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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이 죽어가는데…구급차 막아선 운전자

[취재파일] 아이 죽어가는데…구급차 막아선 운전자
어머니는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길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 침묵을 깬 건 어머님의 작은 흐느낌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어렵게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소리쳤어요. 아이가, 아이가 죽어간다고. 정말 급하다고, 빨리 가야 한다고. ‘아이가 위중한 상황입니다.’라고 얘기했는데도 안 믿고 안 비켜줬어요. 손을 잡고 끌어당겨서, 구급차 안을 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손을 뿌리치더라고요. 빈손만 허공에 떠 있었습니다.”
 

사건 발단은 지난 18일로 거슬러갑니다. 그날은 네 살배기 뇌 병변 장애아동인 준희가 '간질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날이었습니다. 치료를 마친 준희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어머니는 ‘사설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장애 아동인 준희는 혼자 힘으론 숨을 쉴 수 없어, 집으로 가는 동안에도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병원을 나섰지만, 준희의 몸 상태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습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준희는 멀미를 했고, 호흡수와 심박 수가 순식간에 정상치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최소 90%를 넘어야 할 혈중 산소포화도도 60% 이하로 곤두박질쳤습니다. 함께 탄 응급구조사가 준희에게 산소호흡기를 달아줬지만, 상태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응급구조사는 구급차 기사에게 집 대신 가까운 병원으로 가라고 지시했습니다.
 
지시를 받은 기사는 근처 병원으로 차를 급히 돌렸습니다. 사이렌과 경적을 울리며 좁은 차량 사이를 비집고 나갔습니다. 정체 구간을 간신히 빠져나와 속도를 내려던 순간, 앞서 가던 승용차가 급정거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미처 충분한 안전거리를 두지 못했던 구급차는 승용차의 뒤를 그대로 들이받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침대에 누워 있던 준희는 머리를 세게 부딪쳤고,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만큼 상황은 심각해졌습니다. 말 그대로 ‘생사의 갈림길’에 선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였습니다. 사고 직후, 구급차 기사는 차에서 내려 피해 승용차 운전자에게 긴박한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구급센터 대표번호가 적힌 명함을 건네며, 대표번호로 연락해주면 보험처리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구급차에 타려는 순간, 승용차 운전자가 구급차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는 뭘 믿고 보내주느냐며, 사고 처리를 모두 마치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내 사고 현장을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다급해진 구급차 기사는 “이러다가는 아이가 죽는다.”라며 차를 빼달라고 재차 말했습니다. 하지만, 승용차 운전자는 마음을 바꿀 뜻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실랑이는 계속됐고, 결국 구급차 기사는 자신의 운전면허증을 승용차 운전사에게 건넸습니다. 그리고 도로에 멈춰 있는 승용차를 직접 몰고 도로 옆으로 옮기 나서야 구급차를 다시 운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새 ‘황금’ 같은 10분이 도로 위에서 버려졌습니다. 그동안 네 살배기 준희는 생사의 기로에서 서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에 맞서 힘들고 외로운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이후 구급차는 근처 병원 응급실에 무사히 도착했고, 준희도 응급처치를 받고 간신히 목숨을 구했습니다.)
 
▶[8시 뉴스] 구급차 아이 죽어 가는데…“보험처리하고 가라.”

  “사람이 죽어 가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멈춰선 구급차 안에서, 죽어가는 아이를 바라봐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그 당시 상황을 묻는 건 무례하고 또 잔인한 일입니다. 그렇게 ‘무례하고 잔인한’ 기자를 마주하고도 어머니는 기어이 당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말입니다.
 
“충돌 당시에 저는 앞으로 튕겨져나갔고요, 아이는 밀리면서 머리가 부딪쳤어요. 아이를 다시 침대에 눕혀 보니, 심박 수가 뚝뚝 떨어졌어요. 100, 70, 60, 40까지 한꺼번에 뚝 떨어졌어요. 그런 상황인데도, 앞에 있던 승용차는 길을 안 비켜주는 거예요. 사고 정리하고 가라고.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떡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말로는 다 표현 못 해요. 아이가 죽어 가는데 무슨 말을 하겠어요. 사람부터 살려야 하는 게 아닌가요? 심폐소생술 하면서 응급실까지 정말 겨우 갔어요. 전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그때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승용차 운전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
좀 더 객관적인 분석을 위해 구급차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을 전문가와 함께 분석해봤습니다. 영상을 본 전문가는 승용차 운전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한문철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
“구급차가 승용차를 뒤에서 추돌한 책임은 구급차 기사에게 있다. 승용차가 급정거한 건 앞서 가던 차가 정지해 멈춘 거지, 의도적으로 급정거한 건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구급차가 급박한 상황에서 차 간 간격을 충분히 계산하지 못해 일어난 사고라는 겁니다.하지만, 1차 접촉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떠나, 구급차에 탄 아이가 위중한 걸 알고도 차를 서둘러 빼지 않은 행동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 만약, 구급차가 병원에 늦게 도착해 아이가 숨졌다면 승용차 운전자가 민사적으로 20~30% 정도의 책임을 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한문철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
“사고 직후, 구급차 기사가 업체 대표번호가 적힌 명함을 줬기 때문에 승용차 운전자는 구급차 번호만 확인하고 바로 보내주는 게 맞다. 구급차는 모두 전산등록이 돼 있기 때문에 차량 번호만 알면 사후에 보상받는 데 지장이 없다. 게다가, 당시 사고는 경미한 추돌사고였고, 만일 빈차였다면 못 가게 막더라도 문제가 없지만, 죽어가는 어린이를 태운 구급차를 못 가게 막고 8~9분씩 지체하게 한 건 비난받아 마땅해 보인다.”

 
인간은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라고 말했습니다. 연필의 ‘본질’은 글씨를 쓰는 겁니다. 만약, 연필이 그런 기능을 상실하면 연필은 존재할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은 어떤 ‘본질(기능)’이 있어 의미 있는 게 아니라 ‘존재’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사르트르는 주장했습니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전 사르트르의 지적을 떠올랐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람의 생명보다 금전적 가치를 더 우선시하는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당장 눈앞의 이해득실보다 더 큰 가치를 생각할 수 있는 ‘인간적’이고, ‘사람 냄새나는’ 그런 따뜻한 사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 ‘8시 뉴스’ 보도 후 해당 승용차 운전자 가족 중 한 명이 당시 상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전해왔습니다. 하지만, 이후 자신의 해명이 또 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다며 기사에 반영하진 말아 달라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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