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영논리를 넘어서…메신저 대신 메시지
낯선 '공명'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한 진영논리적 해석을 일단 배제해야 합니다. 경찰 편을 들면 진보이고 검찰 편을 들면 보수라거나, 정부가 추진하는 방안을 옹호하면 진보이고 반대하면 수구라는 도식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진보 법률가와 검찰총장이 비슷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리자면, 메신저가 아니라 메시지를 바라보아야 진짜 문제가 무엇이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금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크게 2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현재의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은 경찰에게 수사에 대한 1차적 종결권을 보장하고 있다.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권이 명문상 보장돼 있지만 경찰이 거부할 경우 강제할 방법이 없다.
2. 경찰의 수사에 대한 재량권한을 지금보다 폭넓게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보경찰과 수사경찰, 사법경찰과 행정경찰,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을 분할하는 것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정보경찰 등에 대한 두 번째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첫 번째 문제제기에 집중하겠습니다.
● 경찰의 '사건 종결권'이 논란이 된 까닭
검찰의 기본 역할은 기소(=피의자를 재판에 넘기는 것)이고, (사법)경찰의 본질적 임무는 수사(=기소를 위해 증거를 수집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수사 구조에서는 경찰이 수사를 끝내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사건을 모두 검사에게 넘겨야 합니다. 경찰이 수사를 해보니 혐의가 있다고 드러나면 당연히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수사를 해봤는데 혐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도 '불기소 의견'으로 검사에게 사건을 넘깁니다. (※ 이렇게 사건을 검사에게 넘겨 최종 결정을 맡기는 과정을 '송치'라고 부릅니다.)
검사는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으면 기소할지 불기소할지 결정하기에 앞서 '리뷰 작업'을 합니다. 경찰 수사 결과 '기소 의견'으로 넘어온 것 중에서 혹시 재판에 회부할 만한 사안이 아닌데 수사나 법리 적용이 잘못돼 기소 의견으로 넘어온 것은 없는지, 반대로 재판에 넘겨야만 할 사안인데도 경찰이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것은 없는지 다시 살펴봅니다. 필요한 경우 경찰에 다시 수사를 하라고 사건을 보내기도 하고, 직접 사건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하기도 합니다. 리뷰 결과 재판에서 유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면 경찰의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에 대해서도 기소(=재판에 회부)하기도 하고, 증거가 부족하거나 법리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불기소(=재판에 넘기지 않고 사건 종결)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는 검사는 재벌이나 고위 공직자를 직접수사하는 폼나는 '칼잡이'들이지만, 실생활에서는 지루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같은 '리뷰 작업'이 검찰 조직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형사부 검사들의 일상 업무입니다.
그런데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의 핵심 내용은 이 같은 수사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경찰이 수사 결과 기소 의견으로 판단한 사건을 검사에게 송치해, 검사가 기소 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것은 지금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경찰이 혐의가 없다고 1차 판단한 사건에 대한 결정 구조가 바뀝니다. 지금은 경찰이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도 수사를 마친 뒤 무조건 검사에게 사건을 넘겨서 재판에 넘기는 것이 맞는지, 무혐의 처분을 하는 것이 맞는지 다시 한번 최종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법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경찰은 '불기소 의견'으로 판단한 사건을 검사에게 넘기지 않고 자체적으로 종결 처분할 수 있습니다. 사건에 대한 '1차적 종결권', 검찰 주장대로라면 '사실상의 불기소권'이 경찰에게 주어지는 법안이기 때문입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라고 문제제기한 것도 이 대목입니다. 지금은 죗값을 치러야 하는 사람이 '불기소 의견'으로 판단돼 재판에 회부되지 않는 경우가 없도록 경찰이 수사를 마친 뒤 검사가 리뷰 작업을 한 뒤 최종 결론을 내리는데,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경찰이 혐의없음으로 판단한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 단계에서 결론이 내려지기 때문에 법률 전문가인 검사의 리뷰를 거친 결론 도출 과정이 생략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주장을 하면서 문 총장은 "과거 검찰의 업무 수행에 시대적인 지적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저 또한 업무수행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려운 지경에 몰려서 하는 말인지, 진심을 담은 말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검찰총장이 공식적으로 '국민이 검찰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주장을 들어달라.'라고 밝힌 것입니다. 메신저인 검찰이 미덥지 않아도 수사권 조정에 대한 메시지는 살펴봐달라고 총장이 직접 호소한 셈입니다.
