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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V] '기이한 마을'에서 일어난 이상한 실종…서천 기동슈퍼 미스터리

※ SBS 뉴스의 새 스토리텔링 영상 컨텐츠 '보이스V'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와 특별한 콜라보레이션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첫 순서는 많은 시간이 흐르고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지난 사건들을 되짚어보는 '그것이 알고싶다 X 보이스V - 미제 사건(Cold Case)' 시리즈입니다.

■ 어느 겨울날 기동슈퍼에서 솟구친 불길…"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기이할 기(奇)에 마을 동(洞).

한자대로라면 '기이한 마을'이라는 뜻의 한적한 시골 마을. 그곳에는 지금은 불에 타 사라진 작은 슈퍼가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화마에 폐허로 변한 슈퍼. 가게 주인 할머니를 찾으려고 잿더미를 뒤지던 사람들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할머니. 조용했던 시골 마을을공포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날, 기동슈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할머니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해도 뜨지 않은 겨울철 새벽녘. 기동슈퍼에서 불길이 치솟은 건 지난 2008년 1월 24일 새벽 6시쯤이었습니다.

불은 순식간에 건물을 집어삼켰고 놀라 달려나온 주민들은 시뻘건 화염을 보고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출입문이 안쪽에서 잠겨 있었기 때문에 건물 안에서 잠을 자던 할머니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듯했습니다.

소방차 12대가 출동한 뒤에야 잡힌 불길.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될 줄 알았던 당시 77살 김순남 할머니는 마치 증발한 듯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발견된 단 하나의 증거. 타다만 안방 장판에 할머니의 핏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실종되기 전 할머니가 목격된 날짜는 불이 나기 이틀 전. 마을 사람들은 그날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웃 주민에게 콩나물을 사달라며 천 원을 건넸고 택배를 맡아달라는 옆집의 부탁을 평소처럼 들어주기도 했습니다. 소주를 사러 온 동네 아주머니가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시각은 오후 6시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놀라운 진술. 낮에 택배를 맡겼던 옆집 부부가 저녁 7시 반쯤 슈퍼에 들렀는데 가게가 평소보다 일찍 문이 닫혀 있었다는 겁니다. 한참 동안 슈퍼에 전화를 걸고 문까지 두드린 부부. 하지만 할머니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 안에 있었던 것처럼 갑자기 슈퍼 안쪽 불이 꺼졌다는 겁니다.

[김 씨 / 당시 마을 주민 : "한 10분 정도 됐죠. 불을 탁 끄는 거예요. 아 지금도 소름 끼쳐요. 나 이런 얘기는 안 하고 싶어요. 진짜."]

그날 이후 슈퍼 문은 굳게 닫혔고 할머니를 본 사람도 없었습니다.

■ "누가 안에 있던 것처럼 갑자기…!" 소름 끼치는 그날의 증언

할머니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되고 이틀이 지난 1월 24일 불이 난 걸 처음 본 사람은 매일 슈퍼를 지나던 운송기사였습니다. 운송기사 박 씨는 근처에 차를 세우고 소방서에 화재 신고를 했습니다.

불을 지른 사람이 현장에 있었다면 박 씨가 목격했을 수도 있지만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슈퍼가 동네와 거리가 떨어져 있고 주변에 CCTV도 없어 마땅한 단서도 없었습니다.

취재진은 전문가를 통해 현장을 꼼꼼히 분석해봤습니다.

[제진주 / 서울시립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 "탄 걸로 봤을 때 오른쪽보다 왼쪽이 더 심하게 탔죠? (그러므로 발화부는) 왼쪽입니다. 앵글이 휜 걸 보면 앞쪽보다는 뒤쪽이 더 많이 휘었죠. 그렇다면 방 안의 뒤쪽에서 났을 것으로 보입니다."]

불길이 번진 방향으로 보면 불은 김 할머니가 머물던 안방에서 시작됐습니다. 안방은 할머니의 혈흔이 발견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범인이 안방에서 범행을 저지른 후 할머니의 시신을 옮기고 되돌아와 불을 질렀을 가능성이 큰 상황.

