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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목포행 여객기 추락…기적의 생존자들이 들려준 그날 이야기

꼬꼬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6일 방송된 '응답하라733 - 1993년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사고'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겸 배우 한승연, 개그맨 김원훈, SBS 김현우 앵커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행방불명된 항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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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93년 7월 말, 무덥고 습한 장마철이야.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찾아왔어. 인천에 사는 8세 신준영, 6세 신나라 남매는 여름방학을 맞아 목포 할머니댁에 가기로 했어. 남매의 친가와 외가는 모두 목포 근처야. 아빠가 가족들을 위해 목포행 비행기 티켓을 사줬어.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어.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이야. 비행기를 아무나 못 탈 때지. 당시 비행기는 기차보다 10배쯤 비쌌어. KTX도 없고, 서해안고속도로도 안 뚫려서, 서울에서 목포를 가려면 6~7시간이 기본이야. 회사 일이 너무 바빠 가족들과 같이 목포에 못 가는 아빠가, 통 크게 가족들을 위해 비행기 티켓을 쏜 거야.

7월 26일, 드디어 비행기 타러 가는 날이 밝았어. 김포공항까지 배웅 나온 아빠가 항공사 카운터에 아이들이 비행기 앞 좌석에 탈 수 있게 해 달라 부탁했어. 엄마와 아이들은 출발장 안으로 들어갔고, 아빠는 그 모습을 지켜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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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네가 탈 비행기는 아시아나 항공 733편. 비행기에 탑승한 엄마가 좌석을 찾아. 어? 근데 이게 뭐야. 좌석번호를 보니, 제일 뒤쪽이야. 남편이 앞자리를 부탁했다더니, 뭐야. 착오가 있었나 봐. 나라네는 21열 D, E, F 자리에 앉았어. 뒤에서 네 번째 줄이야. 그런데, 그땐 몰랐어. 꼬여버린 이 좌석 배치가, 운명을 완전히 뒤바꿀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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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안에는 유난히 엄마와 아이들만 탄 가족이 많았어. 나라네 앞 줄에 앉은 승아네는 20열 A, B, C, 중간쯤에 앉은 보경이네는 11열 B, C, D 자리야. 나라네처럼 아빠 없이 엄마와 아이들만 비행기를 탔어. 3살 민구도 9열 F석에 엄마와 단 둘이 앉아 목포 할머니댁에 가는 길이야.

1993년도 당시는 주 6일 근무였어. 토요일에도 회사에 나가던 시절이야. 아빠들과 다같이 휴가를 길게 내는 게 어려운 시절이었어. 비행기 안은 아이들로 아주 시끌벅적해. 그런데, 이 설레는 분위기 속에서 뾰로통한 표정의 남자가 한 명 있어. 14C 좌석의 김현식 씨. 현식 씨는 아침만 해도 이 비행기에 탈 계획이 아니었어. 그런데, 회사에서 갑자기 상사 대신 목포 출장을 가라는 거야. 김현식 씨는 상사 이름으로 예약한 티켓을 들고 비행기에 탔어. 그때만 해도, 비행기 탑승객 확인 시스템이 허술했대. 그래서 상사 이름으로 예약돼 있지만, 탈 수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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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37분, 비행기는 이륙했어. 목적지 목포에는 3시 30분경 도착할 예정이야.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후 5시 반. 나라네는 목포 공항에 이미 내려 할머니댁에 가는 버스를 타고 있을 시간이야. 그런데, 나라네 아빠 회사로 전화가 왔어. "삼촌! 지금 빨리 뉴스 좀 틀어봐요!"라는 형수님의 전화였어. 나라 아빠는 사무실에 라디오가 없어서 얼른 차에 가서 라디오를 켰어.

"뉴스 속보입니다. 김포발 목포행 아시아나 항공기가 행방불명 됐습니다. 오늘 오후 2시 37분 김포공항을 출발한 목포행 비행기가 현재 시각 행방불명 됐다는 소식입니다."

비행기가 행방불명 됐다는 속보가 나오고 있었어. 당시 상황을 직접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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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아시아나 항공기가 행방불명이라고 그러면 다른 비행기는 없어요. 그 비행기 하나밖에 없어서 알 수가 있었어요. 이게 진짜인가 가짜인가.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을 수가 없는 일이잖아요. 대한민국에서 비행기가 행방불명 됐다? 믿을 수가 없어서 제가 확인을 해야 되겠다 이건…"
-신경재, 나라 준영 아빠

그래서 나라 아빠는 일단 목포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자동차 시동을 걸었어. 손이 벌벌 떨려.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어서, 회사 직원이 대신 핸들을 잡았어. 그러다 문뜩, 공항 가는 차 안에서 여섯 살 딸이 불렀던 노래가 생각이 났어.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딜 갔느냐"라는 가사의 노래였어. 불안해. 모든 게 다 불길한 징조였던 것만 같아.

