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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그알' 소아청소년과 의료 대란…"아이들 건강하지 못한 국가에 미래는 없다"

그알
소아청소년과 의료 대란을 막을 대책 없나?

24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이하 '그알')에서는 '열 번의 절망과 80분의 표류 - 정욱이는 왜 지키지 못했나'라는 부제로 소아청소년과 의료 대란에 대해 조명했다.

지난 5월 7일 119 상황실에는 갑자기 쓰러진 아이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다급한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이에 구급대는 급히 출동했고,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

다섯 살 정욱의 비극은 사망 하루 전 시작됐다. 5월 6일 늦은 밤 정욱이의 체온은 40도까지 올라갔고 이에 어머니는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이송된 정욱이에게 해당 병원은 진료를 위해서는 4-5시간 대기를 해야 한다고 했고, 구급대원이 연락한 여러 곳의 병원에서는 장시간 대기와 소아진료 불가를 이유로 정욱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총 9곳에 문의 후 입원은 불가능하고 진료만 가능하다는 조건으로 마지막 병원에 갔다. 그리고 해당 병원에서는 정욱이의 병명을 '크룹', 즉 급성 폐쇄성 후두염으로 진단했다. 이는 감기 바이러스 감염으로 후두와 기관지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119 신고 후 여러 병원을 거치다 80여분 만에 의사의 진료를 받게 된 정욱이. 정욱이는 입원이 아닌 호흡기 치료만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부터 통증을 호소한 정욱이. 이에 어머니는 전날 진료했던 병원에 문의했다. 그러자 병원 측에서는 후두염은 입원이 필요할 수 있지만 해당 병원에서는 입원은 안 되고 진료만 가능하다고 했다. 진료라도 받기 위해 병원에 갈 채비를 한 어머니. 그런데 목이 이상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정욱이는 쓰러지고 말았다. 5분 만에 구급대가 도착했지만 아이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경찰은 예상하지 못한 죽음에 사인을 밝히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 부검 결과 정욱이는 후두덮개를 포함한 인후두점막이 부어올라 기도가 막혀 질식한 상황이었다. 전날 병원에서 진단받은 크룹이 바로 사망 원인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의료 인프라를 갖춘 서울에서 일어난 정욱이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정욱이의 죽음은 그의 아버지의 주장처럼 입원 치료만 받았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왜 아이를 지켜보고 치료해 줄 병원과 의사는 없었던 것일까?

5월 5일 어린이날 물놀이 후 갑자기 열이 올랐던 정욱이, 이에 가족은 가까운 경기도의 집 대신 서울의 외갓집으로 갔다. 의료 인프라가 더 잘 갖추어진 서울에 문을 연 병원이 더 많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정욱이를 진료한 병원에서는 감기로 진단했다. 당시 진료를 했던 의사는 하루 만에 아이가 사망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의사는 정욱이의 병이 사망할 병이 아니라며 서울시내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6일 밤 고열로 A병원을 가장 먼저 찾았던 정욱이. 당시 구급대원은 병원 측으로부터 4시간에서 5시간 대기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병원 측의 주장은 달랐다.

이에 119 관계자는 구급대원이 일지에 적은 문구로 보아 장시간 대기할 경우 악화될 정욱이의 상황을 걱정해 다른 병원을 빠르게 찾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당시 구급대원이 정욱이의 이송을 위해 문의한 병원은 서울 강북에 위치한 10개 대학의 응급실이었다. 한 곳에 두 번 이상 전화를 시도하기도 했고 총 16번의 전화 시도 끝에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았던 것이다.

취재 결과 인력부족으로 소아응급 진료를 밤 10시까지만 진행하는 곳이 다수였다. 정욱이의 입원을 문의한 시간은 밤 10시 31분으로 소아응급 진료가 불가능한 시간이었다는 것.

80분의 표류 끝에 호흡기 진료를 받은 정욱이, 증상이 호전될 때까지 총 3차례의 진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갑자기 정욱이는 쓰러져 다시 일어날 수 없었다. 하루 만에 아이를 잃고, 이유만이라도 알고자 전날 진료를 받았던 병원으로 향한 가족들. 이에 병원 측은 "직원이 입원이 안 되는데 진료만 된다고 했다는 것을 뉴스를 보고 알았다"라며 당시 다른 환자의 입원 진료는 진행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병원 측은 다른 주의 입원 불가가 이어지는 것으로 알았던 안내 직원의 착오였다고 밝혀 충격을 안겼다. 또한 당시 정욱이의 상태가 입원할 정도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해당 사건을 세상에 알린 의학 전문 조동찬 기자는 "연락한 10개의 병원 중에는 서울에 있는 소아 전문 응급센터가 3개 중 두 곳이 들어가 있었다. 서울 지역에서 소아 응급 상황에서 마지노선의 역할을 하라고 한 병원인데 안 된 거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그는 "지금 개선이 되지 않는다면 또 드러날 거다 비슷한 사건들이. 피해자는 있다, 그런데 가해자는 누굴까?"라고 물어 눈길을 끌었다.

