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국으로 변한 주차장
전문가들도 깜짝 놀랄 만큼 눈이 쏟아졌습니다.
기상청이 지난달 26일 오후 5시 내놓은 단기예보를 보면 당시 기상청은 26일 밤부터 28일까지 서울에 '최대 10㎝ 이상' 적설을 예상했습니다.
실제 26일 밤에서 28일 사이 서울에 제일 눈이 많이 쌓였을 때 적설은 28일 오전 8시 28.6㎝(종로구 서울기상관측소 기준)였습니다.
이번 일을 기상청 '오보'로 치부하기만은 어렵습니다.
이번 폭설 전 서울의 11월 중 최고 적설은 1972년 11월 28일 12.4㎝였습니다.
'하루 동안 내려 쌓인 눈의 양'을 말하는 일신적설 기준으로는 최고치가 1966년 11월 20일의 9.5㎝였습니다.
최대 10㎝ 이상 눈이 쌓인다는 예보도 '이례적으로 많은 눈'이 온다는 의미였는데 이조차 뛰어넘는 말 그대로 '대설'이 내렸습니다.
28.6㎝ 적설은 11월뿐 아니라 겨울을 통틀어 서울에서 근대적인 기상관측을 시작한 1907년 10월 이후 3번째로 많은 눈이 쌓인 것이었습니다.
서울뿐 아니라 수도권 전체에 기록적인 대설이 내렸습니다.
경기 수원의 경우 28일 한때 43㎝의 눈이 쌓였는데 이는 1964년 1월 수원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일최심 적설 신기록입니다.
김병곤 강릉원주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가 2014년부터 올해까지 눈이 내린 사례 51건을 분석한 결과 시간당 강설량은 평균 1.1±0.9㎝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폭설 때는 최고 시간당 5㎝ 안팎씩 눈이 쏟아졌습니다.
대다수가 '생애 처음 겪는 일'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이례적인 기상현상이 발생한다고, 이를 꼭 '기후변화의 증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때론 여러 자연현상이 겹치며 '자연스럽게' 극한 기상현상이 나타나기도 해서입니다.
다만 이번 폭설에는 기후변화의 그림자가 아른거립니다.
이는 이번과 같은 폭설이 앞으로 빈번하게 반복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폭설의 원인으로 우선 꼽히는 것이 '뜨거운 서해'입니다.
현재 서해 해수면 온도는 12∼15도로, 예년보다 1∼3도 높습니다.
지난여름 한반도가 '이중 고기압'에 갇혔을 때 육지뿐 아니라 바다도 달궈졌는데 아직 식지 않은 것입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서해 해수면 온도는 22.6도로 최근 10년 평균(19.8도)을 2.8도 웃돌았고 최근 10년 내 1위에 해당했습니다.
특히 서해가 동해나 남해보다 예년 대비 뜨거웠습니다.
이번에 폭설이 내릴 때 뜨거운 서해 위로 영하 40도 찬 공기가 지났습니다.
해기차(해수와 대기의 온도 차)가 25도 안팎까지 벌어진 것인데, 2014∼2024년 51건 강설 사례에서 해기차가 평균 19.1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기차가 상당히 컸던 셈입니다.
해기차에 구름대가 발달할 경우 해기차가 클수록 구름대가 더 잘 발달합니다.
해기차에 의한 구름대는 찬 바람이 상대적으로 따뜻한 바다 위를 지날 때 바다에서 열과 수증기가 공급되면서 대기가 불안정해지며 발달하는 대류운입니다.
그런데 바다가 뜨거우면 열과 수증기 공급량이 늘어나며, 바다와 대기의 온도 차가 크면 대기의 불안정도가 높아집니다.
한반도 주변 바다는 세계 어느 바다보다 수온이 빠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기상청이 2022년 발간한 '해양기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981년부터 2020년까지 전 지구 바다 표층수온은 연간 평균 0.0120도, 동아시아 바다는 0.0205도 상승했지만, 한반도 연근해는 0.0221도씩 올랐습니다.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최근 기상청 강좌에서 "한반도 해역 수온이 지난 100년간 약 1.5도 올랐다"라면서 "한반도 주변 바다가 이렇게 빨리 뜨거워질 것이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해 과학자들도 좀 당혹스러워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상청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평가보고서에 사용된 기후변화 시나리오 중 '고탄소 시나리오'(SSP5-8.5)를 적용했을 때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가 근미래인 '2021∼2040년'에 현재(1995∼2014년)보다 1.0∼1.2도 오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특히 서해 해수면 온도 상승 폭이 1.6도로 동해·남해(1.5도)와 동중국해(1.1도)보다 클 것으로 봤습니다.
서해는 수심이 얕아 비열이 작기에 변화가 더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수도권에 눈이 집중된 이유로 한반도 북쪽 대기 상층에 '절리저기압'이 자리해 남쪽으로 찬 공기를 내려보낸 점이 꼽힙니다.
절리저기압에서 나온 찬 공기가 경기만 쪽에 기압골을 형성했고, 이 기압골이 서해상 눈구름대를 끌고 들어왔습니다.
절리저기압은 대류권 윗부분에 흐르는 빠른 바람인 제트기류가 굽이쳐 흐를 때 그 일부가 분리되면서 형성됩니다.
제트기류는 강할 때는 직진하고 약할 때 구불구불 흐릅니다.
그런데 앞으로 제트기류가 약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옵니다.
온난화가 제트기류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다양한 연구가 나오고 있는데, 약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북반구 제트기류는 지구가 둥글어 태양에 지표가 불균등하게 가열되면서 고위도와 중위도 간 온도 차가 나고 이것이 기압 차로 이어지면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고위도, 즉 북극의 온난화 속도가 더 빠른 터라 중위도와 온도 차가 줄면서 기압 차도 감소해 제트기류도 약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온난화는 그 자체로 강수량을 늘리는 요인입니다.
지구 평균기온이 1도 오르면 대기 중 수증기량은 7% 늘어납니다.
지구가 따뜻해질수록 눈과 비의 원료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