"그런데 누가 그 노래를 가르쳐 주지도 않았어요. 본인이 어디서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노래를 뒷좌석에서 불러서 아빠인 난 기분이 좀 묘했어요. 왜 하필 저런 노래를 부를까 했는데…"
-신경재, 나라 준영 아빠

같은 비행기를 탔던 세 살 민구와 엄마. 민구 아빠도 친구한테 빨리 TV를 틀어보라는 전화를 받았어. 뉴스 속보를 본 민구 아빠도 눈앞이 캄캄해. 민구 아빠도 서울역으로 달려가 목포행 기차를 타려 했어. 좌석이 없어서 6시간 넘게 입석으로 가야 하는데, 그런 걸 따질 수 없는 상황이야.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어. 기차엔 TV도 라디오도 없던 시절이야. 요즘처럼 스마트폰도 없어. 6시간 동안 단절돼 있는 거야. 아내와 아들이 무사한지, 답답해 죽을 노릇이야. 그저 이 모든 게 꿈이길, 되뇔 뿐이야. 도대체 목포행 비행기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걸까.

▲ 아시아나 733편의 추락

먼저, 비행기가 어느 지점에서 사라졌는지 봐야 해. 733편은, 오후 2시 37분 김포공항에서 출발했어. 그 후 안양, 오산, 군산, 광주 상공을 지나며, 관제소들과 정상적으로 교신했어. 광주까지는 잘 갔다는 거야. 사실 목포에서도 733편과 교신을 했었어. 거의 다 왔다는 거지. 그때가 오후 3시 37분, 도착 직전이었어. 기장과 관제사의 교신 내용은 이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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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목포 관제탑, 세븐 쓰리쓰리(733) 리빙 스케이트"
목포공항 관제사: "세븐 쓰리 쓰리(733), 리포트 포(Four) 디엠이(DME)"
기장: "지상 바람 조건은 어떻습니까?"
목포공항 관제사: "바람110도 방향 7노트로 붑니다"

DME(거리 측정 전파 장치)는 항행 중인 항공기에 전파를 이용해서 거리 정보를 연속적으로 보내는 장치로, 항공기와 지상과의 거리를 뜻해. 733편은 위치도 보고하고, 지상 날씨도 체크하며 정상적인 착륙 절차를 밟았어. 그리고 2분 50초 뒤인 3시 41분. 관제사가 733편을 다시 호출했어. 현재 위치가 어디냐고 물었지만 응답이 없었어. 관제사는 반복해서 호출했어.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응답이 없어.

처음에는 그냥, 다른 공항으로 회항을 하는 중인가 싶었대. 공교롭게도 그날 목포 날씨가 아주 안 좋았거든. 그럴 땐 보통 광주로 회항을 한대. 목포 관제사의 요청을 받고, 광주 관제사가 733편을 호출했어. 그런데 여전히 무응답이야. 레이더 화면을 체크해 봤는데, 아무리 봐도 733편 비행기가 안 보여. 관제사들은 비상 주파수로 계속 733편을 호출했어. 하지만, 조용할 뿐이야.

733편의 대답 없는 시간은 점점 흘렀어. 결국 12분 뒤에 '항공기 실종'이란 판단이 내려졌어. 승객 104명, 기장 부기장 포함한 승무원 6명. 총 110명을 태운 비행기가 감쪽같이 사라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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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는 물론, 정부, 경찰, 육해공군까지 전부 비상이 걸렸어. 도대체 733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피랍이나 납치라도 당했다면, 납치한 쪽에서 연락이 오겠지. 그런데 그런 연락이 없어. 그럼 추락한 걸까? 비행기가 추락했다면, 세상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잖아. 당연히 목격자 신고가 들어왔겠지. 그런데 화재 신고조차 없어. 그럼 해상에서 추락했나? 비행기가 바다에 떨어졌다면 목격자가 없을 수 있지. 그래서 해군이 헬기를 동원해서 목포 앞바다를 중심으로 수색을 시작했어. 하지만 시간당 30~50mm의 강한 비가 내리고, 바람도 강해. 헬기 수색이 쉽지 않아. 모두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그 시각, 한 시골 마을에, 기묘한 일이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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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천마을. 목포랑 가까운 작은 시골마을이야. 장마철이라 마을 주민들은 집에서 담배잎을 엮고 있었어. 담배농사를 많이 짓던 동네야. 그날따라, 천둥소리가 유난히 컸대. 다행히 늦은 오후에는 비가 좀 잦아들었어. 마을 주민 한 분이 밭으로 향해. 날씨는 우중충하고, 분위기도 왠지 으스스해. 바로 그때, 저기 멀리 뿌연 안개 속에서 뭔가가 조금씩 다가와. 웬 젊은 남자야. 다리를 절룩이며 걸어오는데 자세히 보니 얼굴에 피가 철철 흐르고 있어. 이게 사람이야, 귀신이야. 너무 놀라서 손에 든 바구니를 내동댕이 쳤어. 이 피투성이 남자가 뭔가 말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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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 모판을 비 온 다음에 싹이 났는가 짚으로 덮어 놔서 그걸 걷으러 갔는데 '비행기에서 떨어져서 내려온다' 하니까. 뭔 비행기에서 떨어진 사람이 살아서 내려오는 것이 이상하다 생각하고 대꾸를 안 했대요. 날씨는 우중충하고 운해 끼고 비가 오니까. 이상한 사람인가 보다 하고 그냥 뒀는데…"
-천용주, 마천마을 주민

