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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부실 임시제방' 행복청…사과는 없다

의혹 보도에 "엄정 대응" 외치던 행복청…감찰 결과엔 침묵

14명이 목숨을 잃은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 침수 참사가 인재였음을 정부가 확인했다. 국무조정실은 미호강 범람을 막아야 할 임시제방 부실 공사를 발주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방치했고, 참사 전까지 23번 신고가 접수됐는데 경찰과 소방, 지자체의 대응도 안일했다고 감찰 결과를 밝혔다. 관련 공무원과 임시제방 공사 관련 민간인 등 모두 36명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됐다.

임시 제방 설치됐던 미호천교

SBS는 국무조정실이 사고 원인이라고 밝힌 임시제방 부실 의혹을 사고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멀쩡한 제방을 허물어 불안했다"는 현장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한 사고 이튿날 보도를 시작으로, 하천 설계기준이 지켜지지 않은 점과 시공계획서 입수를 통한 부실시공 의혹 제기를 이어갔다. 한 발 더 들어가 정부도 진작 미호강 홍수를 우려했지만 하천 정비는 도로공사에 밀려 미뤘다는 사실을 전했고, 미호천교 양옆 가설도로 설치 과정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시제방 자체가 위법했고 시공 과정에선 발주청과 허가관청 사이 엇박자까지 빚어졌음도 밝혔다.
이런 내용들은 국무조정실 감찰 결과 대부분 확인됐고 일부는 앞으로 검찰 수사에 따라 추가로 밝혀질 전망이다. 분명한 건 시공사와 감리사가 미호천교 아래 기존 제방을 무단 철거한 뒤 부실 임시제방을 쌓았고 행복청은 발주처로서 이를 제대로 감시·감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여기까지 온 일련의 보도 과정에서 보인 행복청의 반응이다.

임시제방 부실 의혹 첫 보도 이후 행복청은 17일 <SBS 등이 보도한 '미호천교 제방 철거' 관련 설명>이란 제목의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인명 피해가 난 공사의 발주기관으로서 자세한 설명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기관명과 제목 등 양식화한 부분을 빼면 단 '267자'가 설명의 전부였다. "기존 제방을 그대로 두고 미호천교를 건설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제방 철거의 불가피성을 역설한 행간에선 '너희가 토목공사를 아느냐'는 오만함도 느껴졌다.

오송 지하차도 행복청

이후 행복청은 귀를 막고 입을 닫았다. 의혹은 넘쳐나는데 설명을 중단했다. 대변인실 등 언론 관련 부서는 물론 공사 발주 담당 부서까지 불통 상태가 이어졌다. 아무리 임시제방이라 하더라도 하천 설계기준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적어도 높이는 맞출 수 있는 것 아닌지, 발주청의 해명을 듣고 싶었지만 무망한 일이었다.

대신, 행복청은 다음 날(18일) 또 한 번의 보도 해명자료 한 장을 배포했다. <최근 오송-청주(2구간) 도로공사 관련 언론보도와 관련한 입장문>이란 제목의 문서는 '231자' 분량으로 "공사의 전 과정에서 어떠한 불법행위도 한 사실이 없다…사실과 다른 보도가 계속되는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추후 허위보도가 계속될 경우에는 엄정 대응할 것"이라는 경고가 씌어 있었다. 이를 본 한 건설사 관계자는 "사고 난 현장 발주처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처음 본다. 인명피해에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혀를 찼다. 사고 나면 문을 닫을 수도 있는 건설사 입장과 비교하는 건 무리일 수 있지만 분명 상궤는 벗어난 반응이다.

눈살을 더 찌푸리게 만든 건 그 이튿날(19일) 배포된 특정 매체 기사에 대한 '보도 설명자료'다. 행여 기자들이 놓칠까 우려했는지 문서파일 제목 앞엔 별("★") 표기까지 붙였다. 전날 한 매체가 참사 한 달 전 정치인 출신 이상래 행복청장이 미호천교 공사 현장을 방문한 점을 들어 방문 당시 살폈어야 하는 점은 없던 건지 물은 데 대한 답이었다. 행복청은 해당 보도가 자신들의 해명 이후 인터넷판에서 일부 수정이 이뤄졌다며 전후를 비교해 주고 "악의적인 보도"라고 깎아내렸다. 아마 기관장을 들먹인 기사라 그토록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언급한 모든 해명·설명자료는 정작 행복청 홈페이지에선 찾아볼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행복청 보도자료/설명·해명자료 페이지에 해당 자료들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기자들에게만 배포해 그들이 그저 이 사고에서 행복청의 잘못은 없던 거라고 믿고 취재행위를 멈추기 바란 거라고 생각하면 과한 것인가? 사고 수습에 여념이 없어야 할 공무원들이 이런 기관장 '심기 경호' 성격의 자료나 만지작거리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국무조정실 (사진=국무조정실 제공, 연합뉴스)

국무조정실은 이번 사고에 지휘 책임이 있는 기관장들에 대해 인사 조치를 추진한다고 했다. 이상래 행복청장도 피해 갈 순 없을 것이다. 지휘 책임이란 게 원래 무거운 것이지만, 어이없는 참사 앞에 엉뚱한 해명이나 잇따라 내놓은 책임도 결국 기관장 몫이다. 잘못 없다는 해명자료만 내놓던 행복청은 국무조정실의 감찰 결과가 나온 지금도 그 흔한 '사과의 변' 하나 내놓지 않고 있다.

(사진=국무조정실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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