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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성원 씨뿐일까요?…마을버스기사의 고단한 삶

20대 버스기사, 민성원 씨의 죽음

1997년생 마을버스기사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26살, 성원 씨는 24살에 마을버스기사가 됐습니다. 마을버스 회사 최연소 입사자였습니다. 일찌감치 대형 면허를 취득하고 취직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첫차 시간 운행에 맞춰 새벽에 출근하고, 막차 시간 운행에 맞춰 자정 넘어 퇴근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서 행복해 했다고, 유가족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성원 씨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습니다. 살인적인 운행 일정에다 동료들의 괴롭힘까지 더해지면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박찬범 취파용

정신과 육체, 모두 지치고 말았다

① 정신

폭언과 따돌림…동료 기사들의 증언


유가족들은 성원 씨가 평소에 선임들과 운수회사 직원의 괴롭힘 때문에 힘들어했다고 말합니다. 성원 씨가 세상을 떠난 뒤 전 동료 기사 3명이 사실 확인서를 써줬습니다. 성원 씨가 당한 폭언과 따돌림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선임과 행정 직원 등 6명입니다.

특히 선임 한 명이 폭언과 따돌림을 주도했다고 합니다. 이 선임 때문에 운수회사를 관두고 나간 기사도 전에 있었다고 합니다. 유가족은 퇴근한 성원 씨가 이러한 선임 때문에 힘들다고 토로한 적이 수시로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박찬범 취파용

운행 중에도 괴롭힘…배차 간격 넓혀 골탕 먹이기

성원 씨가 당한 괴롭힘은 버스 운행 중에도 벌어졌다고 합니다. 버스기사들은 운행 때 항상 배차 간격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운행 차량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야 승객들이 분산돼 탑승할 수 있습니다. 승객들도 기다리는 시간에 편차가 발생하지 않게 됩니다.

일부 가해 선임은 이러한 점을 악용해 괴롭혔다고 합니다. 성원 씨 차량이 운행을 하고 있으면, 앞서가던 차량이 배차 간격을 고려하지 않고 빠르게 운행하는 겁니다. 그러면 성원 씨 차량에 승객이 몰리 수밖에 없습니다. 성원 씨 버스는 만차가 되고, 이 버스에 타는 손님들도 자리에 앉지 못한 채 서서 가게 됩니다.

박찬범 취파용
 
배차 간격 고의 벌리기는 버스기사들 사이 공공연하게 알려진 괴롭힘이라고 합니다. 신임 기사를 길들이거나, 평소 관계가 좋지 않은 기사들을 상대로 벌어지는 '구악'이라고 합니다. SBS 보도 이후에도 이러한 괴롭힘을 당했다는 여러 기사들의 제보도 이어졌습니다.

② 육체

성원 씨의 근로계약서, 주6일 근무에 추가 근무


성원 씨의 근로계약서를 살펴봤습니다. 평일 2교대로 근무하는 형식입니다. 오전반 때는 5:30~14:30 근무이고, 오후반 때는 14:30~23:30 근무입니다. 계약서상으로는 휴게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8시간 근무입니다. 근무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근무가 기본입니다. 계약서에는 여기에 휴일 근무를 추가 명령할 수도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박찬범 취파용
 
일요일 근무는 첫차부터 막차까지 '풀탕' 근무

근로계약서에는 휴일 근무를 추가로 명령할 수도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추가 근무가 바로 '풀탕' 근무입니다. '풀탕' 근무란 첫차부터 막차까지 하루 종일 운행한다는 풀(full)타임 운행을 의미합니다.

풀탕 근무는 새벽 5시대 첫차부터 밤 11시대 막차 운행까지 하루 10회 운행하는 일정입니다. 평일에 비해 배차 간격이 더 길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살인적인 일정입니다. 그렇다고 일요일 근무한 다음 월요일에 온전히 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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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풀탕 근무를 하게 되면 몇 일 연속 근무하는 것일까요? 13일입니다. 살인적인 일정입니다. 한 달에 풀탕 근무를 두 번만 해도, 근무 일수가 28일을 넘게 됩니다. 고 민성원 씨가 이러한 스케줄을 버텨왔습니다. 성원 씨의 급여명세서에도 한 달에 휴일 근무만 6번, 이 가운데 2번이 풀탕 근무를 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성원 씨와 근로기준법


①주52시간 지켰나?

성원 씨가 다닌 운수회사는 주 52시간 적용 대상인 업체입니다. 회사 측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한 달 근무 시간을 누적해 주 평균 52시간이 넘지 않도록 했다고 합니다.

