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어진 성적 욕심' 악성코드 심어 시험문제 빼낸 고교생들

모두가 잠든 늦은 밤, 검은 그림자 2명이 광주 대동고등학교에 나타났습니다.

난간을 타고 4층 건물 바깥 창문으로 위태롭게 다가간 그림자들은 잠겨 있지 않은 교무실 창문으로 몸을 들이밀어 조용하고 신속하게 침입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교무실 내 교사들의 노트북이 환한 불빛을 내고 하나씩 켜졌습니다.

검은 그림자들은 컴퓨터에 USB 저장장치를 꽂았고, 실행 버튼을 누르자 정체를 알 수 없는 프로그램이 교사들의 컴퓨터에 차례대로 심어지고, 곧바로 흔적을 감췄습니다.

2명의 그림자는 사나흘 뒤 다시 교무실에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이번에도 교사들의 노트북을 차례로 켜고 USB를 꽂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프로그램이 설치되는 대신, 컴퓨터 안에 저장된 무수히 많은 화면 갈무리(캡처) 파일이 USB 안으로 옮겨졌습니다.

광주 대동고등학교에서 지난 11~13일 치러진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에서 답안 유출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A군이 지구과학, 한국사, 수학 Ⅱ, 생명과학 등 4과목에서 만점을 받았다가, 이후 답안이 정정되면서 지구과학과 수학Ⅱ 각 100점, 한국사 93점, 생명과학 86점을 받았습니다.

A군은 기말고사 당시 4과목 시험지 모퉁이에 작은 글씨로 답을 적고, 시험시간 끝날 때마다 답안을 적은 부분을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은 A군의 이 같은 행동을 목격하고, 그가 버린 종이를 쓰레기통을 뒤져 다시 이어 붙였습니다.

이어 붙은 종이에는 정답과 일치한 답안이 선명하게 적혀있었습니다.

동급생들은 이 같은 사실을 부모에게 알렸고, 일부 학부모가 이를 광주시 교육청에 신고하면서 답안 유출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됐다.

경찰은 서둘러 A군의 컴퓨터를 압수해 분석하고, A군을 소환 조사했습니다.

A군의 입에서는 친구 B군과 함께 시험 전 교무실에 숨어 들어가 교사들의 노트북에 악성코드를 심었다는 충격적인 자백이 쏟아졌습니다.

이들이 직접 만든 악성코드는 일정 시간마다 컴퓨터 화면을 갈무리해 컴퓨터 내에 저장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코딩 등 프로그래밍을 능숙하게 하는 B군이 시중에 나도는 악성코드를 직접 수정해 컴퓨터 화면을 일정 시간 간격으로 캡처해 저장하는 악성코드를 만들었습니다.

교사들이 시험문제를 각자의 노트북으로 출제한다는 것을 알고 시험 문제 출제 시기에 악성코드를 교무실에 몰래 침입해 심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각 교사 노트북 깊숙한 곳에 저장된 캡처 파일을 다시 빼내 시험 문제와 답안을 미리 알 수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습니다.

경찰이 교사들의 노트북을 확인했더니 A군 등이 심은 악성코드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해당 학교에서는 4년 전에도 시험지가 통째로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해 행정실장과 학부모가 구속된 전력이 있는 곳입니다.

이후 재발 방지 약속도 있었지만, 시험문제가 출제되는 교무실 창문 등의 잠금장치는 허술했고, 미완성 시험문제가 담긴 교사들의 노트북은 교무실 책상에 놓여있었습니다.

경찰은 시험문제를 유출한 학생 2명을 건조물침입, 업무방해 등 혐의로 일단 불구속 입건해 자백을 토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추가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들 학생에게는 악성 코드를 만들고 심은 행위에 대해 향후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적용도 검토될 전망입니다.

평소에도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던 이들 학생은 경찰 조사에서 "공부를 더 잘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진술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TV 화면 캡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