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아침뉴스, 모닝와이드 '친절한 경제' 코너에서 "지금 50~65세 사이 세대에게 며느리나 사위는 반려동물보다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먼 존재", "결혼한 자녀의 집에는 그냥 안 간다는 사람이 이 세대의 30%"라고 소개했습니다. (6월 21일)
▶ [김범주의 친절한 경제] 50~65세 장년층 54% "내가 제일 중요"…달라진 인식
방송 직후부터, 일단 주변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완전 우리 집 얘기"라는 호응부터 "난 잘 공감이 안 된다"는 (딱 이 세대에 속하는) 제 어머니, 우리 엄마의 문자까지... '친절한 경제'에서도 말씀드리긴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연령 구간이자 격변의 세대로서, 그 전까지의 어느 세대보다도 삶의 모습과 태도에 개인차가 큰 탓일 겁니다. 이 세대부터 기존의 '전통' 또는 '관습'이라는 것에서 본격적으로 벗어나는 움직임이 보이는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 "며느리·사위보다는 반려동물?"
"며느리나 사위는 반려동물보다도 먼 존재"라는 얘기는 라이나전성기재단이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와 함께 50에서 65세 사이 세대에 대한 연구 분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론조사 전문기관을 통해 이 연령대의 1070명에게 물어서 나온 결과입니다. 질문은 "자신에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대로 나열하세요"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대답이 1순위는 나 자신(53.9%), 그다음이 배우자(40.3%), 자녀(33.4%), 부모/형제(28.3%) 순이었습니다. 그다음 대망(?)의 5순위가 반려동물, 그 다음으로 며느리와 사위 차례였던 거죠. 반려동물과 며느리/사위는 경쟁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반려동물이 15.2%를 얻은 반면, 며느리와 사위는 5.2%에 그쳤거든요.
라이나전성기재단과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5065세대에게 며느리와 사위 위주의 관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셈"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관계'라는 말을 '나랑 가장 자주 연락하고, 친밀하게 지내는 관계'라고 조금 바꿔 생각해 보면 좀 더 명확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며느리/사위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기보다는, 내게 가장 가까운 존재는 (나 자신을 제외하면) 배우자, 자녀, 부모/형제, 그 다음엔 반려동물이지, 며느리와 사위는 아니라는 얘기로 들립니다. 3대가 모여 살며 며느리가 하루 종일 가장 많은 접촉을 하는 사람이 시부모인 집은 이제 많이 하는 얘기대로 "연속극에나 존재하지" 주위에서 당연한 듯 보기는 힘들어졌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런 집이 자주 등장하는 TV드라마로 꼽히는 일일연속극이나 주말연속극에서마저도, 이제 그런 가족 구성을 자주 보지는 못하게 된 것 같습니다. 오히려 "며느리는 못될 거 같아" 하면서 결혼을 거부하던 당찬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과 화해기 겸 동지맺기를 보여준 류의 주말연속극들이 최근에 제일 히트하지 않았나요? (네. 제게는 타 방송사 KBS2의 드라마였던 '아버지가 이상해' 변혜영 얘깁니다^^;)
어떻게 보면, 자녀의 독립을 진정으로 인정하기 시작하는 경향이 보인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말 그대로 핵가족이 거주 형태로서 뿐만이 아니라 5065의 인식의 차원에도 확고히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며느리나 사위는 내 자녀의 배우자이지, 나와의 관계가 직접적이거나 내 테두리, 혹은 더 나아가서 표현하자면 '내 권한'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님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지금의 5065세대부터는 상당히 뚜렷해지고 있다는 거죠.
● "내가 내 자식 집도 허락받고 가야 해?" vs "난 그냥 애 집엔 안 가"
이런 경향은 '결혼한 자녀의 집을 언제 방문하나요' 라는 질문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내가 내 자식 집도 허락받고 가야 해?"라고 생각하는 부모, 이번 조사를 보면, 이제 남성은 10명 중 2명 꼴, 여성은 10명 중 1명 꼴 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갈 날을 미리 서로 얘기하고 가거나, 오라고 할 때만, 즉 '요청을 받았을 때만' 간다고 대답했습니다. 아예 거의 방문을 하지 않는다는 답도 많았습니다.
