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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잠들기 전 주문, 눈 뜨면 도착하는 '새벽 배송'이 불편해졌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림자 노동…짧은 새벽 배송 동행기

배송 기사의 물건 파손 시 연락 부탁한다는 메시지

발단은 문자메시지 한 통이었습니다. 신선 식품 새벽 배송을 이용하는 한 소비자에게 담당 배송 기사가 파손 물품이 있으면 본사에 신고를 하지 말고, 자기에게 따로 알려달라는 문자를 보낸 겁니다. 보도된 것처럼, 계란 하나가 깨져도 계란 하나 값이 아니라 주문 금액의 반액에서 전액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란 걸 그제야 소비자도 알게 됐습니다. 통보도 갑작스러웠습니다. 협력업체는 기사들에게 지난 석 달 치 배상액을 일괄 차감하고 기사들에게 임금을 지급했습니다. 상세 파손 내역을 공개해달라는 기사들의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 기업은 평소 '셀프 환불 서비스'를 강조해왔는데, 소비자가 '양심에 따라' 파손된 물품과 수량을 입력하고 그에 따른 돈을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그동안 제보자는 계란이 두 알 정도 깨졌을 때 보통 1천 원이 안 되는 금액을 환불 받아왔는데 기사님들한테 이런 고충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평소에 새벽 배송을 편리하게 이용해 오던 터라 제보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얘기해줄 수 있는 기사를 수소문해야 했는데, 많은 기사들이 노출을 꺼렸습니다. 일단 고용 형태가 불안했습니다. 새벽 배송 기사들은 오아시스마켓에 직고용 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외주 협력업체 소속이기 때문에 행여나 자신이 회사에 불리한 얘기를 하면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이 컸습니다. 설득 끝에 한 기사님의 새벽 배송 길에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달리기 선수처럼 뛰고 또 뛰고…오전 7시 전 배송 마쳐야

기사님과 취재진이 만난 시간은 오전 6시쯤. 통상적인 새벽 배송 마감은 7시이기 때문에 이 시간대가 가장 바쁘다고 했습니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하루 40개에서 많게는 70개를 배송합니다. "취재진이 저를 따라 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라던 기사님의 말은 취재 동행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바로 수긍이 됐습니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새벽 배송 기사는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내내 상자를 들고 뛰어다녔습니다. 새벽 배송의 경우, 도착 시간이 1분이라도 늦으면 고객 민원이 접수될 수 있고 그런 경우 1만 원을 기사가 배송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10분 정도는 봐준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배송 지연으로 인한 민원은 다행히(?) 접수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출차가 늦어지고 물량이 많은 날에는 그래서 1초가 아까울 지경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기자가 동행한 날에도 '눈 깜짝할 사이에' 이 아파트에서 다른 아파트로, 이 동에서 저 동으로 오갔는데 취재진이 쫓아가다가 몇 번을 놓쳤을 정도입니다. 새벽엔 해가 그리 뜨겁지 않았는데도 금세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오아시스마켓 배송 기사

이렇게 눈코 뜰 새 없는 배송 환경은 묵과한 채, 계란 등 파손 품목에 대한 책임을 기사에게 묻는다고 하니 기사들의 분노가 폭발한 겁니다. 이 업체는 '친환경', '프리미엄' 포장을 앞세워서 계란 등 깨지기 쉬운 품목에서도 에어캡 같은 포장을 제외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분리 수거 편의와 환경을 생각한 정책이라는 건데, 대신 협력업체에 건당 배송 단가를 100원 올려서 파손이 최소화되도록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업체는 설명했습니다.

오아시스마켓은 국내 새벽 배송 기업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는 기업입니다. 사실 취재 내내 오아시스마켓 측의 고민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새벽 배송의 과포장 문제는 여러 차례 지적되어 왔고, 이걸 해결해보려고 나름대로 소포장 제도를 도입한 거란 기업의 고민에도 공감이 갔습니다. 또 유정란 등 계란을 주력 상품으로 파는 신선 식품 기업 입장에선 무엇보다 파손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겁니다.

오아시스마켓, 배송식품

누군가를 갈아 넣는 노동의 결과, '새벽 배송'

그럼에도 파손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이 과연 새벽 배송 기사들에게 더 큰 책임을 묻는 방식밖에 없었는지 물음표가 남습니다. 다른 새벽 배송업체들 역시 일하는 환경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물품이 파손되면 배송 기사의 고의성 입증이 쉽지 않아 책임을 묻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특히 계란이나 두부처럼 깨지거나 터지기 쉬운 신선 식품의 경우 더욱이 애초 출하 단계에서 포장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은 누구든 공감할 만합니다.

잠들기 전 손가락만 몇 번 까딱하면 다음날 눈 뜨기도 전에 현관문 앞까지 도착해 있는 새벽 배송은 누군가 뜬 눈으로 밤새 몸을 움직였기에 가능했습니다. 대부분 투잡인 배송기사들이 생계의 최전선에서 '잠과 몸을 갈아 넣는 노동'. 이것이 제가 아주 짧게 훔쳐본 새벽 배송의 민낯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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