비행기가 추락한 것도 믿기지 않는데, 추락한 비행기에서 살아서 제 발로 걸어 내려왔다? 그래서 미친 사람이거나, 간첩이라 생각하고 다들 피했대. 남자는 마을로 들어와서 다시 자초지종을 설명했어. 저 산에 비행기가 추락했고, 두 시간 정도 산을 헤치고 내려왔다고. 그러니까 빨리 구조신호를 해달라고.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밝혔어. 상사 대신 목포행 비행기를 탔던, 그 김현식 씨였어.

얘기를 들은 마천마을 주민은 마침 파출소에서 근무 중인 방위병이었어. 얼른 달려가서 신고했지. 유난히 컸던 천둥소리가, 알고 보니 천둥소리가 아닌 비행기가 산에 추락하는 소리였어. 이때까지, 군부대도 경찰도 정부도 비행기의 행방을 몰랐어. 그런데 이 마천마을 사람들이 가장 먼저 알게 된 거야. 아시아나 733편의 추락이 확인된 순간이야.

▲ 생존자를 구하라, 민간 구조작전

마천마을 주민들은 신고 후, 직접 구조작업에 나서기로 했어. 신고는 했지만 마을이 워낙 외진 곳이고 날씨도 안 좋으니, 구조대가 오려면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어. 김현식 씨 같은 생존자가 있다면, 마냥 앉아 기다릴 수 없잖아.

비행기가 추락한 마천마을의 운거산은 높이 320m 정도로 그렇게 높지는 않은데 가파른 곳이야. 게다가 길이 없고 숲이 우거졌어. 길은 험하고 비는 오고, 정확한 추락 지점도 몰라. 또 비행기 폭발 위험도 있어. 자칫하면 구하러 간 사람들도 위험해질 수 있어. 하지만 마천마을 사람들은 두 번 생각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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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냥 바로 올라갔죠 뭐. 그때 슬리퍼 신고도 막 그냥 번개같이 그때만 해도 젊기도 하고 번개같이 올라갔지 내가. 뭐 (비행기가) 폭발할까 어쩔까 그런 위험성이 있으니까 우리들은 그것도 모르고 가서 구출만 그것만 신경 썼지. 사람이 다쳤다는데 누가 가서 안 쳐다보고 뭘 안 하려고 하겠어요? 다 너 나 할 것 없이 다 사람이 어디서든지 인지상정이지 그것이."
-장수익, 마을 주민

주민들은 우거진 숲을 헤치기 위해 저마다 손에 낮을 들고 산을 올랐어. 30분쯤 올라갔을까. 이상한 냄새가 나. 비행기에서 샌 연료 냄새야. 폭발 위험성이 있으니 서로 "담배들 피우지 말아요"라고 말하며 주민들은 조금 더 산을 올랐어. 그리고 목격한 광경은 너무도 참혹했어.

"안개가 껴 있으니까 앞을 잘 못 보잖아요. 멀리를 못 보니까. 근방에 다 가서야 현실을 볼 수 있었어요. 비행기가 세 동강이 났던 모양이에요. 랜딩 기어는 정상에 있었어요. 정상에 있었는데, 거기에 부딪혀서 랜딩 기어가 거기 떨어지고, 그래서 거기 튕겨 나가서 사람들이 나무에 걸리고 돌아가셔서… 말도 못 하죠. 처참한 광경… 생생한데, 생각하기가 싫어요."
-천용주, 마천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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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곳곳에 떨어진 비행기 잔해와 유류품들. 비행기는 크게 동체가 세 동강이 났어. 추락 충격에 좌석들도 밖으로 튕겨져 나왔어. 온갖 짐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비행기 동체에 끼어 있는 사람,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도 있었어. 보고도 믿기 힘든 참혹한 현장. 그리고 아기를 꼭 껴안고 있는 엄마들이 보이는데, 안타깝게도, 사고 현장에서 사망한 거 같아. 기장과 부기장도 모두 조종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어.

