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포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충청남도 태안반도를 남북으로 길게 내달리는 603번 지방도로. 이 길의 북쪽 정점인 '만대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발달장애인 이기영(49) 씨의 집이 있습니다. 부모님,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사는 기영 씨는 평일 아침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합니다. 태안읍내의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센터에 가기 위해섭니다. 주간활동센터는 기영 씨와 같은 발달장애인들이 '주간활동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 '센터'에 가는 길이 너무 멉니다. 장애 정도가 비교적 심하지 않은 기영 씨는 노선 버스로 센터까지 이동하는데요, 30분에 한 대씩 있는 버스를 타고 꼬박 1시간을 가야 합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버스에서 내려서 센터까지 이동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1시간 30분이 넘습니다. 센터 근처의 정류장에 활동 지원가 선생님이 마중을 나오실 때도 있지만, 버스를 잡아 타고 이동하는 시간 내내 기영 씨는 혼자입니다. 태안 읍내로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출퇴근 시간, 등교 시간을 피해 오전 9시쯤 버스를 타기는 하지만 읍내로 가는 버스는 대개 승객들로 가득 차서, 기영 씨는 자주 긴장하곤 합니다.
지난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강선우 의원실이 전국에서 주간활동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5천8백여 명의 이동시간을 조사했습니다. 이동시간은 편도 기준으로 집에서 센터까지 이동하는데 걸린 시간입니다. 전체 평균은 19.5분이었고, 기영 씨가 사는 충남 태안군은 24분 반, 상준 씨가 사는 세종시는 27분으로 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서울에서도 지하철 서너 정거장 거리를 이동하는 시간이라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보시다시피 실제 발달장애인들의 이동시간은 평균보다 2배, 많게는 3배 넘게 나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마저도 센터의 차량 1대가 장애인 여러 명의 집을 돌며 한 번에 모두 태우고 오는 '송영'은 포함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송영까지 포함하면 실제 현장에서 걸리는 시간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이 나오겠죠.
이게 왜 문제가 될까요? 우선 센터까지 혼자 이동하는 기영 씨의 경우 도움의 손길 없이 홀로 이동하는 시간 자체가 지나치게 길어 예기치 못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모님의 보호와 지원을 받는 집과, 주간활동 전담인력의 돌봄을 받는 센터 사이의 '돌봄 공백 시간'이 길다는 겁니다. 다행히 기영 씨는 장애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고, 주간활동서비스를 이용해 온 지난 2년 동안 홀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주변 사람들도 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만, 돌발적인 사고의 위험에 비장애인보다 크게 노출돼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상준 씨의 경우는 활동지원가가 직접 차량으로 이동시키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기영 씨에 비해 안전상의 위험은 상대적으로 덜합니다. 그러나 좀 더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장애 등급을 받은 모든 장애인에게는 '활동보조시간'이라는 게 주어집니다. 활동보조시간은 식사를 하거나, 목욕을 하거나,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외출준비를 하거나 하는데 필요한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으로 15개 장애 등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바우처 형식으로 지급돼 주중, 주말 구분 없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준 씨의 경우 이동에도 활동보조인력이 동행하므로 주간활동서비스를 받기 위해 차에 앉아서 가는 시간의 상당 부분이 이 활동보조시간 바우처의 차감 대상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평일 저녁이나 주말처럼 주간활동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시간에 쓸 활동보조시간이 줄어들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이동만으로 차감되는 활동보조시간이 아까워서 주간활동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도 받지 못하는 발달장애인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장애인이 이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되면, 그만큼 보호자의 돌봄 부담도 커지게 되겠죠.
주간활동서비스를 이용하는 발달장애인의 '이동시간'에서 장애인 활동보조시간을 차감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정부가 주간활동서비스 이용시간(이동시간 포함)을 활동보조시간에서 차감하는 이유는, 차감하지 않을 경우 발달장애인이 아닌 다른 장애인과 형평성 논란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서비스인 주간활동서비스를 받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도 활동지원가를 불러서 쓰는 활동보조시간에 (일부)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인과 보호자들은 중복 차감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입니다만, 형평성 논란을 피하고자 하는 정부의 입장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평균의 숫자 뒤에 숨은 발달장애인의 실제 이동시간을 줄여주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중복 차감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면 이동 시간만이라도 줄여서 차감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게 맞기 때문입니다. 이동시간을 줄이려면 주간활동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센터가 좀 더 촘촘하게 있어야 합니다. 특히 지리적 특성상 이동거리가 길 수밖에 없는 농어촌 지역의 경우 센터간 간격 정비가 시급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도시와 농어촌 구분 없이 동일한 주간활동서비스 '수가'를 차등 조정해야 합니다. 농어촌 지역에도 도시만큼 센터가 적당한 간격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려면 전담인력을 '모셔 올' 수 있는 일종의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수가를 조정하고 나서도 센터가 추가로 들어가지 못하는, 즉 민간 기관이 센터를 설립할 수 없는 곳은 공공자원 투입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목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