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룸] 북적북적 307 : 밖으로 나온 아이 '언오소독스'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심판을 받을 때 다윗왕이 상벌의 기준이 된다고 배웠다. 첩을 두는 것에 비하면 내가 숨겨둔 영어 책 몇 권 정도는 새발의 피 아닌가. 바로 이 생각을 한 순간, 내 안에서 저항의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 사실을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2015년에 흥행했던 영화 '인턴' 기억하십니까? 앤 해서웨이와 로버트 드 니로를 중심으로 '힙'하고 세련된 젊은이들이 유행의 첨단에서 꿈을 펼치는 모습이 등장하는 이 영화의 배경은 뉴욕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성수동과 변천사가 비슷합니다. 낡은 공장지대였던 이곳에 맨해튼과 가까운데도 월세가 저렴하다는 이점을 반긴 예술가들과 젊은 창업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한국의 TV 기행 프로그램 같은 곳에도 종종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카페나 클럽, 레스토랑 같은 곳들이 밀집한 세련된 거리로 탈바꿈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에게도 이제는 '힙한 동네'라는 인식이 박힌 이 곳에 지금까지 말씀드린 분위기와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사람들이 7만 명 넘게 모여 살고 있습니다. 미국을 방문해 본 적이 있는 분들, 특히 뉴욕을 비롯한 동부 지역에 와본 분들은 아마 한 번쯤 마주쳤을 사람들입니다. 남자들은 얼굴 양옆 귀 바로 앞으로 돌돌 만 머리타래를 길게 늘어뜨리고 까만 모자에 까만 옷만 입습니다. 여자들은 자신들의 거주지 밖으로 나오는 일조차 드물기 때문에 남자들보다 훨씬 눈에 띄지 않지만, 기혼자들은 삭발을 한 뒤 두건 또는 가발을 쓰고 온몸을 가리는 치렁치렁한 옷차림을 했습니다. 근본주의 유대교 공동체 하시딕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근본주의 이슬람과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에서 본질적인 공통점을 여럿 갖고 있습니다. 일단 자기들끼리 모여 살며 외부의 문화나 영향, 다양성을 철저하게 거부합니다. 대부분 스무 살 무렵에 집안끼리 중매로 결혼하고, 여자는 평생 계속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사실상 주어지는 역할의 전부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여성 기혼자는 머리를 밀어야 할 뿐 아니라, 여자가 운전을 하거나 바지를 입는다는 것조차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남성들도 하시딕 공동체를 벗어난 꿈을 꾸기 힘들거니와, 여성들의 인생은 '남성을 따르고 끊임없이 아이를 낳는 역할'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생리주기에 따라 일과가 제약될 정도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기상천외한 패션과 개성을 자랑하는 뉴요커들과 같은 지역에서, 그러나 동떨어져 살고 있는 것입니다.
"부정한 언어!" 내가 사촌에게 영어로 말하는 것을 들은 할아버지가 버럭 고함치셨다. 할아버지는 부정한 언어는 영혼에 독약처럼 스며든다고 말씀하셨다. 영어 책을 읽는 것은 더 위험했다. 영어 책은 내 영혼을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상태로 만들기에, 악마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 이제 내가 탈무드를 읽으면 안 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다. "다윗왕은 어떤 죄도 짓지 않았어요. 다윗왕은 성인이었답니다. 신이 총애하는 아들이자 성령을 받은 지도자를 비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방금 전 나는 탈무드에서 다윗왕의 잘못을 확인했다."
오늘 함께 읽고 싶은 책은 이 근본주의 유대교 공동체를 탈출한 한 여성의 자서전 [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입니다. 2012년 초 출간 당시 미국사회에 적잖은 충격과 논쟁거리를 던졌습니다. 이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4부작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를 한국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7월말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이 책이 번역 출간됐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하시딕 공동체' 자체가 낯선 개념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펼쳐들면 곧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신기해 하고 넘어가 버릴 수만은 없는, 한국사회의 우리에게도 낯설다고만 말할 수 없는 장면들이 순간순간 펼쳐집니다.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면이 있는 공동체에서 성장한 개인이 어떻게 스스로 사고하고 그 사고대로 실천하는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내가 속한 사회에서 훌륭하다고 받아들여지는 인습들에서 모순을 보았을 때, 손을 들어 이에 대해 발언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때로는 평생 과제처럼 해결해 나가야 할 후유증을 남기는 일인가. 겹치는 고민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저리게 공감할 수 있는 혼란과 좌절, 투쟁의 기록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폐쇄적인 근본주의 종교 공동체처럼 안으로 곪아가기 쉬운 사회가 도대체 왜 탄생하고 형성돼서 존속하는지, 내부인의 시선에서 포착한 힌트도 곳곳에서 엿보입니다.
