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공동체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 어느 곳에 허점이 있었는지를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입니다. 12.12와 5.18 사건 당시 관련자들을 처벌한 것도 단순히 응징이나 보복이 목적이 아니라, 위법적인 명령 체계와 그 명령이 왜, 어떻게 실행되었는지를 밝혀내고,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마치 제2차 세계대전 후 나치 전범에 대해 진행된 뉘른베르크 재판과 유사한 원칙, 즉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음에도 집행한 자들에 대해 처벌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것과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경제 위기, 9.11 테러, 이라크 전쟁 등 주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가차원의 위원회를 구성하여 사건을 조사하고 백서를 작성하고, 그 사건의 원인과 시스템의 허점을 철저하게 분석합니다. 우리 역시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검찰 수사와 특검 등을 통해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에 빠져 위헌적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있도록 막아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시스템'의 문제점을 정확히 확인해야 합니다. 국무회의와 같은 대통령 권한 통제 시스템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위법 명령 체계가 경호처와 군, 검찰, 경찰 시스템을 통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철저히 분석하고 규명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과정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1] 경향신문. 정치학자들 "'제2 윤석열' 막으려면 대통령 권한 축소해야" ①. 2025. 1. 1. 기사 (클릭)

박종희 3
Q. 사후 복기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들을 확인한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하겠습니다. 다만, 정치 영역의 갈등과 불안이 반복되면서 국내외 의심과 불안도 가중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일들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현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과정을 보면, 전통적인 경제 정책이나 정치·사회 개혁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사회 약자를 공격하고 자국 중심적 포퓰리즘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상황과 유사한 패턴을 보입니다. 음모론이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면서 정치적 자원으로 이용되고 있고, 음모론에 기반한 주장들이 점차 정치 공론을 왜곡하며 증거 제시 없이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게 만드는 위험한 경향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번 윤 대통령의 부정선거 음모론 역시 이러한 현상 중 하나입니다. 대통령은 부정선거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선관위 서버에서 해킹 증거를 찾아내겠다는 주장을 내세웠고, 그 결과 국무회의에서 제대로 반대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문제는, 음모론은 증거와 상관 없이 그 주장을 사실이라고 믿는 태도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신념으로 과학적 증명이나 합리적 반론으로는 좀처럼 뒤집어지지 않습니다. 논리나 증거 제시만으로는 그들의 확신을 깨뜨리기 어렵습니다.

다행히도, 이번 비상계엄 과정에서 대통령의 부정선거 음모론은 우리 민주주의를 완전히 흔들지는 못했습니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현명한 판단과 상식으로 근거없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향후 헌법재판소와 사법기관이 올바른 결론을 내릴 것이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체계가 계속해서 성숙해 나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박종희 13
Q. 1987년 이후 5년 단임제 대통령 8명 중에 탄핵 소추를 당한 대통령은 이제 3명이 되었습니다. 탄핵소추가 종종 이뤄지는 것에 대해서 우리 민주주의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 걸까요? 대통령제에 가장 강력하게 기대하는 것 중 하나가 안정적인 국정 운영인데 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앞줄 왼쪽)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 심판 6차 변론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의 답변을 들은 뒤 발언하고 있다.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제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대통령제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헌법에 의해 대통령의 임기가 보장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대통령은 내란이나 외환 관련 범죄와 같은 극히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재임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습니다. 의원내각제에서는 총리가 다수당의 불신임을 받으면 언제든지 임기가 단축될 수 있어 정치적 불안정성이 존재하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이 차이는 대통령이 한 번 당선되면 국민의 명령에 따라 비교적 안정적으로 국정 운영을 지속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1987년 이후 이미 세 차례의 대통령 탄핵 시도가 있었습니다. 언뜻 대단히 불안정해 보이지만, 이들 사건은 각각의 정치적 상황과 맥락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모두 합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되었고 이에 대한 대규모 불복이나 국론분열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은 헌법재판소에서 부결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에는 국민들의 합의와 촛불 시위 등 평화적인 사회적 압력이 작동해 순조로운 퇴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한국에서 대통령 탄핵 과정이 단순히 미성숙하거나 불안정한 민주주의의 징후가 아니라, 오히려 법적 절차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정화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은 오랜 독재 시절을 경험하며 정치적 자유와 참여에 대한 강한 열망을 키워왔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열망이 1987년 이후 높은 투표율과 활발한 시민 참여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평화로운 집회,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참여, 그리고 경찰과 공권력이 시민들의 정치참여 과정에서의 질서유지를 지원하는 모습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한국 민주주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사 각 탄핵사례에 대해 의견 차이가 있었더라도 절차 자체의 부당함은 큰 문제로 제기되지 않았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은 국민 전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법적인 결과로 귀결되었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같은 과정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이미 성숙한 민주주의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Q. 여소야대 상황이었습니다. 대통령과 국회 간 견제가 이뤄지고, 대화와 협치가 이뤄져야 했습니다. 근래 우리 정치에선 대통령제에 기대하는 장점들 중 무엇 하나 실현되지 않고 않습니다.