실제로 '검찰'이라는 메신저는 믿지 못하지만, 검찰총장이 발표한 메시지에 공감하는 입장을 밝힌 사람들이 있습니다. 검찰에 대해 비판적 성향을 보여온 진보적 법률가 중 일부가 문 총장의 문제제기와 비슷한 지적을 하고 나온 것입니다. 진보적 성향 법률가들이 평소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국가기관의 권한 행사를 통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온 점에 비춰보면, 사실 이들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이상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검찰이라는 메신저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유지하더라도, 검찰총장이 발표한 메시지의 취지에는 동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홍성수 교수 "검찰에 의한 경찰 수사 통제 시스템 유지돼야"
대표적 인물이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입니다. 혐오 표현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진보적 입장을 밝혀온 홍 교수는 5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해 우려하는 글을 올립니다. 홍 교수는 "사실 수사권 조정에서 정말 큰 변화는 (고위공직자 범죄나 부패·경제·금융 범죄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아닌) 일반 형사사건 분야에서 발생합니다. 사건 건수도 압도적으로 많고, 시민의 삶과 직접 연관된 영역입니다. 실제로는 경찰이 대부분 수사하지만, 검찰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해왔고, 법적으로도 수사의 주체는 검찰이었던 영역입니다. 이 체제를 허물고, 경찰이 1차 수사권을 갖게 되고, 검찰은 기소 단계에서 사건을 넘겨받는다는 것이 수사권 조정안의 핵심입니다."라고 지적합니다.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홍 교수와 검찰총장의 진단이 일치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홍 교수는 "일반 형사사건과 관련하여, 검찰이 특별히 잘못한 게 있었나요? 특별히 이 체제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 있었나요? 과연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한 영역인가요? 제 기억으로는 그런 문제제기는 거의 없었는데 이 영역에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 개혁을 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경찰이 강력히 요구했던 사안이긴 하죠)."라며 애초에 이 영역에서 대대적인 개혁을 도입하려는 이유 자체에 의문을 표합니다.
그러면서 "일반 형사사건에서는 경찰이 수사하고 검찰이 수사 지휘를 하는 시스템의 장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물론 경찰의 법적 지위가 수사의 보조자에 불과하다는 것인 문제고, 수사'지휘'라는 위계적인 검-경 관계를 수평적인 협력관계로 바꾸는 것은 필요합니다만,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통제를 사실상 놓아버리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이 통제는 검찰이 더 유능하고 상급기관이어서가 아니라, 검찰이 '법전문기관'으로서 수행하는 사법적 통제입니다. 이를 통해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경찰의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는 거고요."라며 수사 지휘라는 지금의 용어와 개념이 바뀔 필요는 있지만, 검찰에 의한 경찰 수사에 대한 사법 통제 시스템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양홍석 변호사 "확대된 권한에 따른 통제 장치가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
경찰청이 구성한 경찰개혁위원회에서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양홍석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장)도 홍 교수와 상당 부분 의견을 같이합니다. 양 변호사는 5월 3일 SBS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경찰에 1차 접수 사건(에 대한 종결권을) 주는 것 자체는 충분히 정책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제합니다. 하지만 양 변호사는 "지금보다 더 많은 권한을 경찰에 주는 것이라고 하면 최소한 지금 내지는 지금보다 좀 더 촘촘하거나 체계적인 통제시스템이 만들어져야죠. 현재 지금 정부 여당안으로 나왔던 패스트트랙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보면 경찰에 자율권은 더 주는데 통제는 상당 부분 제거하는 방향으로 설계가 되어있거든요. 