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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밥 먹고 배탈 났잖아!"
지난해 연말 강원도 한 음식점의 종업원은 낯선 남성으로부터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얼마 전 이 음식점에서 식사했다는 남성은 "맛집이라고 해서 일행들하고 갔는데 모두 장염에 걸렸다. 어떻게 할 거냐?"고 종업원을 다그쳤습니다.
놀란 종업원이 "제가 직원이라…"고 말하자, 이 남성은 "그러면 당장 사장을 바꿔라"고 요구했습니다.
종업원의 이야기를 듣고 황급히 달려온 사장이 "어떻게 해드리면 좋겠느냐"고 묻자, 수화기 너머로 "더 문제 삼지 않을 테니 치료비를 보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불황 속 자칫 행정처분을 받아 생계가 무너질까 염려했던 업주는 '울며 겨자 먹기'로 얼굴도 모르는 남성에게 200만 원을 보냈습니다.
전화 한 통으로 손쉽게 남의 돈을 가로챈 A(39) 씨는 이후로도 대담한 범행을 이어갔습니다.
숙박업소를 옮겨 다니며 숙식을 해결해온 그는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음식점에 매일 10∼20차례 전화를 걸었습니다.
휴대전화로 '전국 맛집'을 검색한 뒤, 눈에 들어오는 음식점을 무작위로 골라 같은 수법으로 업주들을 협박했습니다.
'배탈 나서 며칠째 죽만 먹었으니 죽값을 보내라', '왜 내 돈으로 약값을 내야 하느냐', '밥에서 이물질 나온 것을 알리겠다'는 식으로 금품을 요구했습니다.
A 씨는 업주들이 합의를 주저하면 "영업정지를 당하고 싶으냐"고 협박했고, 업주가 "여기서 식사했다는 영수증과 진단서를 보내달라"고 의심하면 곧장 전화를 끊었습니다.
A 씨의 전화를 받은 음식점은 제주도를 포함해 전국 모든 시도에 걸쳐 3천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알려진 피해액만 418개 업소, 9천만 원에 이릅니다.
결국 피해 업주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례를 공유하고 A 씨를 '장염맨'으로 부르게 됐습니다.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업주들의 진술과 통화 녹음파일을 확보하고 계좌 내용 등을 분석해 지난 12일 부산시 한 모텔에서 A 씨를 붙잡았습니다.
A 씨는 "음식점에서 받은 합의금을 인터넷 도박 자금과 생활비로 썼다"고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전북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상습사기 혐의로 A 씨를 구속하고 여죄를 조사 중이라고 오늘(17일) 밝혔습니다.
심남진 형사기동대 2팀장은 같은 수법에 당하지 않도록 자영업자들에게도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심 팀장은 "만약 이런 전화가 걸려 오면 식사한 날짜와 시간을 물어보고 영수증 등 객관적인 자료를 요구해야 한다"며 "음식점 내부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실제 식사한 사실이 있는지도 확인해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