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20년간 국민 600만 명 이상 체험
토요일 아침 7시 서울 사당역에서 26명이 버스로 출발했다. 별도 합류하는 인원을 합쳐 38명이 한 팀이다.
해인사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쯤. 법당 참배 후 첫 일정이 해인총림(海印叢林)의 방장(方丈) 원각(源覺, 76세) 스님 접견이다. 총림의 최고 어른이 방장(方丈)이다. 방장은 퇴설당(退雪堂)에 주석한다. 줄을 맞춰 삼배하고 자리에 앉았다. 퇴설당 정원에 세찬 빗줄기가 쏟아진다. 방장 스님은 4시간을 잘 수 없었던 젊은 승려 시절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성철스님을 은사로 모셨던 시기의 수행 생활도 떠올린다.
해인사 일주문에 걸린 주련을 소개한다. 역천겁이불고(歷千劫而不古), 긍만세이장금(亘萬歲而長今) 천 겁의 역사가 지나도 옛일이 아니고, 만세의 미래가 이어져도 늘 지금이다.
주련 앞을 수십 번 지나다녀도 설명 듣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는 추상화 같은 글씨다.
"수행의 시작은 지금 이 자리부터"…"마음 바탕 깨닫는 것이 공부"
"거울에 만물이 비치지만 정작 거울 바탕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다. 폭우가 쏟아지고, 폭풍이 일어 늘 변화무쌍한 하늘이지만, 하늘 바탕은 텅 비어서 변함이 없다. 온갖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 바탕도 이와 같다."
텅 빈 마음 바탕이라… 첫 일정에서 강력하게 벽에 부딪혔다.
호텔 같은 숙소 갖춘 템플스테이 전용 공간 마련
지도 선생님의 오리엔테이션과 사찰 소개가 차례로 이어진다. 일주문, 봉황문, 해탈문, 대적광전, 장경판전, 비로전… 수많은 전각과 크고 작은 상징물이 빽빽하다. 해인사는 큰 절이다. 누구나 아는 절이지만, 절이 품은 모든 것을 다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지금 보고 들은 만큼만 알면 족하다.
저녁 식사하고 잠깐 휴식하는 사이 예불 시간이 됐다. 해인사 공양도 이야깃거리가 많지만 생략한다. 다만 공양간과 해우소가 가까이 있는 점이 이채롭다. 채우는 것과 비우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현실로 표현한 공간 배치일까?
▲ 법고 두드리는 학승. 하안거가 막 끝나고 학승들이 대부분 만행에 나서, 스님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
예불 의례 모두 한글 경전으로 진행
후두둑 소낙비 지나는 가야산 자락에 밤이 깊어간다. 숙소 주변은 어두워졌지만 템플스테이 일정은 끝나지 않았다.
화두(話頭) 잡고 왜? 라고 자신에게 끈질기게 질문해야
간화선을 체험한다. 두꺼운 좌복을 깔고 앉아 자세를 잡는다. 허리를 곧게 펴고, 다리는 편하게 접는다. 가부좌, 반가부좌를 고집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눈은 반쯤 뜨고, 코끝이 보이는 각도로 바닥을 주시한다. 그리고 화두에 집중한다.
법사 스님은 자신에게 왜? 라고 끈질기게 질문하라고 주문한다. 왜? 라는 생각을 한순간도 놓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걷기 명상도 해본다. 선방은 걸으면서 명상할 수 있도록 지어졌다. 바닥에 오른발 뒤꿈치가 먼저 닿는다. 발바닥이 닿는다. 앞 발가락이 닿는다. 바닥에서 왼발이 떨어진다. 왼발 뒤꿈치가 닿는다… 이 순서로 전해오는 촉감을 각각 알아차리는 방법으로 진행한다. 알아차림이 핵심이다.
호흡 명상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몸으로 들어온 들숨이 밖으로 나가는 날숨으로 바뀌는 변화의 순간을 잘 관찰하는 것이 포인트다. 예민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스님은 차 마시고 밥 먹는 일이 수행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상의 모든 일이 수행이라는 것이다.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고 온 힘을 쏟는 것, 그것이 바로 수행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앞선 방장 스님의 법문과 일맥상통한다.
잠깐 사이에 2시간이 훌쩍 흘렀다. 벌써 10시다. 산사에서는 매우 깊은 밤이다.
두 번째 날 팔만대장경판을 직접 볼 기회를 얻었다. 템플 일정 중에 빠질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장경각을 구성하는 두 전각에는 수다라전(修多羅殿), 법보전(法寶殿)이라는 편액이 걸렸다. 수다라는 불경을 뜻하는 범어 수트라(sutra)를 발음대로 표기한 것이란다. 수다라와 법보는 같은 말이다.
장경각 내에서 관람객 합장 필수…우발적인 훼손 방지
문화재청 연구원이 설명한다.
수다라전과 법보전은 15칸, 60m 길이로 쌍둥이 전각이다. 수다라전이 앞에, 법보전이 뒤에 있다. 두 전각 벽에 아래위로 크기가 다른 창을 냈다. 수다라전의 창은 위가 작고, 아래가 크다. 반대로 법보전은 아래가 작고, 위가 크다. 바람의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해 온도, 습도, 통풍 등의 실내 환경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경판은 800년 이상 변형 없이 보존되고 있다.
경판 글씨는 당나라 서예가 구양순 서체란다. 고려 당시 유행하던 서체라고 추측한다. 경판 글씨 제작에 참여한 사람이 1,600명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엄격한 훈련을 통해 똑같은 글씨를 쓸 수 있게 됐다. 경판의 글씨체는 한 사람의 글씨로 착각할 만큼 정교하다. 경판은 모두 81,357장, 한 장의 두께가 3.6cm, 한 줄로 쌓으면 백두산보다 높다고 설명한다.
들을수록 경의와 감탄이 쏟아지는 장경각 참관이다.
그 와중에 만해 한용운 스님의 일화 한 토막이 떠올랐다.
[만해와 고하 송진우가 어느 자리에 동석하게 됐다. 고하가 팔만대장경을 봤다고 아는 체했다. 옆에 있던 만해는 팔만대장경 쌓아둔 것을 봤다는 말이겠지라고 꼬집었다.]
대장경을 다 읽을 수는 없지만 한 줄이라도 제대로 읽어야 하는 이유다.
장경각을 나오면서 돌아본 법보전 기둥에서 일주문 주련과 비교되는 귀한 글귀를 만났다. 오른쪽에 원각도량하처(圓覺道場何處), 왼쪽에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 정자로 조각한 한문 주련이다.
완전한 깨달음의 도량은 어디 있는가? 지금의 생사가 있는 바로 이곳이라네.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원각, 완전한 깨달음을 발원한 수행자의 수행처라는 의미다. 그리고 보니 방장 스님의 법문, 지도 법사의 강의, 법보전의 주련이 모두 한 가지로 통한다. 수행자의 수행처는 바로 이 자리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귀중한 시간 체험
일상으로 돌아와 책상머리를 맴도는 기자의 머릿속에는 원각도량하처, 현금생사즉시 글귀가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