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짜 신분증과 사업자등록증
경기도에서 사찰을 운영하는 60대 승려 A 씨는 지난해 12월 말 휴대전화로 유명 개그맨 B 씨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했습니다.
B 씨가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TV 방송 프로그램에서 들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게시물 여러 개를 옮겨 다닌 끝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연결됐고, 대화방에 입장하자 한 여성이 B 씨의 매니저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이름은 '한우희'였습니다.
그는 A 씨 포함 50여 명인 대화방 참여자들에게 "개그맨 B 씨가 3천억 원을 갖고 있다"며 솔깃한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회원님들이 투자하면 B 씨 돈과 합쳐 비상장 주식을 한 주당 15만 원에 살 수 있다"며 "1주일 뒤 상장시키면 주당 가격이 25만 원을 넘는다"고 꾀었습니다.
매일 오후 7시 30분에는 "B 씨가 직접 주식 강연을 한다"고 했고, A 씨는 꼬박꼬박 그 강연을 챙겨봤습니다.
A 씨는 고민 끝에 큰 결심을 했습니다.
지난 2월 5일 매니저가 따로 알려준 가상계좌로 3천만 원을 보냈습니다.
사흘 뒤 2천만 원을 추가로 송금했고, 그의 주식 투자는 같은 달 말까지 이어졌습니다.
한 달 사이 투자금은 지인에게 빌린 2억 3천만 원을 포함해 3억 원으로 늘었습니다.
며칠 뒤 매니저는 A 씨 주식이 크게 올라 원금과 수익금을 합쳐 29억 8천만 원이 됐다고 알렸습니다.
그러나 지난 3월 초 A 씨가 "원금과 수익금을 배당해 달라"고 하자 매니저의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29억 원을 찾으려면 10%인 2억 9천만 원을 계좌로 먼저 보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그제야 지인들에게 주식 투자 사실을 털어놓은 A 씨는 유명인 사칭 투자 사기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하며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A 씨는 "조금씩 모아둔 돈으로 투자했고 수익이 나면 사찰 보수 공사도 하고 절 행사 때도 쓰려고 했다"며 "사기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한우희라는 매니저 이름도 가짜고 그가 보내준 사원증과 사업자등록증도 모두 위조한 것 같다"며 "'제발 좀 살려달라'고 부탁도 했는데…"라고 울먹였습니다.
'한우희' 매니저를 포함한 일당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는 A 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3월부터 서울·인천·부산 등 전국 경찰서에 고소장 40여 건이 잇따라 접수됐습니다.
B 씨의 공범으로 추정되는 대표 2명은 전직 장관 출신이 운영하는 사모투자 전문회사와 유사한 이름으로 불법 투자중개업체를 운영하며 피해자들을 속였습니다.
대표 2명 가운데 한 명은 해당 부처 장관 출신과 실제로 같은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피해자 대부분은 단체 대화방에서 매니저 등 바람잡이의 말에 속아 투자했다가 수억 원씩을 사기당했습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유명인 사칭을 포함한 '투자 리딩방' 불법행위 피해 건수는 지난해 9월부터 4개월 동안 1천 건이 넘었으며 피해액은 1천200억 원을 웃돌았습니다.
최근 사칭 리딩방 사건이 잇따르자 또 다른 피해자인 유명인들도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청은 전국에서 피해자가 늘자 최근 인천경찰청 형사기동대를 집중 수사 관서로 지정하고 '한우희' 일당 사건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했습니다.
인천경찰청이 전국에서 취합한 고소장은 토대로 현재까지 파악한 피해 금액은 15억 원대로 확인됐습니다.
경찰은 고소장이 추가로 계속 들어올 것으로 보고 있으며 용의자들을 추적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오늘(1일)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많아 고소장이 언제까지 계속 들어올지, 피해 금액이 최종 얼마일지는 가늠하기 어렵다"면서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할 방침"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제보자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