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살의 나이. 그는 '은둔 청년'이었습니다. 10여 년 전 조현병에 틱 장애까지 진단받은 것이지요. 상담이 직업인 저조차 저 세 가지 병명을 듣고 그가 어떤 상태인지는 짐작이 갔지만, 그래도 왜 투구를 쓰고 나왔는지는 짐작하기 어려웠습니다. 자신을 중세 시대 기사라 여기는 망상일까? 아니면 환청 등의 영향인가? 그러나 제 예상은 모두 빗나갔습니다. 진짜 이유는 "왠지 이걸 입는다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는 오랜시간 은둔 상태로 지냈지만 간절히 집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거지요. 아직도 적지 않은 분들이 '은둔 청년'은 의지가 약해서 집에 틀어박히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비난합니다. 부모 등골을 뽑아먹지 말고 공사장에라도 나가 돈을 벌라는 댓글도 참 많이 봅니다. 하지만 1호선 투구남 사례를 보신다면 편견이 조금은 사라지실 겁니다.
그의 지난 세월은 꽤 치열한 '알 깨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정신장애 진단을 받고도 사회생활을 해보려고, 치료를 받아가면서 어떻게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알아보고, 어렵게나마 일용직 근로를 나갔었다는 말에서 가슴 한 켠이 저릿했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일을 하려는 시도... 그건 정말 큰 용기를 낸 것이거든요. 그의 상태가 어떤 것이었는지, 같이 한번 상상해볼까요?
우선 내 머릿속에서 끝없이 환청이 들립니다. 그리고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머릿속 생각들이 입밖으로 튀어나오고요. 집밖을 나서면 모든 행인이 나를 해치려고 빤히 쳐다봅니다. 이 모든 것이 1호선 투구남의 상태였습니다. 아니, 그 정도면 입원을 하든가 해야지 어떻게 일하러 다니냐고요? 물론 이 증상들은 가볍게 볼 만한 것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절한 약 처방과 의학적 도움을 통해 상당히 개선될 수 있고 일상생활도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투구남 역시 그 과정을 통해서 일자리를 얻고 사회생활을 시도했던 건데요. 그가 결국 은둔하게 된 사건을 들으면서 저는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습니다. 같이 그 순간으로 들어가 볼까요?
출근길. 생각보다 버스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 긴장 상태로 있던 그. 최대한 긴장하지 않으려고 출근 전에 보았던 유튜브 영상을 떠올리며 주의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그 영상 속의 독일어 대사 두 마디가 입밖으로 툭-튀어나온 것이지요. 모든 승객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대처하시겠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답변은 다양했습니다. "독일어 공부하는 척한다"라던가 "그냥 고개를 푹 숙여요"라던가 "죄송합니다"라고 말한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즉, 빠르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는 게 공통점이었는데요. 하지만 투구남은 정반대였습니다. 그 순간부터 유리창에 머리를 쿵쿵 찍어댄 것인데요. 투구남이 말하기를 "저는 원래 이상한 사람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라는 신호였다고 합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엥? 그러면 더 눈이 가는데?'라고 생각하셨을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신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생각의 알고리즘이 다소 다르게 전개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속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투구남의 입장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내적 갈등이 깊었을 겁니다. '나는 이상한 사람인가? 아니야. 나아질 수 있어. 아닌가? 나는 답이 없는 이상한 사람인걸까? 아니야, 치료받으면서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거야.'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나날들이었겠지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 간신히 사회로 스며들고 있던 순간에 증상 하나가 튀어나와 버린 거지요. 바로 그때, 절실히 잡고 있던 마음속 희망의 끈 하나가 '탁'하고 끊어져 버린 겁니다. 역시 나는 안되는구나, 역시 나는 이상한 사람이구나. 절망과 자포자기에 휩싸인 채로 유리창에 머리를 박았다면, 조금은 그가 이해되실까요?
![1호선 투구남 (사진=온라인커뮤니티)](http://img.sbs.co.kr/newimg/news/20220606/201670504_1280.jpg)
![용기를 내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 1호선 투구남. (사진=온라인커뮤니티&엠빅뉴스 캡쳐)](http://img.sbs.co.kr/newimg/news/20220606/201670506_1280.jpg)
그때부터 청년은 다시 집에서 은둔생활을 이어나갔고 4년이 지났습니다. 이번에는 그가 '얼굴이 다 가려지는 투구'를 쓰고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보호막을 쓰고 세상밖으로 조금씩 걸어나왔습니다. 유명해져버린 투구남의 사례를 보고 비슷한 상황에 놓인 청년들이 꽤 희망을 얻었다고 전해집니다. 아마 제2의, 3의 투구남이 나타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 역시 버스 안에서의 투구남처럼, 어쩌면 조금 특이한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조금 더 따듯하게 바라봐 주면 어떨까요? 그 '이상함' 속에 어쩌면 치열한 삶의 의지가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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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to. 보이지 않는 불안에 갇혀 힘든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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