장 중첩증 진단을 받은 아이와 함께 세종시에서 서울까지 온 보호자는 수술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세종시와 대전광역시에서도 거절당하고 서울까지 응급실 원정을 왔다고 밝혔다. 이에 보호자는 후진국처럼 나중에는 의사가 없어 죽는 아이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참담한 마음을 토로했다.

코로나 시국 때부터 소아 응급의 이송이 쉽지 않다는 구급대원들. 많은 병원들은 소아 담당 의사가 상주하지 않아 소아 응급 환자를 받을 수 없고, 이에 한정된 병원에서 소아 응급 이송이 가능한 곳을 찾으려 해도 그중 다수의 병원은 포화 상태라 이송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응급 의학과 의사들이 소아 응급 환자를 진료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소아 응급 전문의는 소아 진료 영역의 특수성 때문이라 지적했다.

그렇다면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27년간 아이들을 진단해 온 전북 어린이 병원 원장은 현재의 상황에 대해 "턱에 물이 여기까지 와 있다. 자칫 잘못하면 숨쉬기가 힘들어지는 상항이다"라고 했다.

해당 병원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총 6명. 이들은 세부 전공에 따라 외래 진료와 신생아 중환자실과 소아 중환자실을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이 중 25개의 병상을 365일 24시간 책임지는 교수는 단 한 명이다. 그리고 전공의를 가르치고 도움을 줘야 할 3, 4년 차 전공의는 아무도 없었다.

소아청소년과 김현호 교수는 "2, 3년 됐다. 이대로 가면 분명히 문제가 생길 거다는 생각을 했다. 19년도부터 전공의 지원율이 급감했다"라며 매년 4명씩 모집해 총 12명이었던 전공의가 현재는 1년 차 1명, 2년 차 2명으로 단 3명뿐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지원자가 줄었을 뿐 아니라 일명 전공의법으로 주 80시간 이상 근무 조건이 생기면서 부족한 인력으로 공백을 메우고 있었다. 이에 72시간에서 최대 96시간 연속 근무를 하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는 것.

올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에는 전국 67개의 병원에서 207명을 모집하였으나 단 33명이 지원했다. 2019년 80%였던 비율이 현재 16.6%로 급감한 것이다.

1년 차 전공의는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정신 나갔냐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평생 만나야 할 환자들로 아이들을 선택했다는 전공의는 후회는 없지만 이대로 후배들이 들어오지 않을까 봐 걱정이라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또한 부족한 인력으로 소아청소년과는 병원장까지 당직을 서야 하는 기이한 구조라는 것.

전북 어린이 병원 원장은 소아청소년과의 몰락이 비단 아이들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고 했다. 3차 의료기관인 상급 종합병원의 응급 의료 체계 붕괴는 2차 의료기관인 종합병원에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불러왔다.

새벽부터 진료 접수표를 뽑기 위해 부모들이 대기열을 만들고 있었던 것. 이른바 소아과 대란이었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환자에 아이를 찬찬히 살피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소아과 대란에 대해 코로나 시국 경영난으로 1, 2차 병원의 규모가 축소된 상황에서 지난 3년간 면역력이 약해진 아이들의 감염이 폭주하면서 심화되었다는 것. 결국 피해는 아픈 아이들과 부모들이 받았다.

정형준 의사는 앞으로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위험이 더 클 것이라 경고했다. 그는 "응급실에 소아청소년과 담당 의사가 없을 수 있다. 그러면 병원에 와서 그냥 누워있어야 한다. 그러면 응급실에서 사망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받지 않겠다고 하는 거다. 그렇게 응급실 뺑뺑이가 생기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인천의 한 대학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입원진료 중단을 선언했고, 정욱이를 진료했던 당직 소아과 교수는 아이의 사망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져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로써 서울에서 소아 병상이 따로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이 4개에서 3개로 줄어들게 되는 것이었다.

또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은 지원을 망설이게 하는 다른 이유도 있다고 했다. 지난 2017년 이대목동병원에서 미숙아 4명이 감염성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신생아 중환자실을 담당했던 의사들이 업무상 과실 치사로 구속되는 일을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

이에 이재현 교수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데서 시스템 붕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라며 이대목동병원 사건 이후 지원했던 사람들도 안 하겠다고 빠져나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부 전공의들 사이에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일하다가 환자가 잘못되면 우리 구속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지원이 급감했다는 것.

지난해 대법원은 해당 의사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의료법 전문 변호사는 "부모님들과 환아들에게 얼마나 안타까운 사건이냐. 결과에 대해서 의사 개인에게 어떤 책임을 묻는 것 말고는 유가족들의 피해가 회복될 수 있는 방법들은 사회에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 사건은 의사들에게도 유가족들과 아이들에게도 아픔을 남긴 것.

정욱이의 아버지는 "우리 아이 같은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아이가 아플 때 낮이든 밤이든 간에 적절하게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국가가 만들어야 한다"라며 그래야만 정욱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방송은 저출산 문제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건강하게 어른이 되는 것이 저출산 문제 해결의 기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국가에는 미래가 없다고 경고해 눈길을 끌었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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