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출발은 지난 27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수년간 우리 군의 대비 태세와 훈련이 대단히 부족했음을 여실히 확인해준 사건"이라면서 "군용 무인기 도발에 대한 내년도 대응 전력 예산이 국회에서 50%나 삭감됐다"고 말했습니다. 국회 책임을 강조하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그러자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바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민주당 국방위원들은 "국회에서 예산이 삭감된 것도 여야가 합의하고 방위사업청도 동의한 것"이라면서 "오히려 국회는 북한 핵·미사일 대응을 위해 애초에 윤석열 정부가 전혀 챙기지 않은 국방 사업들을 추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정부가 국방 예산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오늘(31일)은 윤석열 대통령과 국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의 발언을 모두 검증해보려고 합니다. SBS 사실은팀이 확인했습니다.
지난 27일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먼저, 국회가 북한 무인기 관련 올해 예산을 절반이나 깎았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사실은팀은 지난주 통과한 2023년도 예산안 가운데 국방 예산을 모두 분석했습니다. 예산안에는 사업 이름만 적혀 있어서, 어떤 예산이 북한 무인기 관련 예산인지 아닌지 확인이 어렵습니다.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부연구위원
이에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부연구위원의 도움을 받아, 국회가 깎은 국방 예산 가운데 북한 무인기 방어와 관련된 예산인지 추렸습니다. 양욱 부연구위원은 무인기 정찰과 방어에 기여하는 사업으로 '중요 시설 경계 시스템'을, 북한의 무인기에 대응해 우리의 무인기 전력을 강화시키는 사업으로 '근거리 정찰드론'과 '해안정찰용 무인 항공기'를 꼽았습니다.
이 세 가지 사업이 국회에서 어떻게 조정됐는지 살펴봤습니다.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도 함께 적었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 사업 예산이 468억 원이 깎였습니다. 오히려 윤 대통령이 말한 50%보다 더 많은 66% 정도가 감액된 걸로 분석됐습니다.
이번에는 나아가 21대 국회 전체를 기준으로 살펴봤습니다. 2020년 5월 말 출범한 21대 국회는 2021년과 2022년, 2023년도, 이렇게 세 번 예산안 심사를 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지금 국회의 책임을 강조한 만큼, 21대 국회가 심사한 세 번의 예산 모두를 살펴보자는 취지입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양욱 부연구위원의 도움을 받아 북한 무인기 방어와 관련된 예산을 추려봤습니다. 추경 등이 반영되지 않은, 본 예산 심사 기준입니다.
본 예산 기준, 증액된 예산도 있지만 21대 국회는 북한 무인기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예산을 총 365억 원 깎은 것으로 계산됐습니다. 수치로 따지면 49% 정도 감액했습니다.
21대 국회에서 관련 예산이 절반 가까이 깎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팀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대체로 사실'로 판정합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취지가 국회의 '무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국방부는 대통령 발언 이전, 2023년도 예산이 통과된 직후인 24일에 다음과 같은 보도자료를 뿌렸습니다. 23일 작성됐다고 써있습니다.
즉, 북한 무인기 관련 예산으로 분류될 수 있는 근거리 정찰드론 사업을 비롯해 예산이 깎인 사업들은 진행 상황을 고려해 조정한 것일 뿐, 추진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내용입니다. 방위사업청에 물어보니 구체적인 설명을 할 수 없다고 전해왔습니다. 다만, 국회 국방위에 물어보니 "실질적으로 총사업비의 변화는 없다. 사업 진행이 일부 지연된 게 있어서, 다음 예산으로 넘겨간 것으로 보면 된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결국, 윤 대통령의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사실이지만, 그 구체적인 맥락은 결여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윤 대통령 주장에 대한 민주당 국방위원들의 주장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2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연 국회 국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오히려 국회는 북한 핵·미사일 대응을 위해 애초에 윤석열 정부가 전혀 챙기지 않은 신규 전력을 추가했다"면서 F-X 사업과 철매-II, 전술지대지유도무기, 장거리 함대공 유도탄 사업 예산을 그 사례로 들었습니다.