남녀 차이도 흥미롭습니다. 흔히 며느리나 사위와의 관계를 얘기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관계 하면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선 시어머니-며느리 사이죠. 또, 이 관계에서 가장 말썽이 많이 빚어진다고 흔히 갖고 있는 선입견으로 본다면, 마음대로 자녀의 집에 방문하는 여성이 더 적다는 건 조금 의외의 결과죠?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시월드'의 불편함을 아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배려하는 '탈며느리' 경향을 볼 수 있는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즉, 급변하고 있는 지금의 5065세대의 여성들은 사회가 끊임없이 지적해 온 '고부갈등'의 당사자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조심해야 할 행동'들에 대한 인식도가 남성보다 더 높다는 겁니다. '내가 당했던 걸 자식들에게는 그대로 하지 않으리라', 고 생각해 주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사이좋게 지내려면 이러면 안 되지, 그랬다간 '시월드' 소리를 듣겠지'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경우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야말로 '낀 세대'로서의 애환도 있고, 적극적으로 기존의 사회관념에서 벗어나려는 이른바 '깬 세대'로서의 마음가짐도 있겠죠?
그런데 '거의 안 간다'는 이 적잖은 비율의 대답에선 -담담한 사실관계를 답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왠지 서운함의 그림자가 느껴진다고 하면, 이 연령대의 자식세대에 속하는 제가 괜히 뜨끔해서 그런 걸까요? 모닝와이드에 이 내용으로 생방송 출연한 뒤에 사무실 제 자리에 돌아오자마자 제 휴대전화에서 발견한, "나는 (오늘 네가 얘기한 내용이) 잘 공감이 안 간다"는 5065 세대 제 어머니, 우리 엄마의 평소 답지 않게 짧고 단호한 메시지가 은근히 마음에 밟혀서 괜히 저만 찔리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내 새 옷을 알아봐 주고 맛집도 알려주는 딸!
방송에선 다루지 못한 재미있는 질문 얘기 하나 더 있습니다. '새 옷을 누구에게 칭찬받을 때 가장 기분이 좋나요?' 라고 물었을 때, 딸이 있는 5065와 아들만 있거나 자녀가 없는 5065는 큰 격차를 보였습니다. 딸이 없는 5065는 절반 이상(51.9%)이 '또래 지인'한테 칭찬받는 게 제일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은 배우자이고, 자녀, 그러니까 '아들'이라고 답한 사람은 9.6%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딸이 있으면 그 결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또래 지인에게 칭찬받는 게 제일 좋다는 응답은 38.1%에 그치고, 대신 딸 칭찬이 제일 좋다는 응답이 24.5%나 된 겁니다. 딸이 있으면, 맛집 정보를 얻는 대상이 자녀인 경우가 16.8%에 달해서, 아들만 있거나 자녀가 없는 5065들을 다 합친 것보다(5.9%) 3배가량 높았습니다.
아들의 칭찬보다, 아무래도 패션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있을 것 같은 여자들, 그러니까 딸 칭찬이 더 기분 좋은 것일 수도, 물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쩌면 "엄마 예쁘다, 아버지 오늘 폼난다"는 달콤한 말을 아들로부터는 들어본 적이 없는 분들이 꽤 많아서 이런 격차가 나온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쑥스러워도 하고 나면 나도 기분 좋아질 한 마디, 2545 남성 여러분들, 부모님께 좀 더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정상 자주 오가지 못하더라도, 집에 부모님이 오실 일은 거의 없더라도, 가족 단톡방에 부모님이 새 옷 입은 사진이라도 한 장 올리시면 엄지 척 이모티콘 정도는 날려드리면 어떨까요. 세상 무뚝뚝한 딸인 저도 다른 딸들 좀 따라잡아 봐야겠다.. 앞으로는 좀 더 분발해 봐야지 생각했습니다.
● 세상의 중심은 나- 5054/5565 또 갈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맨 앞에 살짝 말씀드린 얘기를 다시 한 번 해보자면, 지금의 5065는 나 자신이 제일 소중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53.9%입니다. 나 자신을 이렇게 가족에 앞세워 중심에 놓는 가치관이 법적 노년을 앞둔 장년층에게서 이 정도로 높은 비율로 발견되는 것은 아마 우리사회에서 처음 보는 현상일 겁니다. 특히 이번에 조사 대상이 된 5065 중에서도 50대 초중반은 5565, 즉 베이비붐 세대와도 또 다릅니다. 1964년생까지, 5565는 자녀가 결혼을 하든 나이를 얼마나 먹든 '자식은 내 책임이고 내가 끝까지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37.4%에 이릅니다. 40% 수준입니다.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세상이 변하고 있으니 나도 변하고 우리 가족도 변해야겠지만, 그래도 자식이 내 품에 기대오면 그걸 어쩌랴,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지...' 생각하시는 모습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요새 말하는 이른바 '깬 세대'보다는 '낀 세대'에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 모습입니다.