생존자가 없는지 둘러보는데, "살려주세요. 저희 아이들 좀 구해주세요"라며 한 여자가 죽을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어. 여기저기 생존자들이 눈에 띄어. 일단 아가들부터 구하자며, 의자에 낀 아이들을 빼내고, 고꾸라져 정신을 잃은 사람들의 자세를 바로 눕혔어. 꺼내고 눕히긴 했는데, 얼른 병원으로 옮겨야 해. 그런데 추락 지점은 운거산의 7부능선이야. 구급 차량이 접근할 수 없어. 한여름이긴 해도 비를 두 시간 넘게 맞았고, 출혈이 심한 사람들도 많아. 한시가 급해.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주민들은 산에 있는 나무를 베어 긴 장대를 만들고, 옷을 벗어 장대 사이에 끼워 묶었어. 들것을 만든 거야. 산에 있는 나무와 옷을 벗어 만든 들것. 긴박한 순간에 발휘된 마을 사람들의 기지였지. 근데 산이 너무 가파라서 한 팀이 아래까지 쭉 들고 가기는 어려워. 마을 분들이 군데군데 서 있으며, 이 들것을 릴레이 형식으로 내려 보냈대. 부상이 심하지 않은 아이들은 아주머니들이 업고 내려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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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먹은 남자애를 하나 업고 오면서 나보고 '아줌마 업고 내려가세요' 그러면서 업혀주길래 업고 내려왔잖아 여기까지. 세 살 먹은 아기. 그래서 내 일바지에다가 발 넣어서. 이쪽 넣고 이쪽 넣고 해서 내가 업고 내려왔어. 그래서 살았는가 죽었는가 모른다고. 내 마음이 항상 그래요 그 아기..."
-양순금, 마천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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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짜리 업고 내려왔다고. 자기 엄마하고 형하고 셋이 왔대. 자기 형은 죽었고 엄마는 형 옆에 있대. 그때는 추웠지 비가 왔으니까. 여름옷을 입고 와서 추우니까 내가 업고 내려왔지."
-김수임, 마천마을 주민

문제는 중상자 구조야. 아이를 꼭 안고 있던 한 엄마가 있었는데, 아이를 무사히 구한 뒤에 엄마를 보니 부상이 너무 심해. 그때 마침 현장에 해군 헬기가 도착했어. 그런데, 큰 문제가 있어. 군 헬기다 보니, 구조 장비는 없고, 로프만 있는 상황이야. 급한 대로, 군인과 마을 사람들은 아이 엄마를 로프에 단단히 고정시켰어. 그리고 헬기를 올렸어. 엄마까지 무사히 구조에 성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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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했어. 밤이 찾아온 사고 현장. 구조하는 와중에,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었어. 과다출혈에, 차가운 비를 계속 맞았으니, 오래 버티지 못한 거야. 그래도 마천마을 사람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어. 119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생존자 구출은 거의 끝난 상태였대. 위험에 망설이거나 조금이라도 지체됐었더라면 놓칠 뻔했던 골든타임. 그렇게 주민들은 무려 44명의 생명을 구했어.

▲ 생존자 44명, 안타까운 죽음들

그날 밤 저녁 뉴스에 본격적으로 사고 소식이 보도되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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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과 승무원 106명을 태우고 서울에서 목포로 가던 아시아나항공 국내선 여객기가 전남 해남에서 추락했습니다. 현재 33명의 생존자가 확인되고 73명의 생사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 출장 갔던 남편이 이 비행기 타고 온다고 했는데, 효도 한 번 하겠다고 기차 타겠다던 아버지한테 굳이 비행기 표를 사드렸는데… 저마다 사연이 있는데 지금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야. 가족들은 생사 확인을 위해 저마다 목포로 향했어.

나라, 준영 아빠는 목포로 가던 차 안에서 내내 라디오 뉴스에만 귀를 기울였어. 추락이 확인됐다는 뉴스에 세상이 무너졌다가, 생존자가 있다는 소식에 한줄기 희망이 생겨. '제발 살아만 있어 다오' 손을 벌벌 떨면서, 생존자 명단 발표 뉴스를 들었어. 한 명씩 이름이 호명됐어. 엄마 양미화, 아들 신준영, 딸 신나라 이름이 제발 나와라…

"이 시간 현재까지 확인된 생존자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목포시 한국병원에는 6살 신나라 양이 입원해 있습니다…. (중략)… 인천시에 사는 8살 신준영 군과 김하정 씨. 그리고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1명 등 모두 10명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자 수는 조금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기적이야. 아들과 딸, 둘 다 살았어. 근데 아내 이름이 없어. 다행히 아내도 살았어. 구조는 됐는데, 소식이 늦게 전해진 거야. 얼마나 다쳤는지는 아직 알 수 없어. 그래도 살았으니 감사할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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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생사 확인이 됐다고 하고 지금 해남병원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잠깐 정신을 잃었었던 것 같아요. 그때 너무 긴장했고 막 절박한 심정에 간절했고, 온 에너지를 거기다 다 쏟고 생사가 확인됐다고 듣는 순간 잠깐 혼절 아닌 혼절이라고 그럴까요? 잠깐 몇 분 걸렸다고 그러더라고요."
-신경재, 나라 준영 아빠

