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사형제 찬성하시나요?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

'인권' 미국의 사형 실태

[월드리포트] 사형제 찬성하시나요?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
남의 나라 인권 상황까지 조사해 정부 보고서를 낼 만큼 인권 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이지만 미국에는 여전히 사형제가 존재합니다. 물론 사형제가 범죄 예방 등을 통해 인권 증진에 더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지만 통상적인 인권 단체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한다면 오심이나 사형 과정의 잔혹성 등 여러 이유로 사형제는 인권 침해적 요소가 강하다는 게 일반적 견해입니다.

미국은 연방 국가답게 사형제 시행 여부도 연방 차원이 아닌 각 주별로 결정합니다. 다만, 수정헌법 8조에서 '잔혹하고 이례적인 처벌'을 금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최근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사형정보센터(DPIC)는 미국의 사형 집행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올해 시도된 사형 집행 20건(최종 집행된 건은 18건입니다) 가운데 1/3이 넘는 7건이 문제가 있거나 지나치게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겁니다. (참고로 이 단체는 사형제도에 대해 중립적이라고 합니다.)

"미, 올해 부적절한 사형 집행 35%"


로버트 던햄 DPIC 사무총장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최소한 일부 국민들의 계속된 사형제 거부는 무고한 사람에 대한 사형 집행, 즉 오심에 의한 사형과 잘못된 방식의 사형 집행 등 사형제의 결함을 드러내는 이목이 집중된 사건들로 인해 촉발된다"면서 "올해 그런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사형 집행이 35%나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사형 집행은 각 주 정부들이 적절하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것들"이라며 "이런 실패 사례들은 정부가 사형 집행하는 걸 믿을 수 있는지, 사람들 마음속에 점점 더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가 실패한 사형 집행에 포함되는 걸까요? DPIC는 교정 직원이 독극물을 주입하기 위한 정맥 주사 라인을 잡는데 15분 이상 걸리거나, 사형수의 정맥을 찾기 위해 사타구니나 목 동맥에 외과적 "절개"를 필요로 한 경우를 사형 집행이 잘못된 걸로 판단했습니다. DPIC 측은 "부적절한 사형 집행은 독극물 주사제에 대한 반응 때문이 아니라 교정 요원들이 실패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 예를 볼까요? 지난달 애리조나의 한 76세 사형수는 독극물 주사로 처형되는 도중, 교정 관계자들에게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독극물 주사용 링거 바늘 2개를 꽂기까지 20분 이상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행인들은 그의 왼쪽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으려다 실패했고 오른쪽 팔뚝에 하나를 꽂은 뒤 오른쪽 다리를 절개해 대퇴부 동맥에 주사를 놓았습니다.

BBC가 보도한 사례는 더 충격적입니다. BBC는 앨라배마에서 사형 집행인들이 사형수에게 주사를 투여하는 데 무려 3시간이나 걸렸다면서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긴 독극물 주사 투여 시간이었다고 전했습니다. 또 아이다호와 오하이오, 테네시,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4개 주에서는 집행인들이 절차를 지키지 못해 사형 집행이 보류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사형 실패 주된 원인은 전문성 부족"

감옥

사형수들을 대변해 온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의 마이클 벤자 법대 교수는 "사형 집행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형 방법으로 독극물 주사 같은 의학적 방법이 사용되지만, 이를 집행하는 사람은 의료인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집행인들은 형 집행 중 문제가 생겼을 때 이에 대처하기 위한 훈련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도 지적했습니다. 또 "사형수들은 종종 질병이나 약물 사용과 같은 좋지 않은 병력을 가지고 있어, 주사를 맞는데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사형 집행인의 전문성 및 훈련 부족과 함께, 일부 사형수들이 갖고 있는 신체적 특징, 즉 질병이나 약물 사용 후유증 등으로 주사제 주입에 필요한 혈관을 찾기가 쉽지 않은 점 등이 사형 집행 실패의 원인이 된다는 겁니다. 던햄 사무총장은 "사형수와 그 가족, 사형 집행 증인과 교정 요원들이 사형 집행이 엉망이 된 데에서 오는 트라우마를 더는 겪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DPIC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주는 전체 50개 주 가운데 절반이 넘는 27개입니다. 하지만 올해 실제로 형을 집행한 주는 6개로 특히, 텍사스와 오클라호마 등 2개 주가 전체 사형 집행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올해 5건의 사형을 집행한 텍사스의 그레그 애벗 주지사는 사형제도를 "텍사스 정의"라고 불렀습니다. 사형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미국 대법원이 사형의 합헌성을 지지해 왔다는 것에 주목하며 그것이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한 가장 적절한 처벌이라고 주장한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습니다.
 

12년 만에 다시 심판대 오른 사형제


사극을 보면 사약을 마시고 절명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합니다. 하지만 당시 독극물이 발달하지 못해 사약을 먹고도 바로 숨을 거두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사약을 마신 뒤 피가 잘 돌도록 따뜻한 방에 두거나 몇 그릇씩 마시도록 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참형처럼 신체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분이 높은 사람들에게 내려진 형벌이었지만 정작 당사자 입장에서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이었을 겁니다.

사형제를 둘러싼 찬반 논란은 어디서나 뜨겁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2년 만에 다시 사형제도가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올라 심리가 진행 중입니다. 사형제 존폐는 국민적 공감대에 따라 이뤄질 일이지만 적어도 집행 과정만큼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정확하게 집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집행 과정에서 사형수에게 형벌의 일환으로 고통을 주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