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적장애인을 성폭행한 혐의로 한 60대 남성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런데 법원이 피해자와 합의를 했고 또 고령이라서 건강이 좋지 않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이런 성폭력 사건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처벌 수위를 낮춰주는 게 과연 옳은 건지, 한소희 기자가 짚어봅니다.
<기자>
2019년 경북의 한 마을.
노인회관 앞에서 쓰레기를 버리던 30대 중증 지적장애 여성에게 60대 A 씨가 "상자를 주우러 가자"며 접근했습니다.
A 씨는 자신의 트럭에 피해자를 태웠고, 인근 야산으로 올라가 성폭행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A 씨에게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를 위력으로 간음해 죄가 무겁고 피해자가 상당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입었을 것"이라며 징역 3년 6개월 형을 선고했습니다.
13세 이상 장애인 성폭행은 양형 기준에 있는 권고 형량이 징역 6년 이상 9년 이하였지만, 재판부는 A 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점, 또 60대인 나이가 고령이라는 이유로 형량을 낮췄습니다.
지난 1월, 항소심 재판부는 여기서 더 나아갔습니다.
A 씨가 피해자와 합의하고,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풀어줬습니다.
1·2심 재판부 모두 형량 결정에 고령이라는 점을 반영한 겁니다.
최근 의정부에서 등교하는 초등학생을 성폭행해 구속기소된 80대 노인이 과거 2차례 어린이 성추행 전력이 있는데도 고령 등을 이유로 집행유예와 벌금형만 선고된 사실이 알려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대법원 검색시스템을 통해 올해 선고된 성범죄 사건 중에 피고인이 '고령'인 점을 양형 고려요소로 적은 판결문 26건을 들여다봤습니다.
초등생 손녀를 수차례 강제 추행한 B 씨,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고요, 집행유예 기간 중 17세인 미성년자를 강제 추행한 피고인 C에는 벌금 600만 원이 선고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가 먼저 눈에 띄었는데요,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사건은 7건, 장애인은 5건, 만 60세 이상은 8건이었습니다.
미성년이면서 장애인 같은 중복 사례를 고려하면 26건 중 18건이 범죄에 취약한 약자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거였습니다.
처벌 수위를 볼까요.
26건 중 징역형은 단 4건, 전과가 여러 차례 있거나 다른 죄를 함께 저지른 경우 징역형을 선고했지만, 그렇지 않은 22건은 벌금, 집행유예에 그쳤습니다.
성범죄 집행유예 기준 중 일반 참작사유에서 재범 위험성을 따질 때 피고인이 고령이면 재범 위험성이 낮다고 보는 것도 여전합니다.
하지만 고령 범죄자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61세 이상은 강간 범죄자의 6.9%, 강제추행 범죄자의 14.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진희/대한법률구조공단 피해자 전담 변호사 : 고령이라든지 이런 개념은 시대가 달라지고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생명 연장 기술이 발달하고 이런 점도 다 반영을 해서 양형에도 반영해야(합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최근 성범죄 집행유예 참작사유 중에 고령은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고 재범 위험성과의 관련 정도도 뚜렷하지 않다며 삭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제 일·윤 형, 영상편집 : 전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