반면에 55세 미만, 이른바 광의의 X세대에 속하는 지금의 50대 초중반으로 오면, '자녀가 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돌봐주면 된다'는 인식이 점차 강해집니다. 5054의 20.8%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열 명 중 2명 꼴을 조금 넘죠. 이것만 해도, 기존의 한국사회 인식과 비교해 봤을 때는 상당히 늘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맞벌이하는 자녀들의 아이들, 즉 손자손녀를 대신 봐주느냐 아니냐 의 각도에서 보면, 이런 경향을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부모의 희생'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지금의 2545, 그리고 5065가 부딪치게 되는 가장 일반적인 예일 것 같아서 생각해 봤습니다. 2545가 애를 좀 봐달라고 부탁하면 어떻게든 봐주시는 분들이 5065에 굉장히 많습니다. 그 전 세대에는 더 많겠죠. 육아 몇 년에 급속도로 늙어가면서도 애를 봐주십니다. 자녀를 위해 늘 해오신 것처럼, 희생해 주시는 겁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꼭 그렇게 결론이 나지만은 않았던 제 주변 사례가 동시다발로 몇 개 떠오릅니다. "진짜 일주일째 조르고 있는데 '나한테 자식 맡길 생각하지 말라'시네. 언니 애는 봐줬는데. 너무 속상해. 우리 애까지는 도저히 못하시겠대." 하며 눈물을 주룩주룩 쏟던 친구가 있었고요. "애 생기기 전엔 '제발 하나만 낳아라. 낳으면 내가 봐준다'고 하시더니, 막상 와이프 임신하자마자 장모한테 부탁하라고 하시네. 장모 아직 일하시거든. 부부싸움 대박 했어. 난리났어."하면서 난감해 하던 선배도 있었습니다. "어쩌겠어, 내가 안 봐주면..." 하고 결국 또 자식의 형편을 앞에 세우며 본인을 희생하지 않는 부모가 분명히 나타나고, 또 늘어나고 있는 겁니다. 부모님들이 조부모 육아를 당연한 듯 해주셔야 한다는 뜻으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인식의 변화를 주변에서도 맞닥뜨리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맞벌이나 육아, 조부모육아, 독박육아, 노동환경, 성별격차... 의 문제로 이슈를 넓히기 시작하면 이 취재파일은 도저히 끝을 맺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이 부분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X세대에 대해서도 부연해둬야 할 것 같습니다. 원래 1991년 캐나다 작가의 소설에서 '정체불명의 신세대, 뭐라고 정의내릴 수도 없는 신인류'라는 의미로 당시의 20대들을 가리켜 'X세대'라고 일컫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1965년에서 1969년생들을 주로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세계적인 유행을 타면서 우리나라까지 건너왔을 땐, 우리나라에선 1970년 초반생들을 일컫게 된 거죠. 그러니까 우리사회에서 60년대생들을 X세대라고 하면 어 그거 아니잖아, 하실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단어의 탄생까지 거슬러 올라가 넓게 보면, 60년대 중후반 태생들까지는 X세대에 넣어서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졸혼에 대한 개방성, 디지털 친숙도 등 재미있는 다른 질문 결과도 많았습니다. 졸혼 부분은 다른 매체에서도 여럿이 다뤄서 굳이 저는 덧붙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가족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이번 라이나전성기재단의 조사를 보니, 급변하고 있는 시대상에 대해 새삼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자녀 세대인 2545, 그리고 그 밑으로 같은 질문을 해보면 이보다 훨씬 더 극적인 수치들이 나올 겁니다. 당장 2545에 속하는 저도 생각하고 있는 답변들이 있고요. 또 그에 맞춰서 앞으로 여러 관계들을 형성하고 유지해 나갈 텐데, 우리 엄마는 다른 답을 하길 기대하는 건 내 욕심이 아닌가 새삼 생각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소회가 그렇다는 것이고, 사회의 급격한 변화만큼이나, 우리 모두의 답이 많이 다르겠지요! 이번 조사 결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