정말 그러한지 따져봐야 겠습니다. 주 평균 52시간이 나오려면 한 달 근무 누적 시간이 209시간(한 달 4.35주 기준)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주 6일을 근무했다고 하면, 총 4주로 계산 시 24일입니다. 근로계약서상 하루 8시간 근무(휴식 시간 1시간 제외)했다면, 최소 192시간입니다.

209시간에서 192시간을 빼면 17시간입니다. 한 달에 한 번만 일요일 풀탕 근무를 하면, 휴식 시간 2시간을 제외해도 16시간 정도로 계산됩니다. 주6일 만근에 풀탕 근무를 2번 했다면, 52시간을 훌쩍 넘습니다.

②근로계약서에 나온 업무 시간을 지켰나?

근로계약서에 따르면 하루 근무 시간은 오전반이든 오후반이든 8시간입니다. 하지만 성원 씨를 포함해 동료 기사들은 이 시간보다 더 일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새벽 5시 20분 때 첫차 운행을 하려면 1시간 전인 새벽 4시 반 쯤 나와야 한다고 합니다. 미리 나와 차량 정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첫 운행 시작 시간을 업무 시간으로 간주했다고 합니다.

퇴근 시간도 달랐다고 합니다. 오전반일 때 오후 2시 반 퇴근이지만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정말 일찍 퇴근해도 오후 3시가 넘었다고 합니다. 유가족들도 성원 씨가 오전반일 때도 저녁 6시가 다 돼서 들어올 때도 많았다고 합니다.

박찬범 취파용
 
③법정 휴식시간은 보장됐나?

근로기준법상 법정 휴식시간을 보장했는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근로기준법상 8시간 이상 일한 근로자에게 1시간 휴식시간이 부여됩니다. 하지만 업무 특성상 이를 지키기 힘든 특정 업종엔 다른 기준이 적용되기도 합니다.

성원 씨처럼 노선을 운행하는 버스 기사들이 그 예입니다. 이들은 일정 시간에 따라 반복적으로 운행을 해야 합니다. 근무시간 중간에 몰아서 쉬는 게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규칙에 별도의 휴식시간 기준이 있습니다. 2시간 미만 연속 근무를 하면 10분 이상 쉬어야 합니다. 2시간 이상 연속 근무를 했다는 15분 이상 쉬도록 돼 있습니다.

성원 씨 같은 경우 한 번 운행할 때만 평균 1시 반 정도를 운행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10분 이상 휴게 시간이 보장돼야 합니다. 그런데 성원 씨를 포함해 동료 기사들은 다음 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10분 이상 쉬지 못할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어쩔 때는 밥을 5분 만에 먹고 나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박찬범 취파용

고 민성원 씨 혼자만의 문제 아니다

고 민성원 씨의 업무 강도는 같은 소속 마을버스기사들에게 모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나이도 대부분 어립니다. 이들 모두 성원 씨처럼 열악한 업무 환경 속에서 일했습니다. 이들도 '풀탕' 근무를 하고, 중간에 밥 먹을 시간이 부족해 거를 때도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전국 마을버스기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마을버스 노선은 상황에 따라 적자가 발생하는 구간도 있습니다. 적자 노선은 지자체가 손실을 보전해주기도 합니다. 대신에 하루 최소 운행 횟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마을버스 운수회사는 지자체로부터 보조금을 받기 위해 운행 횟수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문제는 기사를 추가 모집하지 않고, 기존 기사들이 정해진 운행 횟수를 떠안고 있다는 점입니다. 신입 기사를 모집해도 살인적인 업무 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결국 경력 짧은 어린 기사, 65세 이상 고령 기사만 남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구조입니다.
 

2년 경력 채우기 위해…참고 버티는 20대 기사들

젊은 기사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 문제 제기를 못하는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2년 경력을 무조건 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고용 조건이 보다 좋은 시내버스기사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근데 시내버스 운수회사는 신입 기사를 모집할 때 2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합니다. 이 때문에 젊은 기사들이 마을버스 운수회사를 먼저 들어가 경력을 쌓게 됩니다.

취재진이 만난 성원 씨의 동료 기사들도 이구동성 말합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건 경력 2년을 일단 채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인 청춘들입니다. 고 민성원 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고용노동부와 각 지차체가 마을버스기사들의 근로 환경에 관심을 쏟아야 할 때입니다.

박찬범 취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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