저자 데버라 펠드먼은 정신병을 앓는 아버지, 그리고 그와 일종의 매매혼처럼 결혼했다가 자신을 낳고 떠난 어머니 사이에서 1986년에 태어났습니다. 정신병은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모든 일탈적 징후와 마찬가지로- 하시딕 공동체에서 '가족의 불명예'로 치부되기 때문에 데버라의 아버지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로 평생 방치돼 있다시피 했다고 데버라는 말합니다. 데버라는 조부모를 비롯한 친척어른들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17살에 집안 중매로 약혼자가 확정돼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뒤에 공동체의 여자들 모두가 걷게 되는 '신부 수업' 과정을 밟기 시작합니다.
"저기, 저는 그게 없는데요." 내게는 그런 구멍이 없는 것이 확실했고, 설사 있다고 해도 저 통통한 집게손가락이나 그것이 대변하는 무엇인가가 들어갈 만큼 클 리도 없었다.
선생님은 아연실색해서 나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있지. 모두가 갖고 있어."
"아뇨, 진짜로요. 저는 없어요." 초조함이 고조되었다. 나는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말하는 그 통로가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내 몸에 난 구멍을 모를 수 있지? 불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원천' 없이 태어난 신부라고 결혼식이 취소되면 어떡하지?
………. 그날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린다. 나의 몸과 내가 가진 힘을 아는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내 삶은 그날을 기준으로 둘로 나뉘었다. 결혼 수업을 받기 전의 나는 그저 여자아이였지만, 이후에는 '원천'을 가진 여자아이가 됐다. 나는 내 몸이 섹스를 위해 설계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다. 누군가가 내 몸 안에 섹스를 위한 장소를 만들어놓았다니! 그때까지는 사실상 섹스와 관련된 모든 것으로부터 차단된 채 살았다. 우리는 영적 존재이고, 몸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 그동안 호기심을 갖기는커녕 있는 줄도 모른 채 살아왔던 신체 부위를 앞으로 평생 직시하며 살아야 한다. 기존의 생활 방식에 적응해서 살아온 나의 몸은 이 변화에 반발했다. 그 대가로 나는 머지 않아 행복을 잃게 되며, 결국 결혼 생활을 산산조각 낼 파괴의 씨앗이 뿌리내리게 된다."
"첫날밤에 이 침대가 어땠는지 네가 봤어야 하는데." 골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피가 너무너무 많이 났어." 무슨 말인지 의아했다. 만일 첫날밤에 순결을 잃은 얘기를 하는 거라면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첫날밤 자랑에 맞장구칠 기분이 아니었다.
"사방이 피투성이였어. 침대도, 벽도, 병원에 가야 했어."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이가 잘못 넣었지 뭐야. 결장이 파열되었어. 데버라, 넌 그 고통을 상상도 못 할 거야.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
나는 충격으로 말을 잃었다. 어떻게 했기에 장이 파열된단 말인가?
"결혼 수업에서 그렇게 가르친대." 골다가 서둘러 설명했다. "남자가 기죽기 전에, 여자가 너무 겁을 먹기 전에 빨리 일을 치러야 한다고. 그래서 그이는 계속 밀어 넣었던 거야. 하지만 잘못된 곳이었던 거지. 그이가 어떻게 알았겠어? 나도 어디가 옳은 곳인지 몰랐는 걸."
"지금은 좀 어때?"
"아, 이젠 괜찮아!"
집으로 돌아온 나는 욕실로 가서 수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골다가 그런 일을 겪는 동안 가족은 뭘 하고 있었나? 세월이 지나도 이런 실수가 반복되는데 왜 아무도 바로잡지 않는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충격이 심해서 내게 전화했대요."
"왜요? 무슨 일인데 그래요?" 나는 등을 곧추세우며 답을 재촉했다."
"형이 도착하니까 아이 아버지가 지하실을 가리키더래요. 내려가 보니 소년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고요. 성기가 잘리고 목이 베인 상태로요. 아버지는 슬퍼하지도 않았다고 하네요. 아들이 자위하는 걸 봤다고 말했다는군요."