현장에선 눈길이 가는 흔적들이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슈퍼 앞쪽 문은 셔터가 내려진 채 자물쇠로 잠겨 있었습니다. 범인이 빠져나갈 곳은 뒷문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불이 났을 때 뒷문도 잠겨 있었다는 겁니다. 범인이 불을 지른 뒤 직접 문을 잠그고 떠났다는 건데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입니다.

불이 난 시점은 신고 시점으로부터 불과 30여 분 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면 한시라도 빨리 현장을 벗어나야 하는데 범인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불을 지르고 안방에서 나와 문까지 걸어 잠근 겁니다. 범인은 어쩌면 슈퍼 내부 구조에 매우 익숙한 인물은 아니었을까.

이상한 점은 또 있습니다. 불이 난 시점은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목격되고 무려 서른다섯 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즉, 범행이 이틀에 걸쳐 일어났다는 겁니다.

[박지선 /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 : "정말 낯선 사람이 돈을 목적으로 슈퍼에서 현금을 강탈하려는 목적으로 들어왔다면 돈을 뺏고 피해자를 죽이고 빨리 현장에서 도망가는 게 맞죠. 그런데 실종된 시점은 화요일 밤인데 목요일까지 이거를 끌었다고 한다는 점은 다른 이유가 있고 이 사람한테는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만 하는 굉장히 간절한 필요가 있는 건데 그렇다고 한다면 피해자가 굉장히 잘 알고 있는 사람."

■ "할머니를 죽인 건 둘째 아들" 시골 동네를 뒤덮은 이상한 낙서

할머니가 사라진 직후 동네에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김 할머니를 죽인 범인이 할머니의 둘째 아들이라는 낙서가 마을 곳곳에 생겨난 겁니다.

둘째 아들은 다른 형제들보다 고향을 늦게 떠나 할머니와 사이가 유독 각별했습니다. 잿더미로 변한 슈퍼 옆에 비닐하우스를 지어놓고 반년 동안 할머니를 찾아 헤맨 것도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할머니의 땅 일부가 도로에 편입되면 보상금이 나올 예정이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소문은 마치 사실처럼 퍼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범행이 일어난 22일부터 24일 사이 둘째 아들은 고향에 내려온 적도 없었습니다.

[신형섭 / 서천경찰서 형사 : "동네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고 그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쭉 행적도 확인했지만 관련성은 거의 없는 걸로 이제 어느 정도 확인이 된 부분이죠."]

그렇다면 과연 마을 담벼락에 낙서를 남긴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누군가 고의로 수사 방향을 돌리려고 낙서를 남긴 거라면 한 번쯤 용의선상에 올랐을 인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건 발생 직후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던 인물은 40대 후반의 노총각 박만수 씨였습니다.

[신형섭 / 서천경찰서 형사 : 아침저녁을 가리지 않고 할머니 가게에 자주 갔던 사람이에요. 할머니도 잘 대해줬고 근데 가끔 술에 취해서 폭력성을 띠고 할머니에게 욕을 하고 때리는 행동을 취했던 적도 있고."]

할머니가 실종되던 1월 한 달 동안 박만수 씨가 할머니에게 무려 스무 차례나 전화를 건 기록도 나왔습니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날 슈퍼 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사람도 바로 박만수 씨였습니다.

할머니의 슈퍼에 간장을 납품하던 식품회사 직원도 박만수 씨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기 몇 달 전 두 사람이 싸우는 걸 목격했는데 박만수 씨가 할머니에게 "가만 안 두겠다"고 으름장을 놨다는 겁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는 없는 상황.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됐지만 박만수 씨는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

경찰의 다음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은 할머니의 집에 세입자로 살았던 전 씨. 돈 때문에 다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혐의점은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다음 용의자는 기동슈퍼에서 현금 30만 원을 훔쳐 구속된 적이 있던 전과 6범 이 씨. 하지만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날 서천을 빠져나간 것이 확인되면서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용의자들도 있습니다. 할머니에게 택배를 찾으러 갔던 부부가 기억하는 자전거의 주인. 당시 슈퍼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의문의 방문객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는 도대체 누구였을까요?