경찰이 잘해주면 상관이 없는데 경찰이 만약 문제가 있게 수사를 하게 되면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경찰에 권한을 부여하는 것 자체는 좋을 수 있는데, 권한이 부여되면 그만큼의 통제장치가 뒤따라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하다는 것이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지정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경찰에 1차적 사건 종결권을 주는 정책 방향에 동의할 수 있더라도, 검사에 의한 사법 통제라는 지금의 통제 장치를 대신할 만한 경찰 수사에 대한 통제 장치가 필요한데, 지금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법안에는 적절한 통제 장치가 규정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경찰은 5월 3일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수사권 조정 법안이 오히려 "검사의 경찰 수사에 대한 중립적으로 객관적인 통제방안을 강화했다."라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수사가 진행 중일 때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영장 청구권 등을 가지고 검찰이 경찰 수사를 통제할 수 있고, 경찰의 수사 종결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불송치사건기록 검사 송부"나 "재수사 요청권"을 통해 경찰의 잘못된 수사를 통제할 수 있다고 경찰청은 밝혔습니다. 경찰청이 주장하는 내용들은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지정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아래와 같이 규정돼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 (채이배 의원 대표발의 / 의안번호 20030 / 발의 날짜: 2019. 4. 26.)
제245조의5(사법경찰관의 사건송치 등) 사법경찰관은 범죄를 수사한 때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른다.
1.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지체 없이 검사에게 사건을 송치하고,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송부하여야 한다.
2. 그 밖의 경우에는 그 이유를 명시한 서면과 함께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지체 없이 검사에게 송부하여야 한다. 이 경우 검사는 송부받은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사법경찰관에게 반환하여야 한다.
제245조의7(고소인 등의 이의신청)
① 제245조의6의 통지를 받은 사람은 해당 사법 경찰관의 소속 관서의 장에게 이의를 신청할 수 있다.
② 사법경찰관은 제1항의 신청이 있는 때에는 지체 없이 검사에게 사건을 송치하고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송부하여야 하며, 처리결과와 그 이유를 제1항의 신청인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제245조의8(재수사요청 등)
① 검사는 제245조의5제2호의 경우에 사법경찰관이 사건을 송치하지 아니한 것이 위법 또는 부당한 때에는 그 이유를 문서로 명시하여 사법경찰관에게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② 사법경찰관은 제1항의 요청이 있는 때에는 재수사하여 제245조의5 각 호에 따라 처리하여야 한다.
경찰이 말하는 "불송치사건기록 검사 송부"라는 조항은 245조의5의 2호입니다.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경찰이 판단한 경우에는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지체 없이 검사에게 송부"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조항입니다. 그런데, 뒷 문장을 보면 "검사는 송부받은 날부터 60일 이내에 사법경찰관에게 반환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송치"와 "송부"라는 말이 구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송치"는 사건의 최종 결정권을 검찰에 넘긴다는 뜻이지만, "송부"는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다른 기관에 보낸다는 뜻입니다. 즉, 경찰이 '혐의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한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에 최종 결정 권한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수사에 위법성 등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만 검사가 60일 동안 검토해볼 수 있도록 기록을 '대출'해준다는 뜻입니다.