사고 현장에서 아이들부터 구해달라고 힘겹게 소리치던 엄마, 바로 나라와 준영이의 엄마 양미화 씨였어. 아이들이 헬기에 실려가는 걸 본 뒤에 다시 정신을 잃으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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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만 나요. (승무원이) 안전벨트 체크하러 다녔던 기억만 나고. 그 이후로 제가 산에 누워 있었죠. 사람들이 막 소리 지르면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때 제가 정신이 들었어요. 제가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하는 말 한마디가 있는데, '라이터 켜지 마라'고 어떤 아저씨가 큰소리로 '라이터 켜지 마세요!'하고 올라왔어요. 그 소리에 제가 정신이 들었거든요."
-양미화, 나라 준영 엄마

부상자들은 10개 병원으로 뿔뿔이 흩어졌어. 목포, 해남, 진도, 광주 등 환자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흩어져 이송시켰어. 나라네 세 식구도 각각 다른 병원에 실려갔어. 목포에 도착한 아빠는, 톨게이트에서 가장 가까운 아들이 있던 병원부터 찾았어. 아들 준영이는 다리 골절이 심했지만,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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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 들어가서 아들한테 '이만저만하니까 엄마하고 나라하고 보고 올게' 그래서 잠깐 5분도.. 한 2, 3분 (아들) 얼굴만 보고, 이제 거기서 다시 둘째가 있는 기독병원으로 또 갔어요. (딸이) 아빠가 오니까 아빠 목소리를 듣고 이렇게 아빠를 쳐다볼 수는 없었어요. 눈을 마주치고 할 수는 없는데 그래서 내가 침대 옆에 가서 밑으로 해서 눈을 마주치면서 '아빠야' 그러고 하니까. 딸이 '엄마는? 오빠는?' 그러고 묻더라고요. 물으면서 그 수도꼭지를 마지막 잠그면 물이 주르륵 흐르잖아요. 두 눈에서 그렇게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딸이."
-신경재, 나라 준영 아빠

다행히 나라는 오빠만큼 부상이 심하진 않았어. 아빠는 6살 딸을 남겨두고,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갔어. 그런데, 아내의 상태가 아주 안 좋아. 하반신 압박 골절이었어. 아내는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 수도 있대. 그래도 감사했어. 세 가족 모두 살았으니까.

기차로 목포로 왔던 3살 민구 아빠. 다행히 아내와 아들이 생존자 명단에 있었어. 민구는 많이 다치지도 않았어. 정말 다행이지. 그런데 아내가 중상이야. 사실 733편 추락사고 생존자들 중에는 민구 엄마 김미정(가명) 씨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아.

"그 양반은 어떻게 움직이질 못해요. 자기도 허리가 아프니까 손을 못 대게 하고. 제일 나중에 그 사람을 (헬기로) 옮겼는데 방법이 틀리게 올린 거 같아요."
-천용주, 마천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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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헬기 로프에 묶여 구조된 분 있지? 그분이 바로 김미정 씨였어. 이 장면이 보도가 많이 됐었어. 근데 구조 방식에 문제가 있었어. 구조 장비가 없었고 로프만 있었는데, 목과 허리를 단단히 고정하지 않았던 거야. 척추신경이 손상될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거지. 김미정 씨는 하반신 마비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받았어. 추락으로 인한 충격이 1차적 원인이긴 하지만, 조금 더 전문적으로 구조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 구조에 나선 마을 분들도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많이 무거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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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편에선 너무도 슬픈 통곡 소리가 들려와. 가족의 죽음을 확인한 유가족들의 통곡. 불과 몇 시간 전에, 잘 다녀오라고 인사한 가족들. 귀하게 보낸다고 비행기에 태워 보낸 가족들이.. 죽어서 돌아왔어. 당시에 현장 유류품 가장 많았던 건, 피서 용품들이었대. 여름휴가철, 가족단위 탑승객이 많았어. 큰집, 작은집 합쳐서 9명의 가족들이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6명이 숨진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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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족이 운영하던 가게에는 '하계휴가. 7월 26일~ 7월 31일'이라 쓰인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어. 휴가 첫날 함께 탔던 목포행 비행기에서, 비극이 벌어진 거야.

