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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의 독립 영화, 싸게만 만들 수 없는 이유는?

[취재파일] 한국의 독립 영화, 싸게만 만들 수 없는 이유는?
순위 영화 개봉일 누적매출액(원) 누적관객 스크린수
1 러덜리스 7/9 4억  2430만 5만 3797명 57
2 라이드 7/16 5604만 6973명 29
3 심야식당 6/18 10억2906만 13만  69명 36
4 숀더쉽 8/13 4504만 5541명 16
5 더디너 7/16 2189만 2960명 17
7 한여름의 판타지아 6/11 2억 4797만 3만 1837명 15

주말이 포함된 지난 18일부터 21일까지 국내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 순위입니다. 다양성 영화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인정 심의를 통과한 작품들로 별도의 박스오피스에서 순위 다툼을 벌입니다. 물론 저 박스오피스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더라도 일반 상업영화들과는 경쟁하기 어렵습니다. 상업영화들은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수백 개의 스크린을 확보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다양성 영화 개봉작은 367편으로 1428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1편당 평균 3만8900여명이 봤군요. 그런데, 지난해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385만명)와 '비긴 어게인'(343만명) 두 편이 이례적인 흥행을 올렸죠. 두 편을 제외하면 1편당 관객수는 1만9200여명으로 줄어듭니다. 이 정도 관객이면 누적매출액은 대략 1억5000만원 안팎입니다. 극장 측에 절반을 떼주고 남은 7000만-8000만원이 영화사의 몫입니다. 저예산 독립예술 영화사들이나 수입사들은 '님아..'와 '비긴 어게인'을 꿈꾸지만, 실제론 매출액 7,8000만원이 현실인 셈입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위 포스터)의 경우 현재 누적매출액 2억 4797만원이니 영화사는 대략 절반인 1억 2000여만 원 정도 수익을 냈겠군요. 이 영화는 일본 나라현 고조시(五條市)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나라국제영화제의 제작지원금 1억원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국내 투자금 1억원을 합쳐 순제작비는 2억원입니다. 1억원을 기준으로 손익분기점은 넘긴 셈입니다.

지난 2일 개봉한 '마돈나'를 살펴볼까요? 신수원 감독의 연출력과 신인배우 권소현의 연기력이 호평을 받으며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의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을 받았죠. 그런데, 순제작비는 4억원입니다. 독립예술영화시장만으론 절대 손익을 맞추지 못 합니다. 그래서, 배급사 리틀빅픽쳐스는 대기업 멀티플렉스 상영관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요, 하지만 대부분 거절을 당했습니다. 결국 예술영화 전용극장 등에서 최대 65개 스크린을 확보하는데 그쳤고 지금은 12개 정도로 줄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독립영화 제작자들은 제작비를 1억원 미만으로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산이 그 이상으로 커지면 적자 위험이 급격히 높아집니다. 1억원 미만의 제작비는 필연적으로 빠듯한 촬영 일정과 부족한 조명 장비, 부실한 후반 작업을 의미합니다. 상업영화에 익숙한 보통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습니다. 신수원 감독은 "마돈나를 만들면서 영화의 퀄리티(Quality)를 떨어뜨리지 않으려면 최소 4,5억원은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감독 개인의 뛰어난 각본력, 연출력, 편집력, 주제의식만으로도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지만, 그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외국의 독립 영화들은 얼마의 제작비로 만들어질까요? 미국 최대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위플래쉬'는 330만 달러(38억원)가 들었습니다. 선댄스 폐막작이었던 '러덜리스'는 500만 달러(58억원)입니다. 선댄스에선 특별한 제작비 상한이 없습니다만, 상한이 있는 독립영화제도 적지 않습니다. 영국독립영화제(British Independent Film Awards)의 제작비 상한은 2000만 달러(230여억 원)입니다. 굉장히 높죠. 그 이하의 수십억원 짜리 독립영화들이 즐비합니다. 독일 베를린 독립영화제(Berlin Independent Film Festival)는 제작비 규모별로 나눠 시상을 합니다. 일반 장편(Feature) 부문은 100만 유로(12억원) 이하, 저예산 장편(Micro-budget Feature)은 25만 유로 (3억원) 이하, 그리고, 무예산 장편(No-Budget Feature)은 2만 5000유로(3100여만원) 이하입니다. 대부분 출품작들은 제작비 3억원 이상의 저예산 및 일반 장편 부문에 나옵니다. 캐나다 토론토 독립영화제는 일반 장편 25만 US달러(3억원 이상), 저예산 장편 25만 달러 이하, 무예산 장편 2만5000 달러(3000여만원) 이하로 나누고 있습니다. 통상 제작비 10억원 안팎을 독립영화라고 보고, 전국 상영을 목표로 한다면 50-100억원대 독립(??)영화도 나오는 겁니다. 국내 저예산 독립영화들이 얼마나 싸게 제작되고 있는지 알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내 최대 극장체인인 CGV가 저예산 독립영화계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CGV아트하우스'라는 브랜드로 22개 예술전용관을 운영할 뿐아니라 국내 중소 영화에 대한 투자배급업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동안 투자 및 배급에 나선 작품들을 볼까요?
 
