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월드컵으로 한참 뜨거웠던 2002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김지연입니다. 요즘에는 사정상 푸엉(가명)이라는 베트남 이름으로 소개하기도 합니다. 제 이야기에 얼마나 관심이 있으실지 조금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시간을 내 읽어주신다면 매우 감사할 것 같습니다.
(1)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출생의 비밀이 있다고?
"지연아, 너는 신분이 없어. 그러니까 최대한 투명 인간처럼 살아야 해"
신분이 없다고?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어제랑 바뀐 것이 하나도 없는데 갑자기 투명 인간처럼 살아가라고 하시니 말입니다. 정말 그때까지 제가 당연히 한국인인 줄 알았거든요. 부모님과의 대화도 지금껏 한국말로 했었고요. '한국인', '한국말' 이런 표현을 쓰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저는 제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의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저에게 당신들이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불법체류' 신분이라고 나지막이 말씀하셨습니다.
(2) 친구가 당황했다…"뭐라고? 너 완전 한국인인데?"
친구들은 제가 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언어가 서툰 것도 아니었고, 먹는 것이 유별난 것도 아니었고, 생김새가 크게 다른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언젠가 서류에 주민등록번호를 써야 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주저하고 있다가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미등록 신분이어서 투명 인간과 비슷한 것이라고. 친구는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뭐라고? 너 한국인이 아니라고? 너 완전 한국인인데 왜 그렇게 살아?" 이상하게 친구의 말이 조금 위안이 됐습니다.
학교 생활은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개근상도 받았고, '타의 모범'이 된다는 예절상도 받았습니다. 상장은 여러 개 모아둬야 할 만큼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제 명의로 홈페이지에 가입하는 것, 홈페이지에 가입해서 봉사 시간을 기록하는 것, 또 급식비 이체를 위해 스쿨 뱅킹을 신청하는 것들 말입니다. 당시에는 근처 성당에 다니는 지인(한국인)의 도움으로 조금씩 상황을 해결했습니다.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걸 언제쯤 깨달았는지 궁금하거든요.
=중학교 때 부모님이 너는 신분이 없고 그래서 최대한 투명 인간처럼 살라고 하셨어요.
-그럼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 어렸으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점점 커가니까 할 수 있는 게 없고 제한되는 게 많으니까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 좀 제한이 되고 힘들었을까요?
=홈페이지 가입할 때 본인 명의로 가입해야 되는데 그런 것도 못 하고 봉사 시간도 못 채우고….
=홈페이지 1365라는 봉사사이트가 있어요. 근데 그걸 가입 못 하고, 친구들끼리 놀러 갈 때 롯데월드 생일에 02 들어가면 할인해주는 게 있는데, 저는 신분증이 없으니까 친구들 놀러 갈 때 저는 못 놀러 가고 병원도 못 가고….
(3) 졸업이 코앞이다…난 베트남 말을 모른다
(4) 그리고 어느 날, 외국인이 되었다
저는 지금 1년 임시 허가인 G-1 비자를 갖고 있습니다. 임시용이기는 하지만 '외국인'이라는 신분이 생겼습니다. 외국인이라니 아직은 낯섭니다. '푸옹'이라는 새 이름에도 익숙해지려고 하는 중입니다. 물론 아직은 김지연이라는 이름이 가장 편하고 저 같습니다. 아빠가 떠나면서 제가 해야 할 일은 좀 많아졌습니다. 고등학생들인 동생 둘을 돌보는 것은 이제 제 몫입니다. 여전히 서툴기는 합니다. 민간단체에서 주는 한 달 지원금 50만 원으로 살고 있는데, 돈도 벌어야 할 것 같아서 허가를 받고 주7일 옷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동생들이 고등학생이라 갖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미안한 마음입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당장은 대학에 가자는 겁니다. G-1 비자를 받은 제가 한국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이 방법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공부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가 한국에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두려워요? 어때요?
=가고 싶지 않아요. 언어도 안 통하고.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거기서. (제가) 베트남어는 아예 못 하고 한국어는 잘해요.
-한국 사회에 바라는 게 있다면?
=그래도 아직 이런 저희 같은 사람들을 좋은 시선으로 보진 않잖아요. 저희를 안 좋은 시선으로 보지 마시고 같이 저희랑 힘내서 한국 사회에 뭔가 저희 같은 애들에게 좋은 환경이 될 수 있게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한국은 어떤 나라예요?
=되게 정이 많고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요.
(취재 : 김아영, 배준우, PD : 김도균, 제작 : D콘텐츠기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