▲ 뒤바뀐 죽음

가눌 수 없는 슬픔 속에, 다들 가족을 찾았어. 그런데 한 남자는 딸을 찾지 못했어. 비행기에서 나라네 앞줄에 앉았던 가족, 엄마와 6살 아들, 4살 딸이 탔던 승아네. 안타깝게도 아내와 아들은, 둘이 꼭 안은 채 시신으로 발견됐어. 그런데 딸 승아의 이름이 생존자 명단에도 사망자 명단에도 없었어. 승아아빠는 승아를 찾지 못했지만, 만약 하늘나라에 갔다면 엄마, 오빠와 함께 묻어주고 싶은 마음에 엄마와 오빠의 영정 옆에 승아의 영정사진도 나란히 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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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빠는 다시 승아를 찾기 위해 사고현장, 대책본부를 모두 헤맸어. 혹시 살아서 어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까 싶어, 아빠는 병원 한 곳 한 곳을 뒤졌어. 3일 동안 9개 병원을 다녔는데 없어. 이제 남은 병원은 한 곳. 중환자들이 주로 입원해 있던 전남대 병원만 남았어. 그런데 중환자실에 조그만 아이가 한 명 누워 있었어. 의식불명상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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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도 추락사고의 부상자래. 그런데 왠지 그 아이한테 계속 눈길이 가는 거야. 아빠는 이 아이의 병상에 붙은 이름표를 확인했어. 딸 이름은 승아인데, 임보경이라는 이름이야. 그리고 이 아이 옆에는 3일째 간호 중인 다른 아빠가 있었어. 승아 아빠는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해. 미련을 떨칠 수가 없어. 자기 자식이면 한눈에 알아봐야 하지만, 아이는 부상 때문에 머리 부분을 많이 다쳐서 눈까지 붕대를 감고 있었어. 승아 아빠는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어. 이 아이의 붕대를 한 번 풀어볼 수 있겠냐고. 보경이네도, 엄마와 보경이, 오빠가 비행기에 탔어. 엄마는 사망했고, 보경이 아빠는 그나마 두 아이가 살았다는 사실에 힘을 내고 있었어. 이런 상황에, 저 아이가 자기 딸 같다는 사람이 나타났어. 기가 막힐 노릇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경 아빠는 승아 아빠의 부탁을 들어줬어. 조심스럽게, 아이의 붕대를 풀기 시작해.

꼬꼬무

승아 아빠가 아이를 이리저리 살피고 쓰다듬어봐. 정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거 같아. 아무리 봐도, 내 딸 승아가 확실해. 이마에 흉터까지. 근데, 그 얘기를 조심스럽게 하니, 보경이 아빠가 자기 딸이 맞다고 발끈하지. 두 아이가 나이도 비슷한 데다가 체구, 얼굴까지 많이 닮았어. 게다가 지금 다쳐서, 평소와 다른 모습이라 잘 구분이 안 가. 아이가 의식이라도 있어 깨어나 아빠라고 부르면 알 텐데. 지금은 깨어날 기미도 없어. 일단 혈액형 검사부터 했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솔로몬의 심판이 시작돼.

그런데 검사를 앞두고 한 아빠가 입을 열어. "아무래도 제 딸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보경이 아빠였어.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을 수도, 내 아이로 착각했을 수도 있었겠지. 중환자실에 있던 아이는, 보경이가 아니라 승아였어.

사실 근처 다른 병원에서는 숨진 여아 한 명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었어. 승아 아빠, 보경이 아빠도 그 아이를 이미 봤어. 둘 다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한 거지. 보경이 아빠가 다시 숨진 그 아이를 만나러 가. 찬찬히 아이 얼굴을 들여다본 후, 흐느끼기 시작해.

"보경아… 아빠가 몰라 봐서 미안해. 보경아.. 우리 아기.."

처음 봤을 땐 경황이 없었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앞서서 아이를 자세히 살펴볼 수가 없었대. 그리고 옆에 있던 승아 아빠는, 보경이 아빠의 손을 꼭 잡아줬어. 가족을 잃은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3일 만에 딸을 찾은 승아 아빠. 가장 먼저 아내와 아들의 장례식을 치렀어. 한참 동안 의식을 찾지 못해 애태웠던 승아는 9월이 돼서야 의식을 찾았어. 사고가 나고 두 달 만이야. 그리고 이렇게 말했대. "아빠, 엄마하고 오빠 어디 갔어?"라고. 그렇게, 유달리 많은 비가 왔던 1993년의 여름이 지나갔어.

▲ 추락의 비밀

그럼 목포로 향하던 아시아나 733편은 왜 추락했을까. 추락 지점인 운거산은 목포공항 착륙 경로상에 있어. 그 비밀을 담고 있는 블랙박스가 무사히 수거됐어. 이게, 블랙박스에 기록된 733편의 착륙 과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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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선이 1차 착륙 시도, 노란색 선이 2차 착륙 시도야. 1, 2차 착륙 시도 모두, 활주로 앞에서 다시 올라간 733편. 이런 걸 항공 언어로 '고 어라운드(Go Around)'라고 해. 항공기가 여러 요인으로 인해 정상적인 착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착륙을 포기하고 재상승하는 거야. 당시 733편은 기상 상황이 안 좋아서 착륙을 포기하고 다시 올라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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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너무너무 많이 오니까. 안개 때문에 비행기가 출렁거리니까. '안전벨트를 꽉 매주십시오' 그러길래 다들 안전벨트를 다 매고 있는 상태였는데 목포 기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공중에 5분 동안 떠 있었어요 비행기가. 한참 있다가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착륙하겠습니다' 얘기하고 내리는 동시에 뭔가 막 바람이 불고 순간적으로 뭐가 어떻게 된지 모르겠는데 순간적으로 비행기가 내 앞에서 완전히 쪼개지는 거예요 바로 앞에서."
-사고 생존 승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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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갯속으로 갑자기 들어가더구먼요 구름 속으로. 갑자기 그 순간, 그 순간이 얼마 되지도 않아요. 나무를 스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런 다음에 '꽝' 하고 그렇게 된 거죠."
-사고 생존 승객

