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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인기검색어 '기소'와 언론의 책임

뜻밖의 '기소' 검색어 1위 사태에 대한 단상

[취재파일] 인기검색어 '기소'와 언론의 책임
서울 기온이 영하권을 맴돌던 지난주 화요일(11일),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 순위에 뜻밖의 키워드가 등장했다. 인기 검색어 1위와 2위를 나란히 석권한 두 키워드는 '기소'와 '기소 뜻'. 이 두 키워드가 유명 프로야구 치어리더와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던 삼성바이오로직스, TV에 재방영된 인기영화 제목을 당당히 제치고 급상승 검색어 순위 맨 위에 한동안 이름을 올렸다.
[취재파일] 인기검색어 '기소'와 언론의 책임/검색어 순위

알고 보니 이날은 검찰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한 날이었다. 단연 화제의 인물이던 이재명 지사를 검찰이 선거법 위반 및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기소하면서 '기소'라는 단어도 덩달아 세간의 이목을 끈 것이다. 혜경궁 김씨 트위터 소유주 의혹으로 함께 수사를 받던 이 지사의 부인, 김혜경 씨에 대해선 검찰이 불기소하면서 대부분의 언론 매체가 "검찰, 이재명 지사 기소, 부인 김혜경 씨는 불기소" 식으로 제목을 단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 '기소'라는 단어가 뜻밖의 인기검색어에 오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소(起訴)는 법률용어다. 법률용어사전에 나와 있는 가장 간단한 정의는 '검사가 일정한 형사사건에 대하여 법원의 심판을 구하는 행위'다. 쉽게 말하면 수사는 검사가 하지만, 최종 판단은 법원이 하게 되어 있으니까 수사를 마친 뒤 "재판을 해달라"고 사건을 법원에 보내는 것이다. 더 쉬운 표현으로는 '재판에 넘긴다'가 있다.
[취재파일] 인기검색어 '기소'와 언론의 책임/기소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 글을 쓰는 기자도 기자가 되기 전까지는 '기소'가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그냥 대충 죄가 된다는 얘기이겠거니, 어림짐작만 했을 뿐이다. 기자가 되고 난 뒤에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기보다 직접 기사를 쓰면서 찾아보고 '아, 이런 뜻이구나' 하고 알게 됐다. 학교에서 안 가르쳐줬다고 항변하고 싶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다. 다만 일반인들이 잘 쓰지 않는 말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취재파일] 인기검색어 '기소'와 언론의 책임/이재명
사실 이 '기소'라는 표현 자체가 조금 애매하긴 하다. 초년 기자 시절 가급적 우리말로 쓰라고 배웠지만 풀어쓰기 가장 애매한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기소'다. '재판에 넘긴다'는 쉬운 표현이 있고 가급적 그렇게 쓰려고 하지만 그게 힘든 경우가 가끔 있다. 예를 들면 경찰이 '~~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는 기사를 쓸 경우다. '경찰이 ~~를 재판에 넘기자는 의견으로 검찰에 보냈다'고 써야 하나, '재판에 넘기면 좋겠다는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써야 하나. 아무튼 복잡하다. 제목을 뽑아야 할 땐 특히나 더 그렇다. 제목은 짧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보통 잠깐 고민하다가 "에이 하던대로 하자"고 그냥 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사실 이런 경우, 예전에도 왕왕 있었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몇 년 전 한 아이돌 가수가 악플러를 선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선처'가 인기 검색어에 오르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이 정도는 해프닝이다. 언론이 주로 행정기관이나 사법기관에서 쓰는 어려운 용어를 순화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다 쓸 때, '뜻밖의 검색어' 사태가 종종 벌어진다. 과학 기사 같은 전문 분야는 말할 것도 없다. 앞서 설명한 '기소 의견'처럼 애매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기자 혹은 언론매체의 무신경, 고민 부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더구나 속보 경쟁이 일상화된 요즘 현실에 표현 하나하나 고심하고 다듬을 여유를 가진 기자와 언론사는 많지 않다. 사실 편하기야 하던 대로 하는 게 가장 편하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용어를 접하는 시청자, 독자의 입장에선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기사에 나오는 용어를 따로 찾아보고 해석해야하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그냥 검색창에 쳐보면 된다지만 예전에는 그렇지도 않았다. '술술 읽히고 쉽게 이해되는 기사가 좋은 기사'라는 기준에 따르면 낯선 용어와 어려운 기사는 불편하고 불친절한 기사일 수밖에 없다.

언론의 이런 무심(無心)한 용어 선택이 결국 대중으로 하여금 언론 매체를 멀리 하도록 만든다는 연구도 있다. 예전에 비해 매체의 종류는 물론, 정보 습득의 통로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을 연구하는 이종혁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신문이 거의 유일한 미디어였고 이용 계층도 대부분 식자층이라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봤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아예 매체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불친절한 기성 매체 대신 정보를 재가공해서 전달하는 유튜브나 블로그를 차라리 더 선호한다는 얘기다.

사실 가급적 쉬운 단어와 우리말 표현을 쓰는 건 언론의 책무에 가깝다.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언론은 일반 대중이 사회를 보는 창(窓)이기도 하다. 미디어가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은 곧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도구가 된다. 도구가 시원찮으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언론 스스로도 책임과 의무를 게을리 하는 셈이다.

평생을 우리말 살리기 운동에 바친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1925~2003)은 그의 저작을 통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필사적으로", 쉬운 우리말 표현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쓰는 말과 글이 민중의 의식은 물론 사회 구조를 지배하고, 나아가 겨레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이유에서다. '말과 글이 일반 민중에서 떠나 민중을 등지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도 비민주적으로 되기 쉽다'면서 특히 말하고 글 쓰는 사람들의 책임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오덕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이 뜻밖의 인기검색어를 보고도 한 소리 하시지 않았을까.

인기검색어 하나 가지고 무슨 호들갑이냐 하실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우리 언론 스스로도, 이미 굳어버려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이런 표현, 용어들 함께 바꿔나갔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말이라는 게 또 누군가 더 괜찮은 표현, 참신한 표현 들고 나오면 대체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몇 년 전만 해도 대세였던 '네티즌'이란 단어는 이미 '누리꾼'으로 대체된 지 오래다. 신조어도 이럴진대 다른 말이라고 못할 건 없다. 친절과 불친절, 그 경계를 넘어서 언론의 책임과 역할, 그리고 언론의 위기와도 연결된 일이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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