"설마 자위를 했다는 이유로 아들을 죽였단 말이에요? 그리고 하찰라를 불렀고요?"
"함부로 속단하지 말아요! 아직 확실히 모른다고 했어요.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려서 이웃에서 신고했다는군요. 상황실에서는 형더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집에 가 있으라고, 알아서 처리할 거라고 했대요. 시신은 30분 만에 매장하고 사망진단서도 발급하지 않았다고…"
"경찰에 신고도 안 했겠군요? 또 평판 때문에 살인범을 그대로 놔두고요?" 등허리가 쿡쿡 쑤셨다. "아, 뭐 이런 곳이 다 있죠? 짧은 치마를 입는 것처럼 사소한 일에는 벌을 주고, 십계명을 어길 때는 침묵하나요?"
이 책은 저자의 경험들을 통해 체제에 억눌리는 개인의 메커니즘을 선명하게 해부해 줍니다. 데버라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부조리들을 그 안의 다른 어떤 소녀들보다 예민하게 느낄 뿐만 아니라 10대에 시작한 결혼생활에서도 심각한 갈등을 겪습니다. 심지어 하시딕 공동체 사람인 게 티가 나는 옷차림을 한 자신을 다른 뉴요커들이 멸시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까지 분명하게 눈치챕니다. 그러나 그런 '인식'을 지닌 데버라에게조차 자신이 나고 자란 공동체를 벗어나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처럼 총칼로 위협당하지 않더라도,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뉴욕 한가운데에서 지하철 한 두 정거장이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피신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가족과 친구, 삶의 터전과 스스로의 정신을 형성해 온 성장기의 가치관을 떠나는 것은 그야말로 팔다리를 끊어내는 것처럼 힘든 일입니다.
이를 테면 데버라의 경우, 도저히 이 공동체에 더 이상 속할 수 없다고 결심했던 20대 초반에 이미 소중한 아들이 태어나 있었습니다. 데버라 펠드먼은 남편과 이혼한 후 양육권 소송에서 승리해 아들과 함께 공동체를 떠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데버라 자신도 인정하듯이, 그녀의 행운을 그때까지 하시딕 공동체를 탈출한 다른 어떤 여성도 누릴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찾아가려면 자식은 포기해야 했던 것입니다. 데버라가 양육권을 쟁취한 것은 그녀가 출간한 이 자서전이 출간되자마자 세간의 큰 관심을 모은 덕이 컸습니다. 하시딕 공동체에 데버라처럼 본인이 속한 상황에 눈뜬 여성들이 있다고 한들, 질식 직전의 인생을 평생 영위해야 한다고 좌절한 누군가가 있다고 한들, 사랑하는 자식들을 두고 떠날 수 있는 어미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양육권은 탈출의 첫걸음일 뿐입니다. 변변한 교육을 받기는커녕 심지어 자기들끼리의 언어 이디시어가 아닌 영어를 쓰는 것을 죄악시하며 성인이 되기 마련인 하시딕 공동체의 여성이 자식들을 데리고 세상에 나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극빈 싱글맘의 앞날이 펼쳐질 것이 뻔한 상황에서 공동체에 반기를 들기란 쉽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삭발이 큰일인 것 같지? 전혀 아니란다. 금방 익숙해졌어.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게 훨씬 편하단다. 특히 여름에는."
별일 아니었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왠지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유럽에서는 아무도 그러지 않았는데 왜 지금은 삭발해야 하는 건가요?" 나는 다시 물어봤다.
할머니는 잠시 주저한 후 대답하셨다. "네 할아버지 말로는, 렙베는 우리가 과거 그 어떤 유대인보다도 독실하게 살아가길 원한다는구나. 신께서 우리를 자랑스러워하실 정도로 극단적 수단을 강구하면 앞으로 다시는 2차 세계대전 때처럼 벌을 내리지 않으실 거라고 하더구나."