최근 활발히 논의되는 4년 중임제 개헌은 크게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동시에 치러서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 될 때 여대야소 국회구성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입니다. 동시 선거(concurrent election)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선출되면, 당선되는 대통령 당의 국회의원들이 더 많은 득표를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제도는 대통령이 당선된 후 여소야대 정권 구성으로 인해 교착상태(gridlock)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고,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국민의 의지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 물론, 동시 선거와 비동시 선거 사이에는 각각 장단점이 존재하며, 어느 방식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국민들 사이에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둘째, 중임제 도입은 대통령이 4년 임기를 두 번 연속 수행하면서 약 8년 동안 장기적인 국가 발전 계획과 사회 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대통령은 초기 임기 동안 단기적인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나,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개혁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현직 대통령의 이점으로 인해, 한 번 대통령이 당선되면 자연스럽게 8년 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8년 장기 집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존재합니다.

또한, 4년 중임제와 관련해 동시 선거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사이에는 정치적 평가와 여론의 반응에 따라 다양한 쟁점들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 당선 후 중간 총선을 통해 국회 구성을 재정비하는 현행 방식은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있어 끊임없이 자신의 성과를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는 대통령이 국민에게 강력한 의지와 정책 추진력을 보여주기 위한 중요한 유인 장치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중간 평가에서 실패한 경우 레임덕 현상이 조기에 발생할 위험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영수회담에서 집무실에 도착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맞이하며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시소처럼 치르다 보니 우리는 현재 여소야대 정국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당선된 대통령이 거대 야당과 힘겨루기를 하고 국회와의 협치가 어려워지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합니다. 그러나 명심할 점은 당선된 대통령은 2-3년 내에 새로운 국회의원 선거를 맞이한다는 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총선에서 여대야소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실패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부정선거의 결과라고 보지만, 국민들은 2024년 총선 직전 대통령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했던 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파가격 논란"으로 비롯된 물가인상문제와 의료대란에 대한 협상 실패가 겹치면서 국민들은 집권당을 심판했습니다.

