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형 유통상가에서 수십 년 동안 회장님으로 불리던 한 70대가 점포 투자 사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가짜 계약서를 만들어 보증금을 가로챘다는 건데, 그 액수가 수십억 원에 이르는 걸로 파악됐습니다.
민경호 기자가 단독 취재했습니다.
<기자>
50대 A 씨는 지난해 서울 영등포에 있는 한 유통상가 점포에 투자했습니다.
투자를 제의한 사람은 상가에서 '회장님'으로 통하는 70대 B 씨.
점포에 전세로 들어가면 다시 월세를 놓아 매달 수익을 올릴 수 있게 해 준다는 말에 세 건 전세 보증금 명목으로 8천100만 원을 건넸습니다.
[A 씨/피해 투자자 : '아주 좋은 물건이 있는데, 집주인이 돈이 급해'(라고 하면서) 집주인이 전전세를 놓는대요. 그 전전세를 놓으면 (투자 보증금) 2,700만 원에 (월세로 매달) 30만 원을 준대요.]
그런데 올 초부터 월세가 안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뒤늦게 계약서를 살폈더니, 주민번호 앞자리가 5자리였고, 10월 64일생으로 적혀 있는 등 엉터리였습니다.
세입자도 실체가 없었습니다.
[이웃 상인 : (세입자분이 OOO 씨인가요?) 아뇨, 그런 사람 없어요.]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A 씨처럼 B 씨와 가짜 임대차 계약을 한 사람이 지난 10년 동안 50명 정도로 보증금만 6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다른 사람 명의 도장 수백 개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B 씨가 가짜 계약서를 만들어 보증금을 받은 뒤 일부는 월세 명목으로 투자자에게 주고 나머지는 개인적으로 쓴 걸로 보고 있습니다.
[C 씨/피해 투자자 : 저희 것(도장)을 가지고 있어요, 이미 팠더라고요. 본인이 파서 '(계약서를) 가서 써야지'하면, '뭘 오느냐'고 그러면서….]
B 씨는 부동산 중개 자격이 없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상인들의 임대차 거래를 맡으면서 '회장님'이라 불렸던 걸로 전해졌습니다.
B 씨는 과거 상가에 부동산이 없던 시절 임대 계약을 중개한 사실은 있지만, 최근에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취재진이 지난해 작성된 계약서를 들이밀자 엉뚱한 변명을 내놨습니다.
[B 씨 : 제 글씨가 맞는데, 기억이 안 나는데요, 왜 그렇게 됐는지….]
경찰은 B 씨가 월세를 놓으려는 점포주들에게 실제로는 전세 세입자를 연결해 주고 전세보증금 수십억 원을 가로챈 혐의도 포착해 수사하고 있습니다.
(영상편집 : 오영택, VJ : 김종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