사실은팀이 내년도 예산안을 살펴보니, 위 사업들은 정부에서는 제출하지 않았지만, 국회가 새롭게 책정한 예산은 맞았습니다. F-X 2차 사업은 188억 원, 철매-II 성능개량 2차 사업은 278억 원, 전술지대지유도무기-II 사업은 127억 원이 새롭게 책정됐습니다.
마찬가지로 국방부가 예산안 통과 이후 낸 보도자료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도 쓰여 있습니다.
이에 사실은팀은 민주당 소속 국방위원들의 주장 역시 '대체로 사실'로 판정합니다.
다만, 이 부분도 꼼꼼히 따져보려고 합니다. 위 발언은 국회가 국방 예산을 잘 챙겨 왔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21대 국회는 세 번의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국방 예산에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요.
사실은팀은 총 세 번의 예산 가운데 국방예산, 이 가운데서도 '방위력 개선 분야'로 분류된 예산을 국회가 어떻게 조정했는지 살펴봤습니다. 마찬가지로 추경 등이 반영되지 않은, 본 예산 심사 기준입니다.
본 예산 심사 기준, 21대 국회는 그간 세 번의 예산 심사에서 방위력 개선 분야 예산을 8,231억 원 깎은 것으로 계산됐습니다.
이번에는 방위력 개선 분야 가운데서도, 북한 무인기 도발로 필요성이 커진 정찰 관련 사업 예산을 따로 추려 재분석했습니다. 예산 항목에 '지휘 정찰사업'으로 돼 있습니다.
3,544억 원이 감액됐습니다. 방위력 개선 분야에는 지휘 정찰사업 말고도 기동화력 사업, 유도무기 사업, 함정 사업, 항공기 사업, 방위사업정책지원, 행정지원 등으로 분류돼 있는데 유독 정찰 관련 예산 감소 폭이 컸습니다. 21대 국회는 방위력 개선 사업 가운데 절반 가까이를 지휘정찰사업에서 깎았습니다.
국회에 다시 물어보니, "그간 국방 예산 심의 과정에서 항공 통제기 사업을 비롯해 대폭 감액된 예산이 여럿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소요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 있어서 일시적으로 감액된 것일 뿐, 사업 예산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없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하지만, 한 국회 관계자가 익명을 전제로 설명하기로는, "최근 3년 동안 코로나 팬더믹으로 현금성 지원 예산이 대폭 늘어났고, 이를 국채로 다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규모가 큰 국방 사업이 자의 반 타의 반 미뤄진 측면이 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국방 예산 감소 폭이 가장 컸던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즉, 확장 재정 기조 속에서 국방 예산이 기회비용이 된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이번 무인기 도발과 예산 감액의 관련성을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다만, 정부와 국회가 예산을 통해 국민의 안보 불안을 불식시켜야 함은 당연합니다. 정부는 이번 무인기 도발을 계기로 앞으로 5년 동안 5천6백억 원 규모의 대응 전력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일 터지면 그때뿐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예산에 걸맞은 좋은 국방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벌써부터 "또 그 대책"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SBS 사실은팀은 오늘 국방 예산과 관련한 두 주장을 함께 검증했습니다. "국회가 북한 무인기 관련 올해 예산을 절반이나 깎았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 "오히려 국회가 윤석열 정부가 챙기지 않은 국방 예산 챙겼다"는 국회 국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의 주장입니다. 의미를 구체적으로 보면 상반된 주장인데, 두 주장 모두 '대체로 사실'로 판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국회가 북한 무인기 관련 예산을 왜 깎았는지, 국회가 그간 국방 예산을 어떻게 챙겨 왔는지는 꼼꼼히 따져보면 달리 생각할 부분이 많다는 게 사실은팀의 결론입니다. 그만큼 예산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턴 : 정수아, 강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