영화 순제작비(원) 스크린수 관객(명)
우아한 거짓말 21억 573개 162만
도희야 5억 310 11만
한공주 2억 226 22만
님아.. 1.2억 206 385만
소셜포비아 1억 368 25만
차이나타운 25억 551 147만

 대부분 대형 투자배급사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작품입니다. 스타 감독과 배우를 엮어 2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노리기엔 부족하다는 겁니다. CGV아트하우스는 이런 작품들 가운데 알짜를 골라 좋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스크린 수를 보면 아트하우스뿐 아니라 CGV 전체가 어느 정도 밀어주는 모습입니다. 만약 제3의 중소 배급사였다면 스크린을 60개 이상 잡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여튼 CGV아트하우스가 우리 독립영화계의 몸집을 키우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만큼 세련된 독립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름 있는 배우들도 볼 수 있습니다. "스타들이 나오는 것이 독립영화냐?" "독립영화의 정의가 뭐냐"는 논란도 이어지고 있고요, "CGV아트하우스가 상업영화시장에서 성공할 신인감독을 입도선매한다", "이제 독립영화계도 자본의 힘에 지배받기 시작했다" "아트하우스가 자기네 영화들만 밀어줘 오히려 다른 독립영화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등 비난도 적지 않습니다.

CJ그룹 아래에서 CJ E&M이 상업영화시장, CGV아트하우스가 예술영화시장을 담당하며 분업하는 구조도 가능할지 궁금합니다. 해외에도 비슷한 회사들이 있죠. 소니픽쳐스 산하의 '소니픽쳐스클래식스'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작인 '스틸앨리스',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인 '미스터 터너'와 올해 국내에서 크게 성공한 '위플래쉬' 등을 만들었죠. 20세기폭스 산하의 '폭스 서치라이트'는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노예12년'과 '버드맨'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등을 투자배급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제작비 1억원 안팎의 저예산 영화들만 쏟아지는 구조는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3-5억원 짜리 영화들이 100-200개 스크린에서 10만, 20만명 이상의 관객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멀티플렉스가 상영관을 더 열어줘야 합니다. "대중성이 떨어지는 작품을 상영할 수 없다"는 자본주의 논리도 이해가 갑니다. 독립예술영화계도 제작비가 늘어나는 만큼 이런 부분도 신경을 써야 하겠죠.

 최근 독립예술영화 전용관들이 늘어나면서 과거보다 독립영화계의 여건도 크게 좋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보다 큰 그림의 선순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스크린 확대->관객 증가->상업적 성공->투자액 증가->더 좋은 작품...그 시작은 스크린 확대입니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추진 중인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과 '다양성 영화 개봉지원 사업' 개편안이 논란인데요. 영진위의 심사를 거친 24편의 독립예술영화에 대해서 상영지원을 하겠다는 겁니다. '다양성영화-독립예술영화관'이라는 정해진 틀에서 나온 정책입니다. 더욱 시야를 넓혀 대기업 멀티플렉스들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멀티플렉스 측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해답도 찾아야 합니다. 이런 고민들이 쌓여 우리 영화계의 자양분 역할을 하는 독립예술영화계가 더욱 발전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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