또, 기록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기간인 60일 이내에 수사 과정에서 위법성 또는 부당성을 발견했을 경우에만 검사는 사법경찰관에게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법률전문가인 검사가 경찰의 증거 판단이나 수사 결론이 법리적으로 잘못됐다고 판단하더라도, 경찰 수사 기록에서 위법하거나 명백히 부당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재수사를 요청할 수 없습니다. 설사 실제로는 수사 과정에서 위법하거나 부당한 요소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경찰이 혐의 없음 결정을 하면서 해당 내용을 수사기록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60일이라는 제한 시간 내에 경찰이 보내준 기록과 증거물만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검사가 이를 발견할 가능성은 매우 작습니다. 검사가 위법성이나 부당성을 발견했다며 재수사를 요청해도, 경찰이 이를 따르지 않는다면, 어떤 절차를 밟아서 검찰과 경찰 사이 의견 차이를 해소할지에 대해서도 법안에는 규정돼 있지 않습니다.
245조의 7에 규정된 "고소인 등의 이의신청" 제도 역시 경찰 수사에 대한 사법 통제 방안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앞서 말했듯이 "송치"와 "송부"는 다릅니다.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법안은 사건에 대한 1차적 종결권한은 경찰에 있지만, 고소인·고발인·피해자 같은 사건 관계자들이 이의를 신청할 경우에 한해 검찰에 "사건을 송치"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사건 관련인들이 이의를 신청하면 경찰이 '무혐의 결론'을 내린 사건에 대해서도 비로소 지금과 마찬가지로 검찰로 사건이 넘어가 한 번 더 판단을 받아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정승환 교수 등은 이 규정으로는 경찰이 '무혐의 판단'으로 종결하려는 사건에 대해 충분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아예 고소인이나 고발인, 또는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사건들도 여럿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뇌물 사건이나 마약 사건입니다. 뇌물 사건에는 뇌물을 제공한 범죄 피의자(뇌물 공여 피의자)와 뇌물을 받은 범죄 피의자(뇌물 수수 피의자)가 존재할 뿐, 범죄의 성격상 고소인이나 고발인이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피해자 역시 굳이 꼽자면 국민 전체와 국가일 뿐이라서 구체적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경찰이 증거가 있는데도 '혐의없음' 판단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하더라도 이의를 신청할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뜻입니다. 마약 사건도 마찬가지 구조입니다. 검찰이 기소 직전 단계에서 수사 과정 전체를 리뷰하고 지휘할 수 있는 구조(=검사의 수사 지휘 구조)에서도 황하나 씨의 마약 혐의 등에 대해 경찰이 시간을 끌다가 '혐의없음' 의견으로 종결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는데, 만약 사건 관계자의 이의 신청 없이는 경찰이 자체적으로 사건을 종결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된다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 형사소송법을 전공한 학자들 다수의 견해입니다.
홍성수 교수가 "경찰이 수사하고 검찰이 수사 지휘를 하는 시스템의 장점이 분명히 있다."라고 말한 것이나, 양홍석 변호사가 "(경찰에 권한이 부여되면) 그만큼의 통제장치가 뒤따라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 것은 모두 법안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찰 수사 통제장치'가 미흡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또 한 명의 '진보 법률가'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경찰의 '1차 수사종결권'에 대한 검사의 사후적 통제방안은 마련되어 있지만, 이 우려는 깔끔히 해소되어야 한다. 문무일 검찰총장의 우려 역시 경청되어야 한다."라는 5월 6일 페이스북에 입장을 밝힌 것도 진보 성향 법률가들의 이 같은 우려 표명까지 근거 없는 의혹이라고 일축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적어도 '경찰이 무혐의 판단한 사건에 대한 종결권을 경찰이 가지는 문제'에 대한 사법적 통제 방법이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이고, 조국 수석까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천명한 만큼,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보완 방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보완책이 마련되는 것과 별개로, 일반 형사사건에 대해 경찰에 1차적 사건 종결권을 주는 것이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의 핵심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홍성수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그동안 검찰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이 주장했던 것은 국민 대다수가 경험하는 일반 형사사건을 검찰이 잘못 처리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고위공직자나 대형 경제범죄 피의자에 대한 이른바 '특수사건'에 대한 검찰의 직접수사와 기소가 문제가 됐습니다. '살아있는 권력' 에는 연약하고 '죽은 권력' 에는 엄정한 검찰 수사나, 경제 권력을 가진 재벌 앞에서는 이상한 방향으로 휘어지는 검찰의 기준을 두고 많은 법률가들이 문제를 제기해왔습니다. 