■ "최면 수사까지 동원했지만…" 미스터리 풀 '마지막 열쇠'의 결말은

점점 묻혀만 가던 그날의 진실. 범인의 정체에 다가갈 마지막 열쇠를 쥔 사람은 불이 난 걸 처음 목격했던 운송기사 박 씨였습니다. 박 씨는 당시 경찰에 말하지 않았던 기억의 조각을 취재진에게 털어놨습니다.

[박 씨 / 기동슈퍼 화재 최초 신고자 : "확실히 기억이 났다면 경찰에게 분명히 얘기했을 거예요. 무슨 차를, 어떤 차종을 봤다. 근데 내가 행여나 잘못 봤나. 수사에 혼선이 생길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피해를 볼 수도 있고 그래서 말을 안 했는데.. 내가 여기서 옆에 주차돼 있는 차를 본 것 같다."]

그날 박 씨는 슈퍼 앞을 두 번 지나갔다고 말했습니다. 집에서 출발해 공장에서 물건을 받은 뒤 나오던 길에 화재를 목격했는데 그보다 2시간 전 슈퍼 앞에서 낯선 자동차를 목격했다는 겁니다.

취재진은 경찰 과학수사계의 도움을 받아 박 씨의 최면수사를 진행했습니다.

[박 씨 / 기동슈퍼 화재 최초 신고자 : "(본인은 지금 어디까지 갔어요?) 슈퍼 다 왔어요. (불은 어느 정도에요?) 집 삼켰어요. 아무도 없고 지붕 무너지려고. (지붕이 무너지려고 해요?) 다 탔어요. (다 탔어요?) 빨갛네요. (주변에 뭐 보이는 거 있어요? 그럼? 그 집 말고?) 없어요."]

최면수사는 박 씨가 화재를 목격한 시점부터 시작됐습니다.

[박 씨 / 기동슈퍼 화재 최초 신고자 : "전화했어요. (뭐라고 했어요?) 불났어요. (또?) 빨리 와요. (천천히 돌려 보세요. 천천히 돌리니까 뭐가 나와요?) 출근하고 (출근하고 있어요? 그러면 다시 앞으로 천천히 돌려보세요. 그러면 이제 슈퍼가 보일 거예요. 슈퍼가 보이면 스톱 버튼을 누르세요.)"]

기동슈퍼에 불이 나기 2시간 전 박 씨의 기억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박 씨 / 기동슈퍼 화재 최초 신고자 : "(길가에 뭐가 있어요?) 안 보여요. (안 보여요?) 안 보여."]

그런데 최면을 잘 따라오던 박 씨가 2시간 전으로 돌아간 순간 주변이 깜깜해진다고 말했습니다. 몇 번이나 다시 시도해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옥우 / 당시 충남지방경찰청 법최면수사관 : "무의식적으로 아무래도 거부하는 게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스스로 부담이 생기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 아예 깜깜하게 비춰지는 거죠."]

범행 현장에서 목격된 마지막 단서는 그렇게 목격자의 기억 속으로 깊이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 가라앉아 버린 마지막 단서…"그날은 할머니의 생신 하루 전이었다"

정체 모를 화염이 작은 보금자리는 물론 할머니의 흔적마저 앗아간 그날. 그날은 김순남 할머니의 생신을 꼭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할머니를 잃은 가족들은 아직 할머니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마지막 바람은 할머니의 시신이라도 찾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범인은 지금 아무렇지 않게 우리 곁을 활보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범인은 기억해야 할 겁니다.

일흔 평생 자식들을 위해 살아온 할머니의 생명을 앗아간 죄와 가족들에게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를 남긴 죄.

그 대가는 분명 작지 않을 거라는 걸 말입니다.

(구성 : 장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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