733편이 착륙할 타임에, 목포 지역에는 초당 1mm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대. 이 정도면 활주로도 잘 안 보였을 거야. 그런데 733편은 착륙을 시도했어. 이 빨간선이 3차 착륙 시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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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차에 비해 고도가 급격히 내려가지. 특히 이 운거산을 넘고 나서 고도를 낮춰야 하는데, 비행기는 운거산을 향해서 내려왔어. 기체 이상일까? 아니면 조종사의 실수? 이 비밀을 풀 열쇠는 바로, Cockpit Voice Recorder(조종실 음성 기록 장치)야. 기장과 부기장의 대화가 고스란히 녹음돼 있어. 부기장이 착륙 절차가 완료됐다고 보고하는 부분부터 들어볼게. 추락 50초 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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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장: Landing check list complete sir(체크 리스트 완료)
기장: Alright Thank you(좋아, 고마워)
기장: Flaps 30 degrees green light(플랩30, 그린라이트 확인)
부기장: Yes, Sir(알겠습니다)
기장: 다 지나갔어. 기어다운, 확인, 플랩, 맥시멈 브레이킹에 놓아야지 되겠고. 안 되겠다, 활주로가 미끄럽겠지
부기장: 지나간 지… 지나간 지 얼마 안 돼 가지고…
기장: 오케이.

이 뒤에 이어진 말은 "오 맙!" 눈앞에 나타난 산을 목격한 기장의 짧은 비명으로 녹음을 끝이 났어. 이 대화에서 주목할 점은 기장이 말한 '다 지나갔어'라는 부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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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에서 기장은 운거산을 넘어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그러니까 산이 이렇게 있는데 사실은 이쪽 (산 뒤쪽)에 있으면서. 구름이 끼고 안 보이니까, 이미 산을 넘어온 걸로 생각하고 계속 착륙을 해서 내려갔는데 비행기는 그때 이곳(산 뒤쪽)에 있었기 때문에. 이쪽(산)에 부딪히면서 이렇게 나간 상황입니다."
-정종환, 당시 교통부 항공국장

비구름과 안개 때문에, 운거산을 이미 지나갔다고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아. 기장은 활주로에 다 왔다고 생각하고 고도를 낮췄어.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건 활주로가 아니고 산이였던 거지. 급히 출력을 최대치로 올리고 조정바를 최대로 당겼지만, 이때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단 4초. 비행기는 19.5m 정도 다시 상승했지만, 산 정상을 넘지 못하고 1차 충돌, 그 후 봉우리를 따라 넘으면서 2차 충돌. 그리고 굴러 내려가면서 비행기는 완전히 파손이 됐어. 그나마 나무들이 완충작용을 해준 덕에, 생존자가 있었어. 앞부분이 먼저 충돌해서 앞 좌석 승객들이 많이 사망했고, 상대적으로 뒷좌석 승객들의 생존률이 높았어. 뒷좌석에 앉은 분들은 절반 정도가 살았어.

기억나지? 아빠가 앞자리를 요청했는데 뒷자리를 배정받은 나라네. 그렇게 달라진 운명이, 준영이와 나라, 엄마까지 모두 살렸던 거야.

55일간 이뤄진 사고 조사의 최종 결과는 '지정된 고도를 지키지 않은 채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한 조종사의 실수로 인한 사고'로 나왔어. 그런데 기장은 8000시간 비행 경력의 베테랑이었어. 단순히 악천후 때문에 이런 실수를 한 걸까? 지금부터 이 사고의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볼게.

▲ 사고의 진실

먼저 목포공항 이야기를 해볼게. 이 공항은 원래 해군 군공항으로 쓰다가, 민항기 운항을 시작한 지는 1년 정도 됐어. 공항 활주로가, 길이는 1500m 폭은 30m로, 짧고 좁아. 사고가 난 733편의 기종은 보잉 737-500. 이 비행기가 착륙 시 필요한 최대 착륙 거리는 1417m야. 그러니까 이 공항에서는 여유 길이가 80m 밖에 안 나와. 게다가 활주로 폭은, 비행기의 폭보다 단지 1.1m 넓을 뿐이야. 공항 크기가 표준치를 겨우 넘길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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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이 아니야. 목포 공항은 항공기의 착륙을 도와주는 ILS 장치가 없어. ILS(Instrument Landing System)은, 공항 부근의 지상시설로부터 지향성 유도전파를 발사해 시야가 나쁠 때에도 안전하게 활주로까지 유도하는 계기착륙 시스템이야. 지상에서 비행기로 전파를 쏴서 활주로에 정밀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돕는 착륙 유도 장치야. 비행기의 고도가 너무 낮다, 위치가 틀어졌다,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 거지. 악천후 상황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어. 그런데 목포공항 주변엔 산이 너무 많아서, ILS 설치가 어려운 조건이었어.

