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선장의 갑작스러운 사임…"동료와 연인 관계 신고 안 해"
주커는 2000년대 NBC 아침 방송인 Today의 PD를 맡았던 인물로, 이 프로그램의 전성시대를 이끌었습니다. 딱딱한 뉴스를 생활 밀착 소식과 접목시켜 조금 편한 아침 방송의 콘셉트 자체를 창안한 인물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홍보를 맡았던 사람이 골러스트였습니다. 당시 진행자였던 케이티 큐릭은 그때부터 둘이 너무 가까워서 이상했다면서, 당시 골러스트를 그 자리에 영입하자고 우긴 사람도 주커였다고 이미 본인의 자서전에도 언급해놨습니다. 두 사람이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는 건 업계에서는 모두 아는 비밀이었습니다. 주커 사장은 성명서에 코로나 이후 골러스트와 연인 관계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CNN 앵커 쿠오모 해고 과정에서 시작된 진흙탕 싸움
하지만 크리스 쿠오모는 이 같은 의혹을 형처럼 전면 부인했습니다. 저널리즘적으로 명백한 잘못이 분명한 대책 회의 참석에 대해서도 주커 사장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히려 코로나 초기 쿠오모 주지사가 한참 주가가 높을 때 형을 섭외하라고 종용하던 게 사장 아니냐고 항변했습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성 비위 문제로 자신을 해고한다고 하자, 쿠오모도 변호인을 통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커 사장의 부적절한 연인 관계가 폭로됐다고 사건을 잘 아는 내부자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골러스트는 CNN에 들어오기 전에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의 홍보국장을 역임했습니다. 주커-골러스트-쿠오모 가문이 이미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던 관계였던 것입니다. 앵커 쿠오모도 이들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고 있었고, 자신이 해고되는 형식으로 정리되자 막장 싸움으로 폭로전을 벌였고 주커 사장도 못 견디고 사임해버린 겁니다.
만담식 '코멘터리 뉴스' 확산시키고, 트럼프 정치적 거물 만든 장본인
주커 사장이 선장이었던 CNN이 가장 많이 투자한 정치인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뉴스가 되는 트럼프의 가치를 알아본 주커 사장은 트럼프를 집중 보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CNN은 트럼프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집중 보도를 하면서 트럼프가 점점 더 정치적인 거물이 됐습니다. 트럼프 시절 CNN은 트럼프 없으면 어떻게 먹고 사나 싶을 정도로 그에 대한 보도 비중이 높았습니다. 천재적인 미디어 감각을 가진 트럼프는 CNN을 더 독하게 비판하면서 CNN에 더 자주 등장했고, CNN은 트럼프를 더 세게 비판하기 위해 트럼프를 더 자주 등장시키는 적대적 공생 관계가 탄생했습니다. 물론 트럼프 전 대통령과 CNN의 관계는 불편했지만, 흥행 측면에서는 서로가 꼭 필요했습니다. 실제 2021년 초반까지 CNN의 실적은 대단히 좋았습니다. 폭스뉴스와 MSNBC까지 제치고 케이블 뉴스 채널 가운데 1등을 기록한 적도 있습니다.
CNN 추락 해결책으로 택한 CNN+ 시작도 못했는데
주커 사장은 이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CNN+라는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몸값을 주고 폭스 뉴스의 간판이었던 크리스 월리스를 영입했고(월리스는 사실 폭스 안에서 가장 폭스스럽지 않은, 중립적인 뉴스를 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코로나 걸리기 전 트럼프가 난장판을 만들었던 대선 토론을 진행했던 베테랑 앵커입니다.) 위기의 주부들에 나오던 에바 롱고리아가 여행 프로그램을 맡아 히스패닉 시청자들을 잡겠다는 전략입니다. 하지만 본체인 CNN 앵커들이 기본 뼈대로 대거 등장하는 계획인데, 이 유료 구독 모델을 제대로 띄우기 전에 선장이 사라진 셈입니다. 미국 역시 뉴스 미디어들이 너도나도 스트리밍을 하겠다고 뛰어들고 있는데, 사실 CNN이 이걸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궁금한 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주커는 자기 그림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자리에서 내려온 겁니다. CNN이 소속된 워너미디어는 조만간 디스커버리랑 합병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430억 달러 계약으로 미디어 업계에서는 엄청난 금액의 인수 합병인데, 이 작업의 핵심 인사도 주커 사장이었습니다.
주커 사장은 충성을 요구하고, 자기 사람은 어떤 비난에도 감싸고 가는 스타일입니다. CNN 법률 분석가로 종종 등장하는 검사 출신 제프 투빈은 동료들과 줌 미팅을 하다가 음란 행위를 해 미디어 업계를 발칵 뒤집어놨는데, 주커 사장이 그를 감싸고 CNN에 출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투빈도 품었던 주커 사장이 쿠모오를 버리면서, 음모와 배신의 막장 드라마가 전개되고 있는 겁니다. 극적인 요소를 모두 갖춘 CNN의 내부 갈등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곧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