검찰과 관련해 그간 언론에서 논란이 된 사건의 90% 이상은 특수사건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수사권 조정 법안은 정작 특수수사에 대한 검찰 권한에 대해서는 범위를 의미 있게 축소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백혜련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검찰청법 개정안은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해서 아무런 제한 없이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지금의 제도보다는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제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 규정을 보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등 중요범죄, 경찰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하여 범한 범죄, 그리고 위의 범죄와 사법경찰관이 송치한 범죄와 관련하여 인지한 범죄"로 정의하고 있어서, 사실상 특수수사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범죄에 대해서는 검사가 직접수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양홍석 변호사 말대로 "실제 검찰개혁이 필요하다고 하는 분야가 있었는데 그 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손도 안 대고 수사권 조정만 했다."라고 평가하거나,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표현처럼 "(검찰에서) 원래 뺐어야 될 힘은 안 빼고, 엉뚱한 데서 힘을 빼서 경찰에 가져다주는 것입니다."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수많은 의사들이 병든 곳은 팔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는데, 정작 수술을 맡은 의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다리를 절개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검찰개혁을 대표적 공약으로 제시한 정부에서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정확하게 분석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일반 형사사건에 대한 검찰의 사법 통제를 약화하는 것이 경찰 조직의 숙원 사업이었고,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수사까지 담당하는 모델을 유지하는 것은 검찰 조직뿐 아니라 검찰의 막강한 특수수사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집권 세력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수사권 조정과 관련된 각각의 세력들의 요구 사항을 반영해 권한을 나눠 갖는 방식으로 법안이 추진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무엇이 국민에게 필요한 것이고 무엇이 국민에게 불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기준이 됐다기보다, 검찰로부터 무엇인가를 뺏고 경찰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 물론 기소권을 가진 검사가 수사까지 담당하는 모델, 즉, 수사와 기소가 결합된 모델이 어려운 범죄 혐의를 수사할 때 훨씬 효율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한 적폐청산 사업 역시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수사까지 담당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저 또한 과거 대검 중수부가 존재했을 때 수사권과 기소권을 최고도로 결합시킨 중수부의 강력한 권한이 정치 권력이나 경제 권력을 견제하는 데에 효과적이고, 중수부를 폐지하면 이들을 견제하는 힘이 약화될 것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저의 생각과 달리) 수사권과 기소권의 결합이 위험한 것은 효율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효율적이어서 잘못 사용될 경우 무고한 피해자가 너무나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마치 공중에서 폭발해 수만 발의 작은 폭탄을 지상에 투하하는 집속탄이 인명 살상에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대량의 민간인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어 여러 나라가 집속탄 금지 국제협약을 체결하듯이, 기소권과 결합된 수사권 역시 오용될 경우 국민의 기본권에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 메신저보다 메시지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
문무일 검찰총장이 스스로 인정했듯이 검찰의 목소리를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검찰이 조직 보호를 위해 이기적 주장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 사실에 대해 검찰이 억울해만 할 처지는 못 됩니다. 하지만 메신저인 검찰이 미덥지 못하더라도, 수사권 조정 법안에 문제가 있다는 메시지 자체를 무조건 폄하해서도 안 됩니다. 신뢰할 수 없는 메신저가 하는 말이라고, 경청해야 할 대목을 부인하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 전체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검찰의 편이 아니었던 진보 성향 법률가들이 검찰총장의 메시지에 공감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메신저에 대한 비판보다는 메시지의 내용에 대한 검토가 중점적으로 이뤄져서, 수사권 조정 법안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 장치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조국 수석의 말처럼 "깔끔하게 해결"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