악천후에 공항 상황도 안 좋으면 다른 곳으로 회항을 할 수도 있잖아? 그런데 왜 기장은 세 번이나 착륙하려고 했을까. 얄궂게도, 서서히 날이 개고 있었어. 한 번만 더 시도하면, 될 거 같았던 거야. 만약 회항을 했다면, 승객들의 원성이 자자했을 거야. 날도 개는데 왜 목포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갔냐고. 항공사 입장에선 이런 상황이 반가울 수가 없지. 승객들의 숙박비, 대체 교통편 비용 등 경비 보상 문제가 생기니까.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 항공사들은, '정시운항률' 경쟁을 벌이는 분위기였어. 이 경쟁의 최전선에 있던 기장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정시 착륙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있었지. 게다가 당시 기장들은 일정도 빡빡했대. 늘어나는 항공 수요에 비해 파일럿 수가 모자랄 때라서.

이 사고 이후에야 조종사 간 확인하고 조언하는 절차를 만들었어. 아무리 우수한 기장이라도 실수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한 거지. 그리고 항공 안전 시스템을 개선하고 운영 조직도 재구성했어. 그리고 목포 공항은 더 이상 민간용으로는 쓰지 않기로 했어. 군 전용 비행장으로만 사용하기로 한 거야. 많은 사람들의 아픔 위에 안전을 위한 돌탑들이 하나씩 쌓였어.

▲ 사고 그 후

사고가 난 지 어느덧 30년이야. '꼬꼬무'는 생존 승무원, 처음 신고하신 탑승객, 마천마을 방위병 등 여러분들께 연락을 드렸어. 승무원들 중에는 사고 직후 일을 그만두신 분들이 많았어. 그리고 그때 일을 떠올리면 트라우마로 마음이 아직도 힘들다는 분들이 많았어.

준영이와 나라는 반년 넘게 병원 생활을 했어. 그리고 엄마는 1년 이상을 침대에만 누워 계셨대. 다행히 하반신을 못 쓸 수 있다고 했는데, 기적적으로 완치가 됐어. 그리고 어느 해 여름방학, 세 사람은 여기를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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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마을이야. 끔찍한 사고의 현장이었지만, 자신들을 구해준 기적의 마을이기도 하잖아. 꼭 다시 방문하고 싶었대. 이 분들에게 매해 7월 26일은 끔찍한 악몽의 날이자 다시 태어난 날이야. 하지만 그날이 많은 사람들의 기일이라는 점을 늘 마음 아프게 기억하고 계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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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죠. 저희들이 사람이 그렇게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잖아요. 공항에서 '다녀올게요' 하고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영원히 못 볼 수도 있었잖아요. 남편이 출근할 때 절대로 싫은 소리 해서 내보내지 말아야 되겠다… 이 헤어짐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게 저한테 엄청 두려움이고 트라우마고 그랬던 거 같아요."
-양미화, 나라 준영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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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직도 기억나는 게, (병원 퇴원하고) 학교 가자마자 그 학기에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이 다 저를 반장으로 뽑아줘서 그랬던 기억이 있고요. 제가 지금 가지고 혹은 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다 제가 이뤄낸 게 아니라 다 허락해 주셔서 제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라는 거를 조금 더 명확하게 저 스스로 깨닫고 그런 부분을 항상 좀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신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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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부모님이 이제는 그거 네 인생 네 거 아니고 다 새롭게 받은 인생이기 때문에 함부로 살면 안 되고 세상에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뭔가 내가 할 수 있었으면 이런 생각을 하고 기도도 합니다."
-신나라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1100만 분의 1이라고 해. 그렇다면, 비행기 추락 사고를 겪고도 살아남을 확률은 이것보다 훨씬 더 낮겠지. 44명의 생존자들에게는 기적이 일어난 거야. 망설임 없이 구조하러 와준 마천마을 사람들은 이 기적을 함께 만든 주인공들이야. 비행기 추락 사고라는 이 엄청난 일에서 생존자가 많았던 건, 이 마천마을 주민들 덕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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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퀴고 부서졌던 운거산 나무들은 지금은 사고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다시 푸르르게 변했어. 상처 위에 새롭게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면서 상처를 치유해 간 거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은 기억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억에 대한 의미가 바뀌는 과정이라고 해. 너무나도 끔찍한 사고를 당했지만, '난 어떻게든 살아남았고, 난 잘 견뎠다'는 의미를 새롭게 부여해야 한대. 우리는 누군가의 상처에 귀 기울이고 다독여 줄 수 있는 사람인 걸까. 다시 살아난 나무들처럼,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트라우마가 조금 더 치유되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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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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