홀로코스트에 대한 공포에서 촉발된 이 책의 하시딕 공동체든, 탈레반이든, 시작에는 실재했던 외부 충격에 대한 공포가 있었습니다. 부조리한 억압에 대응하려는 자기들 나름의 몸부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몸부림은 빠르게 더 큰 억압이 되었고, 권력을 가진 소수 몇몇의 욕망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부조리를 옹호하는 방패가 되었습니다. 이런 식의 근본주의에서는 특히 여성을 체제의 전시물이자 밑거름으로 착취하기 마련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한 뉴스가 요즘 많이 전해집니다. 소수의 난민은 우리나라로 피신해 오기도 했습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부르카를 입지 않고 운전했다는 이유로 길거리에 나섰다가 총살당하는 여성들이 있는 사회로 뚜벅뚜벅 돌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여기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나마 아프간의 경우엔 그동안 미국이 주둔했다는 이유로 이 정도 이슈라도 될 수 있는 것이지, 이와 비슷하며 더욱 끔찍한 상황들이 일어나고 있는 세계 곳곳에 외부의 관심이 이 정도로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은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표적인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는 이란도 40년 전에는 여성이 남성들과 어울려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나라였다는 점도 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온 자유나 권리는 사실은 우리 생각보다 더욱 부서지거나 휩쓸리기 쉬운 것들일지도 모릅니다.
당장 홍콩에서는 최근에 중국 당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쓴 신문이 폐간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20년 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 우려했던 문제들이 하나하나 실제로 모두 일어나고 있다고 슬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당장 중국 신세대들 중에는 "정부에 협조하지 않는 신문, 정부를 욕하는 신문이 폐간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신문 하나가 폐간되든 말든 당장 자신의 삶에는 영향이 없다고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지?' 하는 경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퇴색하기 쉽고,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젖어들어 '저렇게'에 이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기를 거부하는 과거에의 집착이 시스템이 되고, 사회규범이 될 때, 어느 사회 어느 지역에서든 '탈레반'은 결국 나타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곱씹었던 생각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 은폐하고 숨기는 것이 그 집착을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면, 더 이상 변명의 여지조차 남지 않습니다.
"방금 전에 만난 여자는 내가 아는 민디가 아니다."
이제 시간이 좀더 흐르고 나면, 아프간 소녀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선전될 것입니다. 이미 근본주의 문화 속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말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체제 선전의 주요 무기가 됩니다. "어른들이 입으라고 해서 입는 부르카가 아니다. 어른들이 학교에 못 가게 해서 학교에 안 가는 게 아니다. 이게 신의 뜻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미국이나 나쁜 세력들로부터 우리의 정통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그 뜻에 따르는 것이다." 그 마음에 얼마나 진심이 깃들어 있든지 간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아이가 자신의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에 의문을 품는 아이보다 당장은 좀더 인정받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점입니다. 아이의 운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면, 부르카를 뒤집어 쓴 채 계속 적당히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아이의 운이 어디에서건 단 한 치만 삐끗한다면, 아이가 성폭력 또는 가정 내 폭력을 당하거나 그와 비슷하게 근본주의의 모순적인 기준들을 위협하는 희생을 겪게 된다면, 탈레반의 사회, 하시딕 공동체가 버리는 것은 이 아이입니다.
오늘 낭독의 뒷부분에서는 특히, 데버라가 사랑했던 소녀 시절의 친구 민디와의 에피소드 몇 토막을 집중적으로 발췌해 읽어보았습니다. 민디는 데버라가 어린 시절 동경했던 1살 연상의 수재 친구입니다. 민디도 데버라처럼 책을 좋아했고, 몰래 '요즘 음악'을 찾아들었고, 공부를 좀더 하고 싶어했으며, 자유를 갈망했습니다. 하지만 민디는 이제 데버라의 삶에 없습니다. 데버라가 마지막으로 민디를 만났을 때, 민디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4번째 아이를 임신한 채로 "이것이 신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민디의 남편은 데버라를 '나쁜 영향'이라고 여깁니다.
데버라는 아들과 함께 베를린에서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고뇌하고, 때로는 외로워하거나 좌절하고 과거의 망령과 맞닥뜨리면서, 그러나 자신의 영혼과 정신으로 앞날을 계속해서 헤쳐나갈 것입니다. 저는 오늘 민디가 궁금합니다. 이제 데버라와는 돌이킬 수 없이 갈라져 하시딕 공동체에 남은 민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지하철로 15분이면 도착하는 동네에 살고 있는 민디, 그러나 10대 시절엔 몰래 타보던 지하철에 아마도 다시는 접근할 일 없을 민디가 오늘 밤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것이 마음 아프게 궁금합니다.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 늘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계절출판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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