4년 중임제 개헌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동시에 선출하여 정부의 국정 운영에 필요한 강력한 정권 구성을 도모하고, 대통령에게 장기적인 개혁 추진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취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재임으로 8년 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두 번째 선거 후에 레임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등 여러 부작용도 함께 감안해야 합니다. 4년 중임제가 5년 단임제보다 명백히 우월한 대안인지는 한국정치의 구체적 현실을 토대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만약 국민 대다수가 여소야대 정국이 한국정치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면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4년 중임제 및 동시 선거 제도의 도입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종희 12
Q. 우리 국회를 향한 공격 시도 장면에선 데자뷔를 느꼈습니다. 최근 미국이나 브라질에서도 비슷하게 의회에 대한 난입, 폭동이 있었습니다.
계엄 선포 이후,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는 군인들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양극화와 부의 편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전후 케인즈주의 시대에는 정부가 부의 재분배에 적극 개입하며 사회적 평등을 추구했지만, 지난 30여년간 평등과 재분배는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정책이자 경제적으로 국가신뢰도를 떨어트리는 정책이 되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거주지역 황폐화를 경험하고 있는 경제적 약자들은 분배정책이나 평등 담론 대신 극단적 음모론과 혐오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음모론과 혐오가 정치인들에 의해 채택되면서 이제 음모와 혐오의 담론은 교육수준이나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확산되었습니다. 급기야 미국에서는 민주당 정치인들이 지하실에서 아이들을 납치한다는 근거 없는 주장이 퍼지고, 트럼프 취임식의 참석 인원 수가 오바마 취임식보다 적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등 과학과 사실을 거부하는 흐름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허무맹랑한 생각이나 언어 사용의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음모론과 혐오의 언어는 극한 정치적 대립 상황에서 폭력적이거나 극단적인 행동을 독려하고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이재명 대표와 배현진 의원의 피습 사건처럼, 정치적 극단주의와 혐오는 폭력 사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1월 6일 미국 의사당 난입 사건에서도 극단적 음모론과 혐오 정치가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선거에서 이기고 정치적 위기를 넘기기 위해 헌법을 부정하고 법원을 저격하고 선거결과를 부인하는 정치인이 바로 마른 볏짚더미 속에서 부싯돌을 부딪치는 사람들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실제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공격적인 언어는 유튜브나 포털 댓글 등 온라인 공간으로 쉽게 확산되어,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증오와 편견을 더욱 부추기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상대 당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규정하거나 극단적인 비하 표현을 일삼는 경우, 그에 동조하는 지지자들은 상대 정치세력을 협력 대상이 아니라 없어져야 할 대상, 모든 사회적 활동에서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대상으로 보게 됩니다. 이러한 정서적, 도덕적 양극화 현상은 단순히 정치적 이념의 대립을 넘어, 사회 전체의 공론장과 민주주의의 기초를 흔들어 놓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극단적 분열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언론은 객관적 보도와 균형 잡힌 논평을 통해 증오 정치와 극단적 선동을 견제하는 '소화기'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일부 언론은 특정 정치 세력의 극단적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전달하는 사례가 있어 매우 우려됩니다. 사회적 혼란이 당파적인 주장의 대립으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상황일수록 언론의 의제설정 기능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Q. 우리 정치에서 권위주의의 잔재들이 오래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보다 미래를 고민하는 쪽으로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응원봉 시위에 나선 청년들.
세대교체의 필요에 대해 깊이 공감합니다. 6공화국 헌법을 몸소 체득하며 자란 세대가 우리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즉, 6공화국 헌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규칙 아래에서 자유와 책임을 실천한 세대와, 그 헌법에 겨우 적응하거나 혹은 거부한 세대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번처럼 군부독재 시절의 긴급조치와 같은 비상계엄을 아직까지도 옹호하는 분들은 사실 6공화국에서 보장된 자유와 규범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앞으로는 6공화국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한 분들이 정치 주도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세대교체라는 표현이 조심히 사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세대교체는 생물학적 교체가 아니라, 정치 문화라는 측면에서의 세대교체입니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의 확산, 소셜 네트워크, 기후변화, 미중갈등과 같은 현대 사회의 복합적인 변화를 기민하게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인재들이 정치의 중심에 서야 합니다. 6공화국 헌법적 가치를 체화하고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와 국제적 감각을 갖춘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처럼 미국 사회가 직면한 인종, 이민, 불평등과 같은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만으로도 국민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줄 수 있는 리더가 나와야 합니다.

결국, 우리 정치의 변화를 위해서는 제도 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의 변화입니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전면화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비전과 국제적 감각, 그리고 6공화국 헌법의 원칙을 온전히 체득한 젊은 리더들이 다수 등장해야 합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순위에 다시 올라 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SDF2
박종희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우리 정치에서 필요한 리더의 자질 중 '국제정치적 감각'을 강조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현재 한국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지위에 이르게 되었는지, 특히 한국의 민주주의가 해외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 인식했더라면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국제정치적 감각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해외 여행을 해보았거나 학교를 다닌 경험, 해외에 있는 회사나 기구에 근무해 본 경험 모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글로벌 커넥션의 허브로서 한국의 위상을 알고, 우리 사회를 좀 더 중요한 글로벌 허브로 만들어 내기 위한 아이디어와 본능적인 직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류란 기자 (peacemaker@sbs.co.kr)

SDF 다이어리는 SBS 보도본부 미래팀에서 작성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우리 사회가 관심 가져야 할 화두를 앞서 들여다보고, 의미 있는 관점이나 시도를 전합니다. 한 발 앞서 새로운 지식과 트렌드를 접하고 싶으신 분들은 매주 수요일 발송되는 SDF 다이어리를 구